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기 없다

by 어슴푸레

요 모양 요 꼴로밖에 못 산다고 자신을 한없이 들볶던 때가 있었다. 자기를 수용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의 시선과 잣대로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방식이었다. 내부 기준이 가혹했고 난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기본값으로 깔고 살았다. 잘했다는 말을 자기에게 한 번도 못 하고 산 사람은 잘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일까, 잘했다고 인정받은 경험을 한 번도 못 해봐서일까. 둘 다인 사람은 영영 무능한 사람일까. 거두어지지 않는 자기 의심은 삶의 중요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다. 제 발에 제가 넘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감을 좀 가져요.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요.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세요.


의 눈에 비친 나의 인상은 대부분 저러했다. 반면에 일의 결과나 처리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들의 와, 하는 표정과 무한 신뢰의 고갯짓에 존재감이 커져 감을 느꼈다. 일에 중독되었고 주는 일을 마다 안 했다.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인 줄 알았으나 실은 그렇게밖에 존재 가치를 확인할 길이 없어서였다. 그것은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가시적이었다.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친절한 사람. 아카데믹한 사람. 그렇게 규정해 주는 타인의 평가가 미치게 좋았다. 내가? 그럴 리가. 싶었던 자기 의심은 애초에 난 그런 사람이었는 줄 몰라. 믿어 버렸다. 정말 그래지고 싶어 혹사했다.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퓽. 퓨즈가 나갔다. 일은 하기 싫었고 질질 끌다 엉망만 피한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성실과는 점점 멀어져 갔고 마음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고 깊이 파고드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아웃이라고도 했고 가면성 우울이라고도 했다. 붙여진 이름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금을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고도.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따라가기엔 숨어 있던 반항 기질이 고개를 들었다. 궤도에서 벗어나 기울기가 커질수록 낙담 또한 커졌다.


-언제까지 만년 연구원만 할 거야.

-거기서 국어원 귀신 될래?

-네 목표는 고작 박사 수료야?


정으로 한 말들은 좌절의 순간마다 날카로운 칼이 되어 심장을 베었다.


-정규직 됐어?

-월급은 올라?

-그렇게 오랫동안 지겹지도 않아?


역시 걱정으로 한 말들은 실패의 순간마다 네가 그럼 그렇지로 변횐되어 메아리쳤다.


정으로 했다는 그들의 말에는 전혀 다른 힘이 있었다. 그 주술을 깨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거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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