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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터 Feb 11. 2021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유와 그 이후의 변화

2020년 10월 18일,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작년 상반기, 상사가 내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 전에도 팀원들과 서로 맞팔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의 사생활이 너무 낱낱이 공개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입사 초기에 친해지고 싶었고, 다들 서로서로 맞팔 중이길래 안 하면 오히려 겉돌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든 안 하든 겉도는 건 마찬가지. 하하). 처음엔 상사가 내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짧게 다녀온 국내 여행의 사진을 몇 장 올린 다음 날 출근했더니 그가 „너 여행 다녀왔더라?“ 라고 하는 것이다. 순간 동공지진. 내가 여행을 다녀온 지 어떻게 알았지? 대충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에 날 팔로우한 사람들을 찾아봤다. 아이디에 익숙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계정을 확인해보니 역시나였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팔로우하면 한번쯤 그 계정의 사진을 훑어보곤 하는데 처음 발견 당시에는 아이 사진으로 가득한 그 계정의 소유자가 나의 상사라는 걸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회사에 온갖 정이 떨어진 상황이었고(그 중심엔 바로 그가 있었다), 나를 이해하는 몇몇의 선배들을 제외하고는 회사 사람들과 사적인 생활까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없어졌다. 더 분명히 말하면 회사와 연결된 아주 사소한 것을 볼 때마다 끔찍한 회사 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에 퇴근 후에 회사를 떠올리는 그 무엇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심할 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녹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존재가 내 사생활을 지켜보며 실제로 만났을 때 그것에 대해 언급한다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요즘 트렌드에 민감하고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X세대의 그는 왜 이런 우를 범하는 걸까?

상사와의 SNS 친구를 거절하는 이유는 스브스 뉴스의 다시 만난 세대 2화를 꼭 참고하시길.(심지어 3년 6개월 전 콘텐츠다.)

https://youtu.be/C6Qt9efRI0w


심지어 코로나 시국이 도래하면서, 회사는 개인의 사적인 활동과 동선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시행 후에는 출퇴근 시 기록되는 GPS 정보를 수집했고, 심지어 직원의 주소지와 하나하나 대조해볼 정도였다. 직접적으로 직원들의 퇴근 후 일과까지 감시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회사 내 분위기 속에서 상사가 지켜보는 SNS에 외부 음식점 사진을 올리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내 생활을 기록하고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한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하나를 올릴 때마다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고,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나의 ‘퇴근 후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인 회사가 내 사적 생활까지 침범한다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비공개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회사 직원은 물론 업계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계정들은 그 누구도 내 계정을 찾을 수 없도록 프로필 사진에도, 이름 입력 란에도 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알고 있는 지인들 중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 생활을 공유하고 싶은 이들에게만 새 계정의 존재를 알렸다.




다시 즐거운 인스타그램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새로운 계정에 내가 올리게 되는 건 대부분 회사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였다. 2020년은 아홉 수를 제대로 겪은, 지독한 해였고 9할이 회사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거기 누구 없소. 억울한 내 얘기 좀 들어 주오.’하고 문을 두드리는 곳은 언제나 새로 만든 부계정의 피드였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짧은, 때로는 긴 말들을 쏟아 냈다. 배설의 창구였다.


그렇게 쏟아 낸 배설물들 덕분에 속은 조금 시원해졌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스트레스가 생겼다. 계정을 두 가지로 운영하다 보니 내가 업로드한 글이 다른 계정에 올라가지 않게 더욱 신경 써야 했고 회사에서 SNS를 주제로 대화할 때 스스로 말실수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또 본계정에 게시물을 올릴 때보다 ‘좋아요’ 수가 적은 것에도 괜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본계정에는 5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있었고, 부계정에는 100명이 조금 넘을 뿐이라 ‘좋아요’ 수가 다를 수 밖에 없는데도 내가 애정을 갖고 선별한 사람들 중 70-80%가 나의 게시물을 ‘좋아’하지 않는 건 나라는 사람을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들 중에는 매일 피드의 모든 게시물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고, 혹시 보더라도 사진만 보고 휘리릭 넘기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이 ‘좋아요’ 버튼은 나를 계속 작아지게 만들었다.


불행을 전시하는 나의 게시물은 당연히 타인에게 피로가 될 터였다.그걸 알면서도 공감 받고 위로 받고 싶어 계속해서 감정을 토로했고, 그렇게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면 나 같아도 피드에서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라며 더욱 위축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런 나와 달리 인스타그램 속 지인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특히 회사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고,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과 계속 나를 비교했다. 나의 끔찍한 회사 생활로 인해 인스타그램에 회사 일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업로드하고 싶지 않은 나에 비해 그들은 자신의 일과 성과를 계속해서 표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애정을 가득 담아 소개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조차 부러움을 넘어 일종의 시기심이 생기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좋은 중견기업에 잘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내부의 부조리나 위계가 심한 문화는 날 숨막히게 했다. 게다가 서른을 눈 앞에 둔 나는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내 직무에 대한 회사 내 무관심 속에 놓인 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사소한 이슈로 상사가 나를 지나치게 혼내곤 하는 이 회사에서 내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거라는 희망도 없었다. 이런 나와 달리 친구들은 외부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대한 회의를 품는 것 같진 않았고 자신만의 길에서 의미있는 일을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찬 밀레니얼 세대답게, 자연스럽지만 똑똑하게 스스로의 가치를 SNS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지운 날


어느 날, 나는 불만족스러운 외모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종종 어느 한 구석도 예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그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비하로 이어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 와중에 인스타그램에서 예쁘고 똑똑하며 매력적인, 언제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내 친구의 게시물이 보였다. 얼마 전 일하면서 처음 만난 동년배의 여성과 따로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한 게시물이었고, 그 아래에는 상대의 애정이 가득 담긴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걸 보며 순간, 내가 공개 계정을 열심히 운영할 때는 일하면서 만난 좋은 업계 사람들과 나름의 즐거운 교류를 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가 SNS로 스스로의 매력을 잘 드러내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SNS로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자기PR 시대에 내가 괜한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공개 계정을 운영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회사 내 평판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내 계정을 운영할 자신도 없었다. 난 분명 회사 일과 관련 없는 일을 업로드할 때도, 일과 관련된 게시물을 올릴 때도 뒤에서 내 얘기를 할 것 같은 그들을 생각할 것이었다. (언젠가 뒤에서 내 얘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후로 작은 행동도 스스로 검열하고 점점 위축되었다. 신경쓰고 싶지 않은 마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정말 힘들었다.) 내가 SNS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일상이든, 솔직한 마음이든, 클라이언트의 SNS에 댓글을 다는 일이든. 괜히 뒷 말이 나올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나는 SNS를 하며 그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는 격렬한 마음으로, 충동적으로 계정 내의 회사 사람들을 모두 차단해버렸다.


차단하고 나니 속이 시원할 거란 생각과 달리 ‘내가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일해야 하는 사이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계정을 차단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더 이상 그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차단했다는 걸 상대가 알 수 있는지, 인스타그램의 시스템은 얼마나 개인을 보호해주는지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상대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 있었다. 내가 차단한 사람들이 팔로우하는 계정에 내가 댓글을 달 경우, 그들이 다른 계정으로 그 게시물을 확인할 경우, 그들이 그 댓글을 확인하고 내 계정을 눌러 볼 경우 등 다양한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결국 내가 부계정처럼 이 업계와 연결된 모든 SNS를 끊어버리지 않는 이상, ‘자유로운 SNS 활동’과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상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했다.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생각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소중한 일요일 아침에 새벽에 깨서 4시간 동안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회의감이 쏟아졌다. 매일 시간이 모자란데, 겨우 이런 일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너무 피곤했으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위해서 계정을 두 개나 운영하면서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는 건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말이 '셀프 브랜딩'이지, 몇몇 계정을 차단하더라도 내가 SNS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런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타인에게 내 삶을 공개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뭔지 생각했지만 답은 없었다. 그에 비해 괜한 자격지심과 스트레스의 이유는 명확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렇게 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후, 내 삶의 변화


밀레니얼 세대 끝자락에 있는 90년대 초반 생으로 살아가며, 내 인생의 2/3를 SNS와 함께 했다. 초등학생 때는 세이클럽 타키, 중고등학생 때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학 입학과 동시에 스마스폰이 보편화 되며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대학 졸업 무렵부터 지금까지는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졌다. 인생의 시기가 SNS 매체로 나눠질 정도다. 그 중에서도 나는 언제나 SNS 헤비 유저였다. 내 삶을 온라인 상에서 공유하는 것이 당연한 인생.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곳에 가면 '오, 이건 인스타에 올려야지.'라고 자동으로 반응하는 인간으로 개조가 된 것이다.


그랬던 나는 인스타를 끊은 이후, 조금 변화한 일상을 살고 있다.



1.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울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반신반의 했다. '내가 정말 인스타를 끊을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고 싶어지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정은 살려 두었다. 몇 년 동안 나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장과 같은 내 계정을 삭제할 수는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지우던 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생각과 감정의 정리가 필요했다. 보통 SNS로 쏟아내곤 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아이패드에서 아주 가끔 사용하던 'GoodNotes' 앱 속 일기장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부터 매년 다이어리를 골라 일기를 썼는데 최근 몇 년의 일기장에 채워진 날보다 빈 칸이 더 늘어난 걸 확인하고는 2020년에는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대신 필기를 할 수 있는 노트 어플리케이션 'GoodNotes'에 일기장을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면 생각을 기록하곤 했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며 일상 기록에 대한 욕구를 해결한 탓인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정리된 언어로 쓰는 일기장과 달리, 인스타에는 생각나는 대로 단어를 나열하며 짧은 문장이나 이모지(emoji)를 올려서인지 최근에 문장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업로드하던 시간에 앞으로는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인스타그램 속 글을,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기장으로 옮겨 오기로.


친구가 '아침 일기'를 쓰고 있다는 말에 나도 그 방법으로 시작해보았다. 매일 아침, 어제의 일기를 썼다. 친구의 말대로 다음 날 아침에 일기를 쓰니 어제 내가 겪은 일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감정적인 부분도 꽤 덜어낼 수 있었다. 종종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지긴 했지만 내 기분을 글로 정리하고 좀더 긍정적인 다짐을 쓰게 되었다. 부정의 아이콘인 내게 필요한 긍정의 힘이었다. 알고 보니 아침 일기는 여러 자기 계발, 경제 경영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아침 습관' 등으로 소개되었다고 했다. 얻어 걸린 느낌이긴 하지만 확실히 정신 건강에 도움은 되는 것 같다.




2.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feat. 규칙적인 생활)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운 채로 인스타 피드를 훑곤 했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까지 보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30분,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습관적으로 짧게는 10분에 한번, 길어도 한 시간에는 한번 씩 인스타를 켜곤 했다. 아이폰에서 알려주는 앱 사용 시간을 보면 하루에 평균 3-4시간이 기록되었다. 10분씩, 20분씩 보던 게 하루 종일 쌓이면 충격적인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매일 시간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9시간 노동과 7시간의 수면 시간, 2시간의 식사 시간, 2시간의 씻고 준비하는 시간(넉넉히)을 제외하면 평일 하루의 시간이라고는 4시간 밖에 남지 않는데 그걸 온통 인스타를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업무 중에도 회사 계정을 관리해야 하고, 틈틈이 내 계정도 봤지만 그래도 너무 길지 않은가!)


아침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출근 전 여유가 필요했다. 몇 개월 간 이어 온 독일어 공부도 퇴근 후 녹초가 되는 바람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포부로 도전한 브런치에도 몇달 째 아무 것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無 인스타그램 라이프로 확보된 4시간을 아침에 쏟아 붓자. 출근 전에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퇴근 후에는 휴식에만 집중하기로.


요즘 나의 루틴은 다음과 같다.

-      4시 50분 기상

-      5시 – 5시 30분 아침 일기, 차 마시기

-      5시 30분 – 6시 30분 브런치에 올릴 글쓰기

-      6시 30분 – 7시 30분 아침 운동, 명상, 씻기

-      7시 30분 – 8시 30분 공부, 아침식사


이 루틴을 지키려면 10시에 자야 한다. 약 7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 하면 절대 멀쩡한 컨디션으로 이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 계획은 이렇지만 못 지키는 때가 많다. 나는 9-6의 직장인이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면 보통 8시가 되는데 그럼 두 시간 후에 침대에 누워야 한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보통 안 받는 날은 없지) 보상 심리로 저녁을 거하게 먹고 그러면 약한 위장이 화를 낸다. 바로 눕기가 힘들다. 또 넷플릭스를 보든 그냥 빈둥거리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2시간은 모든 것을 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런 이유로 꽤 빡빡한 아침 스케줄을 매일 지키지는 못 하지만, 4시 50분에 일어나면 아침 일기, 글쓰기, 운동, 공부 중 1-2개는 보통 하게 된다. 4시 50분에 일어난 게 억울해서라도 뭐라도 한다. (다시 자더라도 아침일기는 쓰다가 잠든다거나…)


'인스타그램을 지워서 나를 위한 아침 루틴을 만들게 되었다.' 라는 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생각보다 의미 없이 SNS를 훑어보는 시간이 아주 길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지우는 것만으로 꽤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3개월이 넘도록 아침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눈을 뜨자마자 보던 인스타그램이 내 삶에서 없어졌기에 가능했다. 4시 50분에 일어나더라도 아마 침대에 누워서 인스타 피드를 보다가 한 시간을 날려 먹거나, 밤 10시에 누워서 최소 11시까지 피드를 봤을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는 팁

- 최소 7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한다. (아침 5시에 일어나려면 10시에 자야 한다. 잠을 줄이려고 하면 무조건 실패.- 베스트셀러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도 나오는 내용.)

- 알람을 설정한 기기를 최대한 침대와 먼 곳에 두고 볼륨을 아주 크게 설정한다. (누운 채로 바로 끌 수 있는 알람으로는 끄고 다시 잘 수 밖에 없다. 깨자마자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 나의 경우는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 알람을 맞추고 볼륨을 크게 설정해뒀는데,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옆집 사람에게도 욕 먹기 싫어서 벌떡 일어난다. 볼륨을 아주 작게 줄인 채로 음악이 흘러나오게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끓을 때까지 양치를 하면 잠에서 깰 수 있다.)




3.    불필요한 소비를 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공짜를 좋아한다. 세일도 좋아한다. 어떤 물건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면 기분이 좋다. 이런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행사 기간을 알아내는 정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브랜드의 계정을 팔로우하며 이벤트와 할인 정보를 얻었고, 덕분에 많은 돈을 아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시장이 형성되고, 돈이 거래된다. 거대한 SNS 시장은 일상과 정보 전달을 가장한 광고로 뒤덮여 있다.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된 이후, 인스타 피드에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개인 맞춤 광고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네이버에서 검색'만' 했던 상품이 인스타그램에 바로 뜨는 세상이다. 기업은 모두 공식 계정을 운영하며 상품을 소개하고, 인플루언서들은 돈을 받고 상품을 추천하거나 직접 제작해 판다. 심지어 보통 사람들도 SNS 리뷰 적립금을 얻기 위해, 또는 체험단 활동으로 상품을 무료로 받은 후에 좋은 후기를 자신의 계정에 올린다.  


인스타그램을 지운 행동 하나만으로, 이 수많은 광고와의 연결을 끊었다.


보이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전에는 똑똑하게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사실 불필요한 소비였다. 특히 즐겨 쓰는 기초화장품 브랜드에서 세일이나 럭키박스 이벤트를 할 때면 당장 필요가 없어도 어차피 나중에 사야하니까 지금 사는게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많이 구매했다. 그리곤 카드 할부를 갚느라 허덕였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인플루언서가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다이어트 식품을 사서 조금 먹고 버리고, 그가 매일 쓴다며 추천한 얼굴 붓기를 제거하는 마사지 기구는 몇 번 쓰곤 쓰지 않는다. 인스타 광고가 구매로 연결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런칭 기념 40% 할인', '거의 남는 거 없이 팔아요'와 같은 할인 안내에 속절없이 당하는 때였다. 당시에는 할인을 받아서 돈을 아꼈다고 생각했는데, 사지 않는 것이 돈을 가장 아끼는 방법이라는 걸 인스타그램을 끊은 후에 깨달았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지출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현혹될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당장 필요 없지만 언젠가는 쓸 것 같은 물건을 살 일이 없어졌고, 당장 필요한 것만 검색해서 사게 된다. 물론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광고가 우리의 일상에 속속들이 침투하지만, 우리의 인스타 피드 게시물 절반은 광고라는 걸 확신한다.




4.    스트레스가 줄었다.


태생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탓에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면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오랜 경험으로 스트레스가 뇌에 꽉 차서 사고가 흐릿해진 상태라는 걸 자각할 때가 있다. 이 두 가지 신호가 오면 반사적으로 생각한다. '위험하다. 이걸 해소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다.'


인스타를 지우던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체력과 의욕이 심각하게 떨어져 퇴근 후에 누워 있기만 하던 때였고, 친구들과 함께 한 짧은 여행에서도 내 체력 때문에 일정이 지연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날 새벽 네 시에 깨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면의 사이렌이 울린 것이다. '위험, 위험, 미쳐가고 있다.'


이후 3-4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완벽하진 않지만 일정 정도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 내 다정한 일화들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거나 퇴근 후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지도 않는다.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그 누군가의 자산이 직접 번 것인지 부모가 물려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줄었다.


남들과 비교할 시간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작은 계획이라도 실현하다 보니 무의미한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들이 아까워졌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것만으로도 주변에 시선을 돌릴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도 이전보다는 훨씬 덜하게 되었고,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니 오롯이 나의 삶을 살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남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알 때보다 오히려 회사 동료와의 관계도 이전보다 나아지고, 과도한 피해망상이나 다른 생각 없이 담백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었으며, 친구의 앞길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극심할 땐, 아침 루틴에 있는 명상이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SNS를 하지 않는 것에 단점도 있다. 트렌드에 뒤처진다.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잘 모르고,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 지도 잘 모른다. 이전에는 내가 먼저 '요즘은 이런 게 인기가 많더라고요.'라고 말하던 반면, 최근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듣고 '아, 그런 게 요즘 유행이구나.' 하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한 발빠르게 움직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의 상품을 팔아야 녹을 먹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이것은 어쩌면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언제나 내 연봉 인상률은 생필품 물가인상률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게 나 개인의 인생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지속적인 자기계발과 트렌드 분석으로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회사의 매출에 이바지하라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다만 당분간은 내 스트레스 관리가 개인으로서도, 노동자로서도 최우선이라고 생각할 뿐.)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후, 나는 남들을 따라 트렌드를 좇는 대신 나만의 생각과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셀프 브랜딩과 거대한 트렌드를 원하는 사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SNS로 내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지 않고, SNS를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처지는 일일 지도 모른다.(최근에는 클럽하우스라는 신종 SNS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초대장이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인싸 계급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다만 알맹이가 없는 상태에서 몸집을 부풀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후후후'라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채우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스스로를 드러내야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당장 나에게 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또 언제나 내 자리에 좀더 단단하게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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