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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Dec 25. 2020

오늘도 잘 살아남았다

2020년 생존기: 내년은 잘 될 거야 아마두

한달째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나갈 곳이 없다. 오늘 코로나 확진자가 1200명이 넘었다는 속보가 들리는 크리스마스, 어디론가 나갈 수도 없는 크리스마스. 어차피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다. 스무 살 넘어서도 크리스마스가 딱히 즐거운 날로 기억된 적이 없다.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 징크스랄까. 항상 크리스마스에는 바쁘거나, 아프거나, 해외에 나가 있거나 셋 중에 하나였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입장에서 오히려 크리스마스에 난리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의 생일이 한국이랑 일본에서만 커플 기념일인 건지. 


그래서 그런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는 흔히 생각하는 노래들이 아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is Christmas is You>도 아니고, 발라드 가수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도 아니다. 아는 사람이 더 드물 수도 있는, 2008년에 발매한 소울컴퍼니의 <Soulful Christmas>를 제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캐롤 같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의 이 노래가 오히려 좋다. 무작정 크리스마스라고 즐거운 건 아니잖아. 오히려 이번도 한 해가 지나가고 말았다는, 산타를 믿을 때는 지난 어른들의 크리스마스 노래.



어렸을 땐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게
죄다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 믿었는데
어느 새 감상적인 상상도
삶의 마라톤으로 발악처럼 잊고 살았어
그 땐 매달아놓은 양말 속을
바라보고는 선물에 깜짝 놀랐었는데
어느 새 내가 다 컸을 땐
이미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어
안타까워 단 한 번만 돌아와 줘
산산조각 나고 사라져버린 상상 속의 산타클로스
단 한 번만 돌아와 줘
산산조각 나고 사라져버린 상상 속의 산타클로스



이렇게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나는 크리스마스도 드물텐데. 그만큼 나에게도 신나는 해는 아니었다. 하필 코로나 19가 터진 상황에서 “진작 작년에 취직했어야 했다”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반복되는 면접에 자존감이 꺾이는 상황도 얼마나 많던지. 내 탓이 아니라고, 올해가 유독 잔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마음 한 구석이 쓰린 건 별 수 없다. 올해 하반기,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의 최종 면접을 떨어지고 나서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다. 한번 부딪힌 벽을 다시 확인하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른 길을 찾을 자신도 없었다.


솔직히 나 크리스마스가 별로 좋진 않지만
왠지 즐거운 날인 건 인정할게
12월 25일, 밖에 나가면 얼굴을 가려
이젠 부모님도 내게 선물을 안줘
나도 어렸을 땐 참 좋아했지
산타가 없는 건 알았지만 믿는 척했지
내 나이 곧 스물둘. 이번 크리스마스도
케빈과 함께 보낼듯해 가사나 쓰고
그나저나 올 한해도 이제 다 저물어가
새해를 맞이할 시간이 왔네 모두 다
건강하길. 그리고 복많이 받길 또
힘내자 이건 나의 자비와 기도


그럼에도 조금 나아진 게 있을까. 그나마 작년보다는 마음을 찔러대는 사람들이 조금 사라진 게 나은 걸까. 항상 아프게 마음을 찌르는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가족 간의 싸움에 낑겨서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작년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진 걸까. 예전에 어디서 사주를 보았을 때 그러던데. 집에서 가장 막내인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다 챙겨주어야 하는 팔자라고. 정작 나를 챙겨줄 사람은 별로 없어서 많이 외로울 것이라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마음이 아픈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작년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아진 걸까. 그래봤자 옆에서 텅 비고 도움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상처 받는 건 변함이 없지만. 



유난히 늦게 나타난 올해의 첫 눈
그저 아무 말 없이 홍대거리를 걷는
내가 혼자 흥얼이며 짓던 표정들
이 노래는 앞이 안보이던 그 까만 밤의 손전등
그 날 난 사람들과 함께였지
하지만 불안한 기분의 맘을 감출 수는 없었지
이제 며칠이나 지나가고 있는건지
내게 넌지시 건내던 너의 웃음은 여전히
눈 앞에서 반짝거리고 있는데
이 곳 하늘에서 쏟아지는 흰 눈에
니 목소리가 부딪히기에 난 빙그레 웃고 있어
그래 난 오늘도 이렇게 웃음을 지을래
오, 당신은 이 곳 시린 땅 위에
간절하고도 진실한 희망이 돼
그 곳 남쪽 하늘에서 계속 웃어줘
그 웃음은 구름을 타고 이제 눈이 되어 흩어져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다른 교육원 동기들보다도 일을 더 많이 주어서, 가장 친한 교육원 실습생 언니가 정규직 전환 될 확률이 크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 참 좋기는 한데.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절대 나쁜 곳인 아닌데. 사람인지라 아직도 욕심을 다 버리지는 못했나보다. 기획 업무는 재미있긴 하지만 사무실에만 있는 건 내 성격에 영 안 맞나보다. 이 놈의 드라마, 업으로 삼으면 싫어질 줄 알았는데 싫어지지는 않는다. 업으로 삼으면 싫어질 까봐 그렇게 피해 다녔던 건데. 


그래도 올해는 스스로를 더 토닥여줘야겠다. 올해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참 잘 버틴 해라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 지는 몰라도, 언젠가 끝날 때까지 조금은 더 사랑하는 사람들과 버텨보아야겠다.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과 일이 있으니 삶을 놓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내일은 아마도 조금 나아질 것이라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그저 휴일이 끝나기 전에 넷플릭스에서 <퀸즈 갬빗>을 보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아, <Soulful Christmas>도 좋지만 <아마두>도 힙합 캐롤하면 빼놓을 수 없지.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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