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그것이 어떤 모양새를 띄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건지.
찾아 오기는 할는지.
뉘엿뉘엿 가 보고는 있는데, 있기는 한건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삶의 기한에서 아쉬움만 남을 것 같아서.
삶의 영역 바깥 사방으로 튀어나가
위로나 아래로나, 생의 앞이나 뒤에나 퍼져있는 행복을
미리 끌어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뭘 알아보고 가져다 쓸까 고민하다가
그게 명명되어, 보여야만 행복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형태를 아무리 갖춘다 할지라도
그 감각이 없다면 가짜겠지. 본질은 그 감각에 있는것 아닐까.
행복이라는 이름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명목상의 형태가 다가와야만 행복하겠다'는 태도는
내 인생이 얼마나 길 지 모르는 때에
너무 태만한 모습 같았다.
그래서 내가 별것 아닌 오늘 하루를 마주했다 해도,
나의 행복은 이미 찾아 와 있다고 미리 받아들이는
행복의 대출같은 태도가 필요했다.
'행복의 마음을 미리 가져다 쓰는 삶
형태가 없기에 갚지 않아도 되는 재화'
기대를 미뤄둔다고 해서
그날의 행복이 커질 수 없고,
미리 가져다 품는다고
마주할 행복이 작아지지도 않는다.
감각적으로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 발현되는지를 알아채고
내가 알아챌 수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아가는것이
행복의 삶이 아닐까.
뭣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행복을 넘어서는 행복이 또 따로 흔한것도 아닌만큼
사사로운 행복을 누적하면서.
삶을 돌아보면 곳곳에 끼어있는 행복에
그래도 나는 행복한 떨림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