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규제’ 사태를 접하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논리를 여러 차례 내세웠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국제법이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다. 국제법의 법원(法源, source of law)에는 조약과 국제관습법이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은 한국과 일본 두 국가의 권리의무에 관하여 문서로 체결된 약속으로서 일종의 조약이다. 조약을 위반하면 국제법위반이다라는 논리는 일응 타당하다. 한일청구권 협정에는“양체약국은 양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이 문구를 두고 강제징용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의 문제도 이미 해결되었다는 주장이다.
한편, 국제법위반의 정당화 근거로 국내법 또는 국내법원의 판결을 원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확립된 국제법 원칙이다. 조약의 위반을 근거로 국내법원의 판결을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베총리는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면서 그 정당화 근거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내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삼권분립 또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상 그 판결을 기초로 강제집행을 하는 것도 대통령이 막을 수는 없다. 외국인 또는 외국법인이 소송의 당사자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단, 외국 국가자체가 소송당사자인 경우에는 ‘주권면제이론’으로 강제집행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가와 국가의 관계인 국제법적 차원에서는 삼권분립이라는 논거 역시 국내법적 근거에 불과하다. 국내법 즉 헌법상 삼권분립을 근거로 조약 위반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청구권 협정 위반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국 헌법상의 삼권분립을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 아베총리의 생각일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자세히 읽어보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서 양국의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고,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위반이 될 수 없다는 취지를 알 수 있다. 결국은 조약 해석의 문제로서 청구권협정상의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두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민사법상 계약의 해석상 “모든, 일체의, 완전한”과 같은 절대적인 표현은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계약은 한 두 개의 문구로 간단하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계약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기재하고 각각의 사례에 대해 양당사자가 합의하여 결론을 정해두는 계약이다. 조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최종적인, 완전한”이러한 문구는 그 자체로 보면 모든 것을 해결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어 분쟁의 씨앗을 잉태하게 된다.
한국 국내법의 최종적인 해석권은 대법원에 있지만, 조약에 대한 최종해석권이 대법원에 있지는 않다. 대법원의 해석에 일본정부, 아베총리가 구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은 일본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잘 설명하고 있고,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생각의 차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사람은 한번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문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다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일본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하여 배상을 해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결론이든 나쁜 결론이든 결론이 난 것을 다시 뒤집어 말하는 것 자체를 일본사람들은 굉장히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이 책은 또 한일 양국의 문제는 이렇게 일본 국민의 사고방식과 성격을 잘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지 단순히‘민주주의’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면 풀기어렵다는 취지로 서술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고방식이 한국에는 강하게 존재하고 있으나 일본에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는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 운동, 6.10항쟁, 2016년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혁명이 없었다. 현대 일본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일본도 확고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은 이와 별개의 문제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아베총리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국입장에서 민주주의, 삼권분립,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을 주장해도,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베총리의 생각일 것이다.
거꾸로 만약 일본이 한국처럼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라면 어떨까? 조약이 체결되고 국가 간에 구속력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약의 내용이 인권과 정의에 반하는 내용이라면, 또한 조약체결 당시의 관념과 해석당시인 현재의 관념이 많이 다르다면, 그 조약의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인권존중과 정의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에 합치하는 것이며 또한 진정으로 국제법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법은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에 부합하게 해석을 하고 또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핑계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배상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관념을 반영하여 한국 대법원은 정의와 인권에 부합하는 타당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강제징용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것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국제법에 부합하는 것이다. 일본이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라면,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런 점들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만약 일본 국민들이 강제징용피해자 문제의 경위를 정확히 이해한 전제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현재시점에서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이 맞는지를 국민투표를 실시해 본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아쉽게도 보통 일본사람들은 정부가 정책을 설정하면 국민들은 이를 잘 따라가기 때문에(“관제민추 官製民追 의 사회”, 책 56쪽) 이러한 과정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토론이 작동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일청구권 협정의 문구에 편협하게 매몰되어,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의‘국제법’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일본입장에서는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전통(기존 약속)존중과 집단(국가)이익 존중의 의식이 있는 것이다.
‘흐름’의 한국은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정의와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고, ‘축적’의 일본은 이에 대해 관제민추에 기초하여 형식적인 국제법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지금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일본 사회가 관제민추가 아니라 비판과 토론이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