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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거리가 넘치는 친정집은 사랑방

운전면허 필기합격과 친정방문

by SHOOT

개운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았다.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시험장을 가보았다.

차에 대한 거부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택시를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운전면허 필기 시험장은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반거리에 위치하였고, 택시이용 시 25분이 소여 되는 거리였다. 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평일근무한 몸을 이끌고 주말에는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나를 위해 남편의 권유대로 택시를 고려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몸의 상태를 보니, 택시를 타고 가길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동안에는 꽤 괜찮은 몸이 택시로 인한 멀미일까.


떨어지면 어떡하나?

추위로 인한 몸살일까. 시험접수를 하는 동안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약간의 쌀쌀함을 느끼며 대기번호를 기다렸다. 시험을 치르기 전, 사실 떨어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무려 3주간 조금씩 해왔지만, 출퇴근시간에 이용한 것이라 온전히 집중을 한 공부시간을 얼마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운전면허 시험 준비 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떨어지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나라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입실했다.


조심스럽게 콧물이 나오면 써도 되겠냐며 압선 걱정에 휴지허락을 받아 가방이 아닌, 급하면 바로 쓸 수 있는 주머니 한편에 넣어두고, 시험자리로 이동한다. 수험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것 같은데, 입력한 것이 모니터에 표현되지 않다 이상하다. 이대로 시험을 보는 건가? 생각이 드는 찰나 순찰하며 관리감독하시는 분께서 화면은 터치스크린이 이니 화면 크기를 본인에게 맞춰 조절하면 된다고 한다. 화면을 재조정하니 다행히도 수험번호는 잘 입력되었다. 역시나, 숫자를 알아야 하는 몇 년, 벌금 얼마 같은 문장형 문제는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로 다음문제로 나아간다. 모니터에 몸에 웅크리고 약간은 불편한 자세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분명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 것이 콧물은 걱정과 달리 나오지 않았지만, 몸이 왜인지 약간의 추위를 느꼈다.


그렇게 문제를 풀어가면서 약간의 좌절 구간과, 다행을 느끼는 구간을 지나 종료 10분 전 정도가 되었을 때, 알람창이 뜬다. 남은 문제가 꽤 되는 것 같은데 속도를 내어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역시 속도에 쫓기면 마음이 불안하고 종이에 검은색 마킹으로 시험을 본 세대로서는 이 시험의 형태가 눈이 불편하고 마음이 불편하고 잘 읽히지가 않는다.


종이 시험 문제에서는 손으로 보기를 시원스럽게 엑스 쳐놓고, 애매한 것은 세모로 표시하며 한눈에 시각적으로 확인이 되었다. 바뀐 ctb시험 방식은 표시나 메모를 할 수 없다. 찰나의 순간에 이제는 교과서도 전자책으로 된다고 하던데, 모든 것이 디지털 화되어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좋은 걸까?


문제를 다 풀고 나니 약 5분 정도가 남았다.

잠시 생각해 본다. 시험종료버튼을 누르고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찰나의 팝업창이 뜰 수도 있겠지란 생각에 1분 전에 먼저 제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남은 5분 동안, 빠르게 풀었던 문제들을 돌아본다. 마음에 걸렸던 문제를 다시 천천히 읽고 결정을 하고 2분 정도가 남았을 때는 마킹이 누락된 문제는 없는지 검토를 한다.


엄마한테 갈래

남은 시간: 1분 시험종료. 78점. 오예, 약간의 피로감에 집중을 해서일까 몸이 살살 피곤하다. 어제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사실 시험 끝나고 집에 올 것을 권했지만, 집에서 쉬고 싶다고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이 해방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황급히 작은언니에게 전화를 해보니, 때마침 고기파티는 점심이 아닌 저녁이라고 한다. 점심이면 아예 못 먹겠다는 생각에 포기했었는데, 저녁 파티라는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 효녀가 된다고, 하던데 내가 하는 행위가 효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될 때면 최대한 부모님에게 얼굴을 비추려고 한다. 엄마 보러 가요라는 온전한 이유라기보다는, 약간의 구실거리와 함께 가는 것이니 효녀는 아닌 것 같다. 이번의 구실거리는 병원 들리기와 고기파티다.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나는 가장 먼저 집에 빈손으로 방문하기가 멋쩍어 붕어빵을 사 왔다. (가장 많이 먹은 분이 엄마여서 기분이 좋다.)



구실거리가 넘치는

원래는 바로 엄마집에 갈 것이 아니라 신혼집에서 가족구성원들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챙겨가고 싶었다.

키위, 배, 그리고 화장품 샘플 말이다.

시험을 치르고 난 시간은 10시 반

병원문이 닫는 시간은 1시간 반

우리 집을 들렸다가 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 바로 엄마집으로 가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가족 구성원들이 왔다. 이번에는 작은 언니네가 댕댕이도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왁자지껄하게 먹었다. 전에는 이런 순간들이 아니, 정확히는 학창 시절에는 별다른 감회가 없었지는데, 지금은 참 좋다. 형제는 평생친구라는 말이 있던데, 미우나 고우나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좋다니.


각자가 각자의 구실로, 엄마집은 사랑방인 것처럼 드나드니, 4명 중 한 명이라도 엄마집에 부모님의 헛헛함을 달랜다. 엄마는 빈둥지가 되어 이렇게 와서 무언가 내가 아이들에게 챙겨주는 소일에 대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남편이 출장 간 나를 위해 엄마는 조금씩 안 판다면서 호박과 감자, 그리고 해물파전 등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한쪽에서는 포장해서 보낼 음식들을 챙겨주신다. 아빠는 엄마는 너희들 일은 만들어서 한다면서 나무라는 것인지, 칭찬하는 것인지

진심을 알 수 없는 말을 하신다. 엄마는 서울에 홀로 올라와 자식 4명을 키우면서 친구들 그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면서 이야기하곤, 그리곤 나의 행복은 이렇게 우리를 챙기는 것이라는 말씀하시는 것이 요즘따라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모님처럼 되기 싫었은데,

그런 부모밑에 자란 나는 지금 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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