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

by 어슴푸레

잔눈발로 사방이 뿌옇다. 순식간에 눈이 쌓인다. 저 눈을 다 어찌 치우시려나. 행여 미끄러져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는 눈은 어느새 두 분이 계시는 서산을 향한다.


설날 연휴, 서해안엔 폭설이 내렸다. 우리가 서울로 올라간 후로 30cm도 넘는 눈이 더 왔다고 했다. 우리 딸 전화했었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만 내놓고 지금 들어왔다. 전화 통화가 안 돼 걱정하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다.


-놔둬라. 또 쌓일 건데 그냥 놔둬.

-여기까지만 하고요. 추운데 들어가세요.


뒤돌아보면 다시 쌓이는 눈. 내리는 즉시 얼어붙는 눈. 눈삽 모서리로 눈을 깨자 금이 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눈삽을 힘주어 밀고 가 한쪽에 눈을 던졌다. 눈썹에 살얼음이 맺혔다. 2시간이 조금 못 되게 눈을 치웠다. 앞마당을 다 쓴 남편이 뒷마당으로 건너와 언덕바지를 치웠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서울 갈 수 있을까.

-가 봐야지.


하루 더 있다 가면 안 되겠냐는 말이 턱 밑에서 부딪쳤다.


눈은 매해 내렸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달랐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면 20대 땐 연인 생각으로 설렜다. 30대 땐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일하는 게 미안해 사무실 창문을 연신 힐긋거렸다. 40대가 되니 여든 가까운 두 분의 굽은 등이 떠올라 마음이 짠하다.


눈은 그리움을 몰고 온다. 어떤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폭설#대설#설연휴#눈이내리면#생각나는사람#연인#아이#연로한부모님#측은지심은모든사랑의완성#일상#글쓰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