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서방이랑 싸우고 왔냐? 왜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냐.
-가시내. 말하는 것 좀 봐. 까칠해 갖고.
지난 설 연휴. 엄마와 오빠가 나에게 각각 말했다. 속에서 뭔가 끓어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멈췄다. 그러니 다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에 감정을 상하고. 상대가 완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 이야기하는 걸 내 입장에서 달리 생각하다 속 끓이는 일체의 과정이 뒤따르지 않으니 모든 게 조용했다. 그 평온이 어색했는지 내려와 술 한잔하라고 했지만 몸이 안 좋다며 따로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그동안은 정반대였다. 저희 왔어요. 친정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와 엄마의 표정과 집 분위기를 살피고. 포착되는 기운에 따라 말투와 행동을 미세 조정 했다. 고기압이네 싶을 땐 생글생글 웃으며 얼굴 좋아지셨다고 했고. 태풍 직후의 음울한 적막이 느껴질 땐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조심했다. 가면 가장 편해야 할 곳에서 뻣뻣이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더듬이를 명민히 세운 채 분주히 움직였다.
-와서 밥해 먹지. 뭣 하러 밖에서 먹고 이제야 오냐.
-고생 많이 했다.
엄마는 오후 4시가 다 돼서 도착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했고. 번잡할까 봐요. 짧게 대답했다. 엄마는 다음엔 그냥 와. 다시 한번 말했고. 나는 언제는 밥도 안 먹고 다닌다면서요. 발끈했다가 저, 저. 삐질이. 한마디에 입을 닫았다. 말을 잇지 않았고. 관심도 없는 티브이에 눈을 주고 있자 밖에 나갔다 들어온 아버지가 같은 말에 변화구를 주어 던졌다. 와서 밥 먹지. 돈도 많다. 흠....... 못 들은 척 드라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자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다음 날 아침 떡국을 먹고 서울로 출발할 때 오빠가 고생 많았다는 말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생은 뭘. 네 글자로 간결히 응수하자 오빠는 겸연쩍은 듯 내게 까칠하다고 했다.
예전이었다면 두 분 힘드실까봐서요. 오빠가 더 고생 많았지. 더없이 상냥하게 말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순전히 남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난 이렇게 심성이 고운 사람이야. 짐짓 자만심을 저 밑에 깔고 하는 말은 본성에 맞지 않았다.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구업을 쌓지 않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를 속이며 그 어떤 불편을 강요하는 말을 자신에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순간 알았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는 화행(speech act)은 내게 더 이상 맞지 않음을.
그리하여 결정했다. 비난, 험담, 무시, 욕설 등으로 듣는 사람의 귀와 의식조차 그와 같은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말 속에 갇히지 않기로.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되는 일을 원천 차단 하기로. 훈습된 습관을 끊어 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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