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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Dec 27. 2021

도망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2021년 생존기

올해도 신나지 않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

2019년에도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2021년도 비슷한 해로 기억할 것 같다.

그동안 브런치 글이 뜸했던 것은...

생애 첫 정규직 취직을 했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12일에 첫 정규직 출근을 했다.

그리고 2021년 12월 9일, 4일의 연차를 쓰고 첫 정규직 회사를 관두었다.


왜 회사를 관두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많다.

절친한 친구 한 명은 내게

"드라마 피디 꿈꾸던 애가 회사에서 드라마 한 편 찍고 나왔다."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회사를 관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 정규직 회사에서 내 커리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으리라는 판단,

2019년 말에 찾아온 심장 통증이 2년 만에 다시 찾아올 정도로 악화된 건강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던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약자들끼리 자기도 모르게 서로 칼로 찌르는 지옥에서 도망쳐야 한다."

는 생각이 가장 컸다.

나마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도망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교훈,

올해 얻은 것 중 가장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다.




2019년이 썩어빠진 판 자체에 진절머리 난 해였다면,

2021년은 썩어빠진 판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웠다.


썩어빠진 판으로 들어오니 지옥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불행을 애써 행복이라 스스로 속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빠진 불행의 구렁텅이 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라 세뇌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지옥.

꿈 많던 사람들이 시스템 속에서, 알량한 권력자 앞에서 자아 의탁을 하며

자기 생각이 없는 좀비로 변해가는 꼴을 보는 지옥.

그리고 나마저도 자기 생각이 없는 좀비, 알량한 권력의 사냥개가 될까 두려워지는 지옥.

알량한 권력자들이 채워둔 쇠사슬을 끊는 것마저도 용기가 있어야 겨우 도망칠 수 있는 지옥.

그 지옥 속에서는 권력자가 아닌, 지옥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자가 돌을 맞는다.

지옥이 굳이 사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정말 진정으로 신이 있다면, 재키와이가 말한 대로

이 빨간 십자가가 가득한 서울에서 저 알량한 권력자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렸으면 좋겠네.




얻은 것이라면... 늙은 여우가 나를 사냥개로 길들이려다 실패했다는 것.

어디서 감히 나 길들이려고 들까.

또 다른 베스트 프렌드가 그런 말을 했다.

"야, 니가 완전히 고분고분한 스타일도 아닌 것 같고

완전히 쌈닭도 아닌 것 같아서 사냥개로 길들이려고 한 건데...

총여학생회 출신 쌈닭인 줄도 모르고 사람 잘못 본 거지."


고 이한빛 피디가 조금이라도 이해된다고 하면 오만한 걸까.

이 판에서 제정신으로 버티느니 죽음을 택한 자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죽지 않으련다.

억울해서라도 못 죽겠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이런 말을 한다.

"신인 배우 시절, 누군가의 여자 친구 역할만 맡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거머리처럼 살아남아서 이 판을 뒤집어버리겠어."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을 잃는 순간마다 다짐했다.

죽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길들여지지도 않고 순응하지도 않으며,

평생 칼을 휘두르며 저 이빨 빠진 호랑이들의 머리를 베고

그들의 피 흘리는 머리를 짓밟으며 저 왕좌 위로 올라가리라.

그리고 이 썩어빠진 판을 하나부터 열까지 뒤집어버리고 말리라.







Ooh I'm Lion I'm a Queen
그래 Ooh 날 가둘 수 없어 아픔도

더 탐을 내지 말어 자릴 지키는 Lion
때로는 사나워 질지 모르니
이제 환호의 음을 높여
모두 고개를 올려
어린 사자의 왕관을 씌우니

난 나의 눈을 가리고 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뻔한 리듬을 망치고 사자의 춤을 바치고
넌 나의 눈을 살피고 이 음악에 몸이 말리고
뜨거운 리듬에 갇히고 사자에 춤을 바치고

It looks like a Lion
I'm a Queen like a Lion
It looks like a Lion
I'm a Queen like a Lion


소연아, 이걸 어떻게 견뎠어?

10대부터 아이돌 연습생이 되고,

프로듀스 101에서 그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듣고,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세 번이나 버틴 넌...

이걸 도대체 어떻게 견뎠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난 사자이고, 여왕이고,

아무도 나를 길들일 수 없고,

반드시 이 뻔한 리듬을 망쳐,

왕좌 위로 올라가겠다는 널

난 감히 사랑할 수밖에 없어.


소연아. 너는 2019년에도, 이번에도 나에게 버틸 힘을 주었어.

넌 이번에도 나를 구원했어.





그러니 자꾸 당신들이 있는 구렁텅이로 내려와라, 내려와라 손짓하지 마.

나는 이 판을 뒤집는, 기어이 당신들의 인생을 망치는 구원자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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