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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스트라다 LaStrada Aug 08. 2021

세르비아

티토, 다뉴브, 파르티잔, 그리고 니콜라 테슬라

유럽은 크게 서북의 게르만, 서남의 라틴, 그리고 동쪽의 슬라브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권역마다 민족 언어 문화 종교 음식 기질 등이 비슷하다.  슬라브는 다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동 슬라브,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의 서 슬라브, 그리고 구 유고 연방 6개국으로 구성된 남 슬라브로 나뉜다. 유고슬라비아의 유고가 남 슬라브어로 남쪽이라는 뜻이다. 슬라비아는 라틴어로 슬라브의 땅이다. 


슬라브 중에서도 남슬라브 사람은 키가 크기로 유명하다.슬라브계에서 남 슬라브계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름을 보는 것이다. 성이 -이치 ici로 끝나면 남 슬라브 계고 이름이 - 스키 ski로 끝나면 북 슬라브다. 



발칸 반도에 위치한 구 유고 연방 6개국은 같은 남 슬라브계에 언어도 한국어의 사투리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험준한 산맥으로 인한 지리적 분리와  (발칸의 어원이 산) 인접 강대국의 영향을 받아 종교와 사용하는 문자가 다르다. 


구 유고 연방 7개 국가엔, 로만 알파벳과 키릴 문자, 가톨릭과 정교와 이슬람이 혼재한다. 발칸 반도를 유럽의 화약고라고 부르는 이유이자, 유고 연방의 구심점이었던 티토의 서거와 공산권의 붕괴로 2차 대전 후 유럽 내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하는, 유고 내전의 계기가 되었다. 


1999년 유고 내전 당시 미국 주도 NATO의 베오그라드 폭격 사진. 모든 전쟁에서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독일 외엔 ) 없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한다.

유고 내전은 90년대 초에 시작해 90년대 말에 끝났다. 3년 간의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극심한데, 무기 체계가 더 발달한 90년대에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발칸 반도 전역을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발칸 반도 구석구석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지만, 한 마디로 625 이상으로 참혹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어제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어울려 잘 살았던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를 학살하고 도시를 파괴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참혹함만이 남은 전쟁이었다. 


2014년 발칸 반도 여행 당시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인상은  2000년 처음 구 공산권 유럽 국가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하다. 지난 15년 동안 구 공산권 유럽 국가의 도시는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베오그라드는 오히려 유고 내전 당시 나토 공군의 폭격을 받아 크게 파괴당했다. 당시 같은 공산권이었던 체코의 프라하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비해서도 너무나 낙후되어 있어서 안타까웠다.


베오그라드 파르티잔의 홈구장 벽화 & 기념품으로 전락한 구 유고연방의 화폐. 니콜라 테슬라가 모델인 지폐도 보인다


반면 여행 물가는 미안할 정도로 저렴했다. 일부 유럽인을 제외하면 관광객과 여행자가 거의 없고, 아직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못해 물가는 동남아 정도로 쌌다. 호스텔의 도미토리는 6유로, 큼직한 샌드위치가 2유로, 펍에서 맥주 한 잔은 1~2유로, 커피는 1유로. 먹고 자는 데 하루에 20유로 정도 쓴 것 같다.


베오그라드 공항의 이름이 니콜라 테슬라! 였던 것과 베오그라드 축구팀 이름이 파르티잔스 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세르비아 출신의 전기 물리학자 니콜라 테슬라에서 이름을 따왔고, 티토는 나치 독일 점령 당시 파르티잔 (레지스탕스)을 조직해 싸웠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티토의 영묘 靈廟 mausoleum 였다. 


소박함으로 가득했던 티토의 영묘

티토 영묘의 이름은 '꽃의 집 House of flower'이었다. 미라도 요란한 장식도 근엄한 근위병도 없었다. 그동안 방문한 다른 공산권 국가 지도자의 위압적인 영묘에 비하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레닌 호찌민 마오쩌뚱 그리고 티토의 영묘까지, 공산주의 지도자 영묘 방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기념이자, 티토에 대한 존경의 념으로 묘소의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 배지를 하나 샀다. 


베오그라드 시내의 다뉴브 강변


최근 몇 년 사이엔 구 공산권 유럽 국가에 거지와 노숙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과거 사회주의 시절엔 없었던 일이다. 노인들은 옛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물론 젊은이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구 공산권 유럽 국가의 젊은이들의 삶이 장밋빛 인생인 것도 아니다. 임금은 한국과 비교해 놀라울 정도로 낮다. 그래도 유럽인데 하는 선입견을 부순다. 반면 물가와 집세와 세금은 오르고 연금은 못 받을 확률이 높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젊은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세르비아를 떠나길 원했다.


다들 임금이 비싼 서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탈출하려고 하니, 시골마을은 점점 젊은이들이 사라져 간다. 기업은 한 푼이라도 덜 주는 곳으로 이전하려 하고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임금을 더 받는 곳으로 이주하려고 한다. 차이라면 기업은 환영받지만 이주노동자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동유럽 출신의 이미지는, 서유럽에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세르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다뉴브강은 유유히 베오그라드 시내를 흘렀다. 한국 여자배구의 분투가 아쉽지만, 세르비아 국민들에게도 짧은 위로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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