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들어오는 봄볕이 하루가 다르게 따사롭다. 봄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매일매일 사방을 포근히 감싼다. 가만있을 수 없지. 기어이 운동화를 꿰신고 집 밖을 나선다.
근린공원을 돌고 개화산 둘레길을 걷는다. 숨이 가쁘지만 많이 힘들지는 않다. 흠....... 하....... 흠....... 하...... 심호흡을 하니 흉곽이 닫혔다 열려, 막혔던 것들이 뚫리면서 가슴 속으로 새 공기가 주기적으로 들어간다. 콧속이 간질간질하다 시원해진다.
9시 54분. 약사사 입구에서 반배를 하고 법당에 들어간다. 좌복과 법요집을 챙겨, 붉은 가사를 왼쪽 어깨에 두르고 사시 예불을 기다리는 스님을 대각선으로 해서 자리를 잡는다. 삼배를 하고. 보례진언을 왼다. 천수경을 독송한다. 1시간이 조금 넘게 불공을 드린 후 법당을 나와 3층 석탑 앞에서 합장을 한 후 산을 내려온다.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는다. 양치를 하고. 읽을 책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간다. 어쩐지 오늘은 간 적 없는 카페를 하나 찾아보고 싶다. 상담 센터가 있는 동네로 느릿느릿 걷는다. 오래도록 문이 닫혀 있어 유리창과 출입문에 먼지가 뽀얗게 낀 가게들이 제법 많다. 앗. 여기도 없어졌네. 아...... 저기도. 마음 한 자락에 바람이 분다.
<게으른 오후>? 와, 여긴 뭐 하는 곳이지? 독립서점 겸 글쓰기 공간? 간판과 가게 외관을 한참 바라보다 상호를 적는다. 끄적일 걸 갖고 다음에 한번 와야지. 내처 걷는다. 엇? 저긴? 홍콩 음식점에서 파스타 가게로 바뀌었네. 나중에 윤희 샘이랑 오면 되겠다. 하나하나 눈에 담고 갈무리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자 눈에 기쁨이 가득 번진다.
공원을 걷고. 산길을 걷고. 골목길을 걷다 보면 봄기운에 녹아 따뜻하게 덥혀진 흙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니 어릴 적 국민학교 교문 앞, 요구르트색 상자 속에서 노란 옷을 입고 시냇물 소리를 내며 재잘대던 병아리들이 떠오른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향한다. 멀리 꽃잎 모양의 유리 온실이 보인다. 서울식물원이다. 바깥만 돌기로 하고 호수원을 둘러 다리를 지나 식물원 입구 언덕을 오른다. 횡단보도를 건너 양천향교 방향으로 걷는다. 새싹 타워 1층의 유리문을 힘껏 민다. <목탁소리 휴>에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잠시만요. 하얀 커피붓다 머그에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를 부어 내게 건네 준다. 고맙습니다. 벽면의 키 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1시 반. 법상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3시. 법문이 끝나자 나눠 주는 떡을 받아 다시 자리에 앉는다. 3시 반. 스님 주재로 명상에 든다. 뚝뚝뚝. 뚝뚝뚝. 눈물이 떨어진다. 위이이잉. 싱잉볼의 파장이 길게 퍼지고 명상이 끝난다. 합장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서울식물원 방향으로 걷는다. 마곡배드민턴장을 지나고. 서남물재생센터를 지나고. 2단지를 지나고. 정곡초등학교를 지나고. 터널 위 도로를 지나고. 걷고 또 걷는다.
동선은 그날그날 다르다. 백영고등학교를 지나 신방화역 근처의 카페 조각집에 가기도 하고. 약사사에 갔다 내려와 방신시장을 향하기도 한다. 발길 닿는 대로. 그저 걷고 걷는다. 튼튼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에. 시간에 구애 없이 구경하듯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음에.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하고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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