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은 무엇이든 미루는 버릇이 있다. 그럼 사람, 그런 A양을 우리는 '게으르다'라고 말한다.
'게으르다: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 있다.' A양은 곰곰이 자신의 짧지 않은 지난날을 생각해 보았다. 행동이 느린가? 남들에 비해 무엇이든 느린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1학년, 매 순간 이유 없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책상에 앉히기 위해, 내공 많은 담임선생님은 매일 커다란 숫자가 그려진 그림을 색칠하게 만들었다. 0부터 100까지 있었던 그 그림들은 아마 A양의 담임이 오랫동안 쓰고 있는 자료 중 하나 일 것이다. A양은 그중 몇몇 그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예를 들면 0은 달걀이었고, 2는 뱀이었다. A양은 담임은 그날 색칠을 완성해야만 집에 보내준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아침시간에 다 그리거나, 점심시간에 완성했지만 A양은 단 하루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때의 A양은 지금처럼 미루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A양은 그저 남들이 할 때, 자신도 따라 했다. 모두가 아침시간에 색칠을 해서 본인도 했고, 점심시간에 수다를 떨며 색연필을 들길래 그녀도 파란색 색연필을 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모두가 그날의 색칠을 완성하고 집에 갈 때, A양의 연습장은 고작 반만 채워져 있었다. 결국 A양은 학교에 남아 연습장을 꼭꼭 채우고 나서야 꾸벅 인사를 하고, 집에 갔다. 그동안 담임은 같은 교실에서 컴퓨터로 제 볼일을 봤다. 아주 잔잔한 침묵 속에서 그 둘은 각자의 할 일을 했다.
대부분 A양의 일이 먼저 끝났다 A양은 꾸벅 인사를 한 후, 실내화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예외인 날도 있는 법. 아마 59를 색칠할 때 즈음이었다. A양은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다가 색칠을 전혀 못한 채로 학교가 끝난 적이 있다. 미리 해둔 것인지 A양의 친구들은 곧장 집에 갔고, 또다시 A양은 담임과 둘이 남아 색연필이 닳도록 칠해야 했다.
그 작업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때 A양은 우직함이 소와 같았다. 어른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어른스럽다고 했다. A양이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A양은 교실이 가을처럼 물든 것을 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교실보다 더 붉은색으로 번져있었고, 그게 마치 며칠 전 배운 수채화와 비슷해 보였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길 때, 의자에 기대 졸고 있던 담임은 잠에서 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였을 것이다. 말없이 가방을 챙기는 A양을 보며, 그녀도 짐을 챙겼다.
둘은 함께 교실을 나왔고, 함께 신발을 갈아 신었다. 담임은 A양의 손을 꼭 잡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것이 꼭 타오르는 노을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아주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학교는 어떠니, 친구들이랑 싸우지는 않니' 그런 사소한 물음에 A양은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학교는 재밌지만 무서워요. 친구들이 싸우는데, 저는 도망가요.' 피식피식 웃으며 담임은 A양을 집에 바래다주었다. 어김없이 A양은 꾸벅 고개를 숙였고, 담임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흠, 생각을 마친 A양은 결론을 내렸다. 행동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색칠공부 이외에도 A양은 다양하게 남들보다 부진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럼 두 번째,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평일이 되면 A양은 빨래처럼 몸을 축 늘이고, 어기적어기적 버스에 오른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가능한 누워있으려고 하고,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피곤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A양은 늦게 도착하거나, 과제를 늦게 제출해서 감점을 당한 일은 없다. 어디든 10분 일찍 가고, 과제도 적어도 하루 전에는 제출한다. 하지만 집을 나설 때, 과제의 첫 줄을 쓸 때, 그녀는 누구보다 싫어한다. 아무 일이 없을 때 가능한 누워있으려고 하지만, 대부분 일이 생기거나 스스로 일을 벌인다. 스스로 벌인 일에는 아주 후회하지만 대부분 해낸다.
그럼에도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수업에 5분 늦은 적도, 잠에서 깨지 못해 결석을 한 적도 있다. 제가 벌인 일이 귀찮아져서 취소해버리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A양은 게으른가? A양은 이 명제에 대해 '예'라는 대답을 내놓기로 했다. A양은 게으르다. 만사가 귀찮고, 다음 생이 있다면 돌멩이로 태어나 가만히 있기를 원하며,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북이다. 하지만 A양이라는 거북이는 나름 성실하다. 때로 더위에 지쳐 드러누워있다가 하늘 구경도 하고, 또 가다가 마주친 풀꽃 이름을 기억해 내려 끙끙거리다가 제시간에 도착하지는 못해도, 결국 바다로 집으로 돌아간다. A양은 성실하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지만 여전히 우직하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나름대로 게으른 오늘, 그런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