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뭐 하고 있었나요?

by 박준영

십지이. 하늘은 열두 가지로 나뉘어 세상을 굴린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하늘은 어디를 막론하고 이것을 참 좋아한다. 계절, 시간, 태양이 지나가는 길, 하물며 세상을 연주하는 피아노 건반의 옥타브도 12개 반음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까 하늘에게 다시 물어본다. 세상을 그렇게 열두 가지로 나뉘어 다듬고 있으니 이것이 지나면 조금 달라질 수 있느냐고.


12년. 무척이나 오래된 기억이다. 그제 점심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건 참 선명하다.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오전 수업은 없었다. 그런데도 가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끼던 구두가 망가졌으니까. 그 사람은 중요한 자리마다 핑크색 끈 구두를 신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망가졌다.


굽이 부러져 당장 신을 수 없는 그걸 쇼핑백에 알맞게 담고 구둣방으로 향했다. 걸어서 7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주인장에게 여러 번 상황을 설명하자 "친절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옆으로 나오는 아주 작은 흑백TV. 한 뼘 조금 넘는 화면은 지직거리며 흐렸다. 하지만 분명하게 적혀있었다. '전원 구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돌아갔다.


구두는 수리하지 못했다. 어렵단다. 그래서 조금 멀리 떨어진 구둣가게로 향했다. 11만 9천 원. 망가진 그것과 같은 제품의 가격이 그랬다. 수중에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 돌아갔다. 미안하다고 했다. 내 탓이 아니었는데도 이 과정의 허무함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전혀 괜찮다고 했다. 그즈음부터 난 전혀 괜찮다는 말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저녁. 여태까지의 허무함은 일도 아닐 정도로 믿기지 않는 소식이 거듭했다.


끔찍한 잿빛 바다는 오늘의 하늘과 너무도 다르다. 그날의 하늘이 이렇게 파랬다면 아무 일 없었을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중얼거리기에 열두 길의 하늘 모두 마음 하나 없어 보인다.


'그날 뭐 하고 있었나요?'. 혹자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나간 기억이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12년. 나의 기억조차 이렇게 선명한데, 당사자의 슬픔은 감히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12년. 나에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고, 너무도 달라진 부분도 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이 없었다. 세상의 아픔을 그리는 게 어쩌다 나온 허무맹랑한 전설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시시콜콜한 버릇 같은 일상이 아니라.


슬픔을 기억하는 게 추모라면 몇 번의 12년을 더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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