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럭셔리 호텔 키친핸드가 되기까지
뉴질랜드에서 학생비자를 받으면 주 20시간 일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이때 한인 마트나 한인 식당으로 향했다. 말이 편하고, 익숙하고, 구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하루 30분, 구인 사이트를 보는 일이었다.
뉴질랜드 최대 구인 플랫폼 SEEK. 매일 30분씩 사이트를 열고, 내 영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엑셀에 정리했다.
처음엔 막막했다. 그런데 매일 들여다보다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설거지와 주방 보조를 하는 키친핸드, 그리고 데이터 입력 업무.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30분이 쌓이니, 내가 원하는 방향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됐다. 시에서 주최하는 이력서 쓰기와 인터뷰 강의가 있다는 것을. 이틀짜리 프로그램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참석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유익했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다.
선생님은 뉴질랜드 실정에 맞는 타깃 이력서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한국식 이력서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른 선생님은 영어 인터뷰 연습을 해줬는데, 기분 나쁘지 않게 조곤조곤 고쳐주셨다.
그렇게 나만의 이력서가 완성됐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카페, 호텔, 레스토랑에 뿌리기 시작했다. 매일 30분, 대상 업체를 찾고 그에 맞게 이력서를 다듬었다.
첫 번째 연락이 왔다.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공교롭게도 전임이 한국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친절하게 팁을 알려줬다.
“마감 시간에 가면 바쁘니까 5분 정도 늦게 가는 게 나아요.”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인터뷰 장소 근처에 30분 전에 도착해 카페에 앉아 기다렸다가, 약속 시간보다 5분 뒤에 문을 열었다.
주인은 이미 화가 나서 가버린 뒤였다.
억울했다. 면접도 못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SEEK를 열었다.
그다음 연락이 온 곳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프랑스 호텔 그룹 아코르의 럭셔리 브랜드, 소피텔.
인터뷰 당일, 메인 셰프와 마케팅 담당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키친핸드를 뽑는 자리였는데 질문 수준이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당신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무엇입니까?”
“아코르 서비스 중 좋았던 경험이 있나요?”
“이전 직장보다 급여가 많이 낮은데 괜찮습니까?”
30분 동안 인터뷰가 이어졌다. 합격할지 불합격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나를 버텨줬다. 나는 힐튼 VIP 멤버였다. 호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남들보다 많았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였다.
‘매일 30분이 여기서도 쓰이는구나.’
며칠 뒤, 합격 연락이 왔다.
아코르 그룹 소피텔의 정규직 파트타임. 한인 식당이 아닌, 뉴질랜드 럭셔리 호텔의 직원이 됐다.
SEEK를 매일 30분 들여다본 것, 이력서를 매일 30분씩 다듬은 것, 그 작은 루틴들이 쌓여 만든 결과였다.
하루 30분은 걷기나 운동에만 통하는 게 아니다. 취업 준비에도, 낯선 나라에서 새 출발을 하는 데도, 똑같이 통했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매일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