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일기 : 둘째아이에게

2022. 9. 9. 0:59

by 가보리다


가슴이 아팠단다.
네가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었단다.​


엄마..
나는 엄마 아빠 빼고 다른 어른들이랑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


오늘, 새로 개원한 의느님네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지. 그저 어렸을 때부터 나를 귀여워해 주던 동네 아줌마였는데, 큰 병원 진찰실에서 만나니, 더 쑥스러워 하더구나.​
의느 님은, 딸과 동갑인 네 언니보다, 너를 더 귀여워했어. 척 보면 안다고, 가만 내버려 두면 똑똑해서 잘 할 아이라고 말이지.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줬는데도, 넌 긴장한 듯 얼어있었어.
아마 오늘 낮 의느님을 만났을 때 긴장했던걸 말하나 보다 했어.

그런데.. 사실.
나 학교에서 찐 친구 들이 없어. 다른 애들은 쉬는 시간에 다 다른 반 친구들 만나서 노는데 나는 전학 와서 아는 애들도 없잖아.. 내가 이 학교에서 계속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유치원 애들이 삼삼오오 놀이터에서 노는데, 밖에서 겉돌다가 집에 가자고 했을 때부터..
초등학교 여자애들 생활체육 그룹에서 짝을 지어 몰려다닐 때, 낄 곳 없이 헤매다가 어정쩡할 때,
엄마는 덜컹.. 했었어.​
너는.. 너만의 색이 너무 뚜렷한 아이였지. 학기 초 친구들이 다가와도, 흥미가 없으면 끌어당기지 않았어.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지금까지, 절친 베프가 없었지. 가끔, 학교 조별 수업이나, 현장학습 짝 정할 때 곤욕을 겪기도 했어.
그런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너보다 더 가슴이 아팠단다.


엄마도 그랬어.
엄마는 심지어 대학교 다닐 때까지도 그랬어. 다가오는 친구는 있어지만 딱히 재미있지 않았고, 내 일상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지. '나는 너희들보다 특별하고, 잘난 우등 인간' 이라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또래 친구들의 관심거리들은 다 시시했지.
그래서 엄마도 친구가 없었어. 나 스스로 친구들을 다시 켰지만, 결국엔 외롭고, 내가 뭐가 못난 걸까. 주눅도 들었어.
학교에 찐 친구가 없다며 네가 시무룩해 할 때, 엄마는 머릿속을 열심히 굴렸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나.​
3학년, 여왕벌 무리들에게 당하던 너에게 해줬던 말을 해줘야 하나..​
네가 선생님의 모범생처럼 보이거나, 엄청 착해 보이거나, 엄청 예쁘다면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꼬일 거라고.​
그런데..
이제 너에겐 그런 실천하기 힘든 말들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지금부터 많은 시간 외로와하고, 친구를 찾고, 결국 혼자 감당해 할 것도 알아.
너는 어쩜, 엄마의 삐딱한 사회성을 닮아서, 이 소중한 시간에 고민을 하고 있니..


둘째야. 지금, 그리고 앞으로 5년 6년간은 너의 부족한 부분만 특히 잘 느껴질 꺼야.. 그게 사춘기거든.
그 시기에는,
찐 친이 있는 애들도, 진짜 속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우주에 갇혀, 배려를 잃고 살지. 너도 그런 시기를 거칠 거야.​
너의 사춘기가, 언니처럼 인사의 삶이 아닐 수도 있어. 너의 매력을 찾는 친구를 못 만들 수도 있어..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스스로를 미워 하지는 마.
우리 가족, 언니, 아빠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너에 걱정말라고 해주긴 했지만,
엄마도 위로가 필요했어.
바로 낮에 만난 의느님께 전활 걸어,
외로운 딸을 보는 엄마의 괴로움을 토로했지.


늘 그렇듯 의느님은 엄마를 위로해 줬어.​
네 걱정은 말라고.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라서,
살면서 부족한 사회성을,
마치 ai가 데이터 습득하듯 배울 것이라고.​
아직은 그 정도로 절박하지 않을 뿐이라고.
내년에 중학생이 되면 또 달라질 것이라고.

엄마도 알고 있어.
너는 늘..엄마가 다그치면 더 안좋은 실적을 냈지.
예선을 통과해서, 스파르타 예습을 시키고 본선에 내보냈던, 삼성생명 미술대회.
엄마의 잔소리와 예습에도 불구하고, 본선에서는, 네 재기발랄함을 볼 수 없었지. 결국 탈락을 했어.

삼성생명 예선 통과 작품..초 2 가보리다 주니어

그러고 보니, 니가 이룬 모든 성취들은, 내 잔소리 없이 네 창의력만으로 이룬 것이었는데...​
이 건망증 심한 엄마는 자꾸 까먹는단다.

오늘도 네가 외로울까 봐..​
대신 아파했다.

엄마. 오늘은 내방에서 혼자 잘래.
엄마방 슈퍼 킹사이즈 침대가 편하다며 늘 같이 자던 네가, 오늘은 혼자 자러 갔구나.​


혼자 생각하는 밤,
너만의 깨달음을 찾아
부디..
엄마만큼은 외롭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기를
엄마는 믿는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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