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란 국가의 탄생 신화?:
대한민국의 역사는 오천 년 전 단군 할아버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 할아버지가 한반도에 터 잡으시고, 무려 1,50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홍익인간 정신을 널리 퍼뜨렸다는 내용이다. 모든 한국인이 알고 있는 단군 신화는 한국이 단일 민족국가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민들 정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콜롬비아도 이런 신화가 있을까? 한국과는 달리, 콜롬비아엔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국가와 민족의 탄생 신화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도깨비 이야기처럼 '솔라파타 (Solapata)라 불리는 다리 하나 달린 요괴나,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흐느끼며 거리를 배회하는 여자 귀신 (La Llorona)과 같은 민담은 존재한다. 하지만 단군 신화처럼 국가 신화를 말하며 콜롬비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이야기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대신 콜롬비아엔 이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온 다양한 부족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고고학자에 따르면, 콜롬비아에는 약 12,5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8,000년 전극동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온 사람들은 계속해서 캐나다-미국-멕시코-중미 지역으로 흩어지며 지금의 콜롬비아 지역에 도착했다. 콜롬비아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후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져 그들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콜롬비아의 지형을 보면 크게 세 곳 (1) 해변 (2) 산맥 (3) 야노스 습지로 나눠진다. 그들은 기후와 지형이 다른 태평양과 캐리비안 해안 지역, 안데스 산맥, 야노스 습지에서 흩어져 활동했다. 오랜 시간 동안 먹을 것을 찾아 수렵 생활을 해왔던 이들은 10,000~5000년 전 사이 농경사회로 발전하며 이른바 '카키카스고' (cacicazgos)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서 '카키카스고' (cacicazcos, 혹은 cacique)란 스페인어로 부족들의 정치체제를 뜻하는 단어로써, 제사장이나 전사들에 의해 다스려졌던 중남미 지역의 부족 사회를 뜻했다. 수렵 생활을 하며 비슷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은 정착 생활을 하며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각 지역 부족들의 생활 방식도 점차 달라지게 되었다.
콜롬비아 지역의 원주민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에 약 70여 개의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다섯 부족들을 살펴보자.
1. 와유족 in 과히라:
첫 번째로 소개할 부족은 과히라 주에 오랜 시간 살고 있는 와유 족이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 사이에 있는 와유족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모칠라 백을 만드는 부족으로 유명하다. 손뜨개질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낸 독특한 색깔과 패턴이 매력적인 모칠라 백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와유족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끊임없이 저항했던 부족으로, 식민시절 콜롬비아 부족들 중 유일하게 총과 말 타는 법을 배워 스페인에 저항한 부족으로도 알려져 있다.
2. 타이로나족 in 시에라 네바다:
두 번째 부족은 산타 마르타 도시 근처에 정착해 살았던 타이로나 (Tairona) 족이다. 이들은 이웃 와유족보다 비교적 규모가 큰 문화를 형성했는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고 전해진다. 타이로나 족은 흡사 페루의 마추픽추와 비슷한 형태를 지닌 '잃어버린 도시' 유적지로 유명하다. 대략 8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잃어버린 도시 유적지는 마추픽추 보다 무려 650년 앞서 만들어졌으며, 약 4000여 명의 타이로나족이 살았던 정치적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3. 톨리타 in 태평양 연안:
캐리비안 해변지역엔 와유족과 타이로나족이 살았다면, 태평양 연안에는 톨리타 (Tolita)라 불린 부족이 정착해 살고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의 에콰도르 지역과 콜롬비아 서부지역에 걸쳐 형성되어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부족이었다. 산맥이 없는 환경 때문에 다른 지역과의 왕래가 비교적 수월했고, 이 때문에 페루에 위치했던 잉카 제국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톨리타 족들은 황금으로 된 마스크, 귀걸이와 같은 장식품을 생산한 부족들로 유명했다 전해진다. (이들의 많은 유적품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위치한 황금 박물관 (Museo del Oro)에 전시되어있다)
4. 산 아구스틴 in 안데스:
다음은 안데스 지역에 정착했던 부족들이다. 흔히 산맥이라 하면 척박한 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안데스 지역은 옥수수, 카사바, 촌타두로 같이 인류가 소비할 수 있는 곡물 재배가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무이사카, 킴바야, 톨리마 등 다양한 부족들이 이 안데스 지역에 살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고도 1350m에 위치한 산 아구스틴 부족은 콜롬비아의 고대 안데스 문화를 대표했다.
위 사진처럼, 이들은 무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암석으로 된 조각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콜롬비아 지역에선 찾을 수 없는 안데스 산맥 남부 지방의 독특한 유적지로서, 조각들에 새겨진 사람 형태의 문양은 태양, 달,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들이 사람화 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산 아구스틴 지역은 예로부터 안데스 지역의 종교 및 정치적 중심지로서, 사람이 죽은 뒤 순장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산 아구스틴 지역엔 우리나라의 고인돌과 매우 흡사한 무덤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5. 푸이나베 in 야노스 습지:
마지막으로, 야노스 습지에 살던 푸이나베 (Puinave)족이 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콜롬비아 세 나라의 국경을 나누는 지역에 살고 있는 푸이나베 족은 훗날 스페인 정복자들에게도 발견되지 않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왔다. 푸이나베 족들은 스페인어를 쓰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언어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약 2,000여 명의 부족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단일성 대신 다양성:
콜롬비아의 고대 역사를 정리해보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부족들이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가장 큰 이유는 험준한 지리적 특성이었다. 평야가 아닌 산맥과 습지, 정글로 둘러싸인 내륙 지역의 특성상, 한 세력이 콜롬비아 전체를 정복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고립된 방식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단일 왕권이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콜롬비아 부족들의 또 다른 특징은 기록 문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이나 이집트처럼 다른 지역 문명과는 달리,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대부분 구술로 전해져 왔다. 이웃이라 할 수 있는 메소 아메리카 (멕시코의 마야, 아스텍)나 잉카 제국이 제국을 형성하며 그들만의 문자를 형성했다면, 그보다 규모가 작았던 콜롬비아의 부족들은 그들만의 체계화된 문자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콜롬비아 역사는 국가 탄생의 신화가 아닌 다양한 문화의 부족들의 역사로 시작된다. 오래 전부터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형성해오며 발전해온 한국 역사와는 달리, 콜롬비아는 '콜롬비아'라는 국가 정체성을 만드는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콜롬비아라는 국가도 19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롬비아의 역사는 획일적인 민족성을 형성하며 발전 했다기보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지속되온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콜롬비아 역사의 뿌리는 원주민, 스페인, 흑인 문화가 섞여 다양한 문화를 꽃피운 지금의 콜롬비아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