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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Oct 11. 2021

프롤로그 (2); 트로이아 전쟁

-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의 이야기’ 혹은 ‘일리온의 노래’라는 뜻이다. 일리오스나 일리온은 트로이아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벌써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는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이름들이 그렇다. 가은, 나은, 다은, 하은이를 손주로 가진 할머니는 이 아이가 그 아이 같고, 그 아이가 이 아이 같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걱정 마시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잡고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처럼, 또는 조약돌을 뿌리며 길을 찾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음으로 이 글을 따라가다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씩씩하게 『일리아스』 읽기를 시작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사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트로이(Troy)라고 부르는 게 옳다. 그렇게 되면 영어식 표현이 된다. 그럼 이 책의 이름도 일리아드(Iliad)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리스어 중에서 앗티케 방언을 따라 번역되었으니 그리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이 다 영어식으로 불릴 수는 없지 아니한가.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플로렌스 보다는 피렌체이고 비엔나보다는 빈이 좋다. 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불러주는 것이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그렇다면 트로이아 가계 혹은 왕조를 거꾸로 살펴보는 것으로 이름에 대한 유래를 찾아가보자. 트로이아의 마지막 왕은 프리아모스다. 그는 살면서 최고의 행복과 최대의 불행을 모두 겪은,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떤 건지를 제대로 보여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일리아스』 에서 그를 공감해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라오메돈이다. 라오메돈은 아폴론과 포세이돈으로 하여금 성벽을 쌓도록 하는 막노동을 시켰으나 보수를 주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어겼고 헤라클레스와의 신용 약속도 무시해 끝내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부터 중요. 라오메돈의 아버지는 일로스(Ilos)이다.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인 일리오스와 일리온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했다. 서사시에서는 보통 일리오스라고 하고 비극에서는 일리온이라고 부른다. 일로스의 아버지는 트로스(Tros)다. 눈치 챘듯이 트로이아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트로스 선대는 에릭토니오스-다르다노스-제우스로 이어진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마음이 편하다. 『일리아스』의 뜻과 어원은 이제 정리되었다.

[그림출처: YES24]

  주지하다시피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그리스 서사시다. 『일리아스』 보다 오래된 첫 번째 서사시는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다룬 『퀴프리아(Kypria)』인데 일부만 전해진다. 『일리아스』처럼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또 하나의 서사시는 『오뒷세이아』이다. 즉 서양문학 읽기의 출발점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는 말이다. 읽고 싶다고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존재해야 하고 외국어를 모르니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개인적으로 천병희 교수와 도서출판 숲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리아스』는 24권, 15,693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번역된 책으로 700여쪽 분량이다. 운율은 6각운(hexameter)인데 이는 영웅시 운율 혹은 서사시 운율로 불리는데 그리스 서사시에서는 이처럼 강약약의 6보격 시행만을 사용했다. 참고로 그리스 비극은 3절운율과 4절운율을 주로 사용하였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 영문학 세계에서는 유명한 -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을 주로 사용하였다. 좀 따분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운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원문을 읽어보면 그 맛이 남다르다. 골치 아프면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자.


  이제 『일리아스』의 내용적인 측면에 대해 살펴보자.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메로스는 지혜롭게도 그 방대한 전쟁 전체를 다루지는 아니하였다. 주지하다시피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와 트로이아 사이에서 10년에 걸쳐 일어났다. 『일리아스』는 10년간 벌어진 전쟁의 마지막 해를 다루는데 50여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지난 9년 동안 일어난 일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회상한다. 내용은 크게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 분노한 아킬레우스의 전쟁 불참, 막역지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그로 인한 아킬레우스의 전쟁 참여, 헥토르의 죽음과 장례식까지 다루어진다. 이렇게 쓰고 보니 별 내용 없어 보인다. 에게게, 겨우 이 정도 내용이라고, 하며 미리 실망하진 마시길.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라는 명확한 주제로 책 전체를 아우르며 각 권마다 재미있는 삽화들을 김장 김치 속처럼 맵싸하게 넣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구성에 대해 이렇게 찬양한다.


  호메로스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처음과 끝을 가진 전체임에도 그것을 전부 다 다루려 하지 않았다. 그 스토리가 너무 길어 통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나, 길이를 줄인다 해도 그 안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택하고, 그 밖의 많은 사건은 에피소드로 사용했다.

  트로이아는 기원전 12~13세기 즈음 지금의 터키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 헬레스폰토스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남쪽으로 6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트로이아나 트로이아 전쟁은 그저 신화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전해져왔는데, 1871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아의 유적지를 발견하였고 그의 공적으로 트로이아 전쟁이 기원전 13세기 중반에 실제 일어났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럼 트로이아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일단 신화에서 말하는 전쟁의 원인은 이렇다. 올림푸스에서 인간의 아들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이 결혼식에 다른 신들은 모두 초대받았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 에리스가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왕따도 이런 왕따가 없다. 화가 난 그녀는 그곳에 모인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사과를 던진다. 역사적인 사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사과는 나중에 세상에 등장하는 어떤 사과보다도, 뉴턴의 사과나 스티브 잡스의 사과 그 이상으로 센세이셔널했다. 불화의 사과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자기의 사과라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정 및 동경은 신이라고 해서 비켜나지 않는다. 이에 제우스는 사과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트로이아 근처의 이데 산에서 목동생활을 하고 있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긴다.  


  자, 이제 홍보의 시간. 버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최고의 권력이나 부를, 아테네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아, 파리스는 그저 목동인 - 알퐁스 도데의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지켜준 목동이 생각난다 - 순수하고 소박한 청년에 불과하다. 헤라를 선택하여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부를 이용하면 헤라 화장품으로 예쁘게 치장한 절세미인들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알까. 아테네를 선택하여 힘과 지혜를 얻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예쁘고 이국적인 미녀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까. 젊은 청년 파리스는 직선적이고 본능적일 수밖에 없겠다. 어쩌면 아프로디테를 본 순간 그 여신 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에 젖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젊음은 젊어서 아름답다. 사과는 아프로디테에게 전해졌고 아프로디테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스파르테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려가도록 도와준다. 하필 유부녀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니.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친형 아가멤논에게 호소하고 범 그리스 진영의 군대는 그렇게 트로이아로 진격하게 되는 것이다. 사과 한 개 건네준 것 치고는 그 댓가가 너무 크다. 사실 근데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아프로디테를 보면 굉장히 육감적이고 아름답긴 하다. 사랑의 비너스(아프로디테)라는 속옷을 입고 유혹의 눈빛을 던지면 사과 하나쯤 던져주지 않을 남자가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을까.

[그림출처: 일리아스 / 숲]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추정하는 전쟁의 원인은 보다 현실적이다.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인들도 멀리 흑해지방으로부터 밀을 수입했다. 흑해로부터 보스포로스 해협을 지나 프로폰티스 해(지금의 마르마라 해)를 지나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면 에게 해로 접어든다. 트로이아는 헬레스폰토스 해협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트로이아가 순순히 그리스가 밀을 실어 나르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통행세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스에게 밀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면 할수록 더 많은 통행세를 거두었을 것이고, 그리스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트로이아의 일대 혈전은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전쟁의 원인이 분명해져서 좋은데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다. 역시 아프로디테가 사주하고 파리스가 공모한 유부녀 헬레네 납치 사건을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게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자, 이제 그러그러한 궁금증을 안은 채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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