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고 횡단보도가 있는 방향으로 서둘러 걸었다. 멀리서 J의 실루엣이 눈에 잡혔다.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맞나. 아닌가. 땅을 보며 앞을 향했다. 가로수 옆에 자전거를 세운 채 누군가와 통화 중인 단발 파마머리의 J 표정이 심각했다. 갑자기 마주친 탓일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붕 하고 떠오르려는 찰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J를 지나쳐 횡단보도 앞에 섰다.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식의 조우는 한여름 소나기 같다. 피할 수 없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유로 종종 그랬다. 못해도 1년에 세 번은 마주쳤다. 장을 보고 집에 오다가, 롯데리아에서 애들 먹을 햄버거를 포장 주문 하고 기다리다가, 신촌에 갔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다가, 딸애와 소금빵을 사고 상가가 즐비한 골목을 지나다가, 윤희 샘과 점심을 같이한 후 국어원 후문 앞에서 배웅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J를 마주쳤다. 학술 대회나 사업 중간 발표회에서도 두어 번 만났다. 공적인 자리에선 가볍게 목례를 하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곳에서도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J를 참 좋아했었다. 그러다 서운해졌고 미워했다가 끝내 놓아 버렸다. 그러는 동안 J는 내게 긴 카톡을 보내오기도 했다.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하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나는 반나절을 고민하다 그 길이의 두 배쯤 길게, 그러기 어렵다는 말을 적었다. 파티션을 두고 마주 앉은 우리는 미묘하게 서로를 의식했고 회의에서 안건을 두고 숱하게 부딪쳤다. 그런 날은 감정이 요동쳤고. 그 건과 별개로 10년 전, 그가 나에게 던진 냉소의 말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결혼 전. 화요일 저녁마다 J, 경신 샘과 술자리를 가졌다. J가 나를 '짝꿍'이라 칭하던 때였다. 일하다 비슷한 또래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나와 다른 J에게 끌렸고 금세 친해졌다. 나 역시 그를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로 생각했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좋았고 가볍고 사랑스러운 몸짓이 부러웠다. 뭘 해도 어둡고 무거운 나는 J에게 나를 투사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투사가 J로 하여금 나를 강제 추방 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사이가 멀어지는 데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부주의하게 던져진 말들이 쌓이고 쌓여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를 덮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언젠가부터 나를 빼고 옆자리의 B와 다다다다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오후 3시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 1시간 넘게 자리를 비웠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같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전전전전 팀장님이 주신 돈을 가지고 나만 빼고 다른 샘들과 차를 타고 나가 브런치를 먹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자기 차례가 된 민원 업무를 앞두고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냐며 나에게 그냥 쭉 민원을 맡는 게 어떻겠냐고 누차 가스라이팅한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앞으로 20년 뒤엔 전전 팀장님보다 더 잘돼 있을 거 같냐는 말에 그럴 수 있을 거라 대답하니 정말? 네가?라고 세 번이나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되물은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J가 있는 자리의 점심 식사는 회식이 아니면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J는 단 둘이 점심을 하자고 회사 메신저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못 해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J는 그가 모르는 나의 시간에 대해 불쑥불쑥 물었고 나는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경계를 지었으나 그 후로도 몇 번 내게 선 넘는 질문을 했다. 그때도 다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 상종할 수 없겠다. 마음먹은 건 그로부터 오래지 않았다. 네이버 오픈사전프로에 ≪딸애가 말하고 엄마가 엮은 연상어사전≫을 만들고. 네이버에 서면 인터뷰 기사가 나고. 한 출판사로부터 해당 콘텐츠로 에세이를 출간하자는 제의 메일이 오고. 그해가 지나고 다음 해로 바뀌던 겨울. J는, 본 콘텐츠와 콘셉트, 구성, 아이디어가 같은 사전을 자신의 셋째 아이의 말로 만들어 오픈사전프로에 탑재하고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 그것도 여러 번. 나를 제외한 팀 사람들을 단톡방에 초대해 자신의 사전을 즐겨찾기 하고 라이킷을 눌러 달라고 요청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참을 수 없었다. 도저히. 사이가 좋았다 멀어진 사람에 대한 감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분노하고 분노했다. 속은 곯고 곯았다.
그 후 브런치에 가입했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여러 감정이 섞여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J에 대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글을 쓰면서 알았다. 그 분노의 이유가, 유년에서 습득된 부정적 신념이 건드졌기 때문이라 것을. 역기능적 가정에서 철저히 '잊힌 아이(lost child)'로 살던 자신이, 온전한 나로 지내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가 J의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나를 분노케 했다는 것을.
J에게 연락을 해 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의 가정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말았다. 딸애가 아플 때도 그랬다. 둘째의 엄청난 사춘기로 힘들다는 말을 사무실에서 한 번씩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J는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났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내 이기심이었고.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는 그때도 지금도 아니었다.
원에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팀 사람들에게 초콜릿과 편지를 전할 때 J를 빼지 않았다. 그만 빼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고마웠고 미안했다고 적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20대 후반에 만나 40대 중반을 지나는 동안 어쩌면 J는 나의 민낯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었다. 우리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 속 주인공 같았다. 그토록 좋아했으나 그러기에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 버린 나와 완벽히 대칭이었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올해도 J를 마주치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전 일을 하는 한 계속. 미움과 분노의 강을 건너 이제 와 그를 향하는 마음은 뭐랄까 '어쩔 수 없음'이다. 한때 몹시 소중했던 '시절 인연'에 대한 '받아들임'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J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
너무 힘들지 않은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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