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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Jun 27. 2021

내가 런던에서 쉑쉑버거를 먹게 된 이유

-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

  수년 전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쉑쉑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우연은 아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햄버거라며 꼭 먹어보기를 간곡히(?) 권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런 거 있지 않는가. 여기가 아니면 해 볼 수 없다 하면 꼭 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기는 것. 쉑쉑버거도 내게 그런 결심을 안겨준 하나의 음식이었다. 생각이 그러면 맛은 대개 좋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웨이팅이 긴 음식을 먹는 경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인간의 자유의지 혹은 자율의지에 깊은 신뢰가 있는 나는 어떤 행위를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결정권’이다. 즉 내가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나 강제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속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베풀어준 혜택이다. 물론 살다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는 일도 많지만 폭넓게 생각해보면 그런 것 조차도 개인이 인내하거나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작동한다. 가령 런던 여행 중에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은데 일행이 영국박물관에 가려 할 때 그리로 갈 수 밖에 없는 결정에 따르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내 소망이 배려심에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 민주주의적 환경에서 살면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조주의를 만나기 전에는.     


  구조적의적 입장에서 보면 구조가 중심이 된다. 이 때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라던가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조에 자리를 내주고 변방으로 내몰린다. 중심으로부터 실격한 것이다. 내가 쉑쉑버거를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쉑쉑버거 지점이 생겨야 가능하다. 물론 쉑쉑버거를 먹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수도 있다. 햄버거 하나 먹기 위해 그리 한다는 것은 여간한 불편함이 아니다. 결국 내가 쉑쉑버거를 먹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자유의지 이전에 구조적으로 그런 환경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된다. 이쯤 되면 내 팔은 내가 흔든다, 라는 기치를 내세우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그림출처: YES24]

  그래도,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행위에 대한 인간의 고유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반드시 7가지 원인 가운데 한 가지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연, 본성, 강요, 습관, 계산, 분노, 욕구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이유는 이 7가지 요인 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모두 정해진 원인이 없고, 목적이 없으며, 언제나 발생하는 것도 통상 발생하는 것도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본성에 따라 일어나는 것은 모두 원인이 그 자체 안에 있고 정해져 있다. 그런 것은 언제나 또는 대개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강요에 의한 행위는 행위자 자신의 욕구나 계산에 반하는 행위이다. 습관에 의한 행위란 사람이 이전에 자주 행한 적이 있기에 행하는 행위이다. 계산에 의한 행위란 앞서 말한 좋음 중 어느 하나와 관련해 목적으로서 또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유익해 보이기 때문에 그 유익함을 좇아 행하는 행위이다... 분노와 격분은 모두 보복행위의 원인이다... 욕구는 즐거워 보이는 모든 행위의 원인이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퇴근길, 어떤 직장인이 빵집에 들러 빵을 사는 행위이다.

우연: 우연히 맛집을 발견했다.

본성: 딸바보라서 늘 딸에게 맛있는 것을 사서 챙겨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강요: 빵이 먹고 싶다고, 꼭 사오라고 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습관: 퇴근길에 늘 먹거리를 사가지곤 한다.

계산: 오늘따라 그 빵집에서 1+1 행사를 한다.

분노: 체중을 감량하려고 음식을 줄여왔으나 별 효과가 없어 먹고 죽자, 라는 마음으로 빵을 사게 되었다.

욕구: 빵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런던에서 쉑쉑버거를 먹은 것은 어디에 해당할까? 아마 계산이 아닐까. 지금 먹어보는 것이 기회비용 측면에서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것.     


  십여 년 전에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에 가본 적이 있다. 출발시간이 임박해 들를 시간이 없었는데도 정말 후회할까봐 되돌아서 숨가쁘게 뛰어갔다. 그 때 내 행위의 원인은 뭐였을까. 본성과 습관과 계산과 욕구가 섞인 것이 아닐까. 인간은 원래 복잡한 동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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