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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May 01. 2024

왜 욕은 아랫도리에서 나올까

욕 해보셨나요? 전 해봤습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속으로만 욕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혼자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하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 저주가 꼭 닿기를 바라면서 욕을 뱉기도 합니다.


어원(源)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말은 한 사회 안에 매우 깊이 스며들어 있는 가치체계와 문화의 반영이자,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는 XX을 욕으로 사용하는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국가와 문화권에서 욕설이 인간의 생식기 혹은 그것을 확장시켜서, 성적인 것과 맞닿아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에서의 '씨발', '좆같다' 와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영미권에서도 가장 자주 사용되는 욕설인 'fuck'을 포함해서 dickhead, bitch, 프랑스에서의 'putain' 등 생식기나 성과 관련된 욕설은 아주 흔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암시했던 것처럼 종족번식이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행위동기라면, 번식을 가능하게 하는 생식기와 성적인 것들은 아주 소중하고 숭고한 - 말하자면 성스러운 탑의 꼭대기에 놓여 있는 것일 텐데, 왜 성스러운 탑의 최하층도 아니라 그 밑바닥 지하실에 숨어 있는 욕설과 모욕에 이들이 사용되는 것일까요?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입니다. 한 가지 설명은 본능의 발현과 연관지어질 수 있겠습니다. 인간만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생식기를 의도적으로 가립니다. 이는 이슬람교, 청교도, 유대교, 동양의 유교 등 종교적 원인과 실용적 요구가 결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은 고결하고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종교적 가르침과, 중요 기관인 생식기를 외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실용적 필요성이 합쳐진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평소에는 숨겨져 있는 생식기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주로 소변을 배출하거나 대변을 배설할 때, 혹은 섹스를 할 때 드러납니다. 배설/배출 행위와 짝짓기 행위 모두 인간이 결국 동물이라는 본질과 관련됩니다. 우리가 생식기를 꺼내는 순간에 마주하는 것은 결국 문명을 이룩하고, 수학과 과학을 발전시키고, 아무리 고상하게 자연과 우주에 관해 사색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동물(짐승)의 일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짐승의 면모(본능)이 발현되는 순간에는 생식기를 가리려는 인간만의 부끄러움이 흐려진다고 생각해 보면, 욕은 결국 동물성의 발현인 것입니다. 분노와 같이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을 동물처럼 배설할 때 사용하는 것이 욕설이라고 한다면, 가장 동물적인 생식기를 들먹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또 한 가지 설명은 모욕이나 충격을 주기에 생식기는 아주 효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길거리에서 나체로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벗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부끄럽고 민망한 감정을 느낄 것이고, 부모들은 아이의 눈을 가릴 것입니다. 결국 인간에게 생식기란 대체로 누구의 것인가와는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충격과 민망함,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모욕감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내 감정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생식기를 꺼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좆같네' 라는 말을 뱉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왜 짜증과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현할 때 남성의 성기 같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거침없이 꺼내는 것이 부끄러움, 모욕감 등의 이유로 금지되어있다는 사실이, 결국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보였을 때의 충격을 만들어 냅니다.


결론적으로 생식기와 관련된 욕설은 잠시 인간임을 망각하고(이것이 나쁘다 좋다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짐승으로서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성적인 것을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뱉음으로써 충격과 모욕감 같은 감정을 자아내는 아주 효과적인 의사소통방식 - 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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