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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un 15. 2018

스릴러의 적정농도를 맞추어야 해

<검법남녀>: 세 가지 적정농도를 맞출 때

※ 5월 손형석 CP와의 인터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적정농도


<검법남녀>는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드라마였다. <투윅스>, <파수꾼> 등 MBC에서 흔치 않은 스릴러 드라마를 연출했던 손형석 PD가 기획에 이름을 올렸고, 주연 정재영은 전작 TVN <듀얼>에서 좋은 형사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걱정되는 요소도 있었다. 민지은 작가는 전작이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이하 <신네기>)들이었다. <신네기>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로코물이었으며, 전형적이지만 로코 매니아들을 끌어 모든 드라마로 유명했다. 그런 민지은 작가가 스릴러물 드라마를 쓴다는 소식에 의아했다. 심지어 원래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획했는데 MBC 측에서 스릴러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에는 더 의아했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이길래?


그랬던 <검법남녀>가 어느새 중반부를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럼 그동안 <검법남녀>는 그동안 어떤 드라마였나?



<검법남녀>의 캐릭터 중 국과수 약독물과 연구원 스텔라 황(스테파니 리 역)은 약독물을 연구하며 농도/정량에 집착한다. 약물은 치료 농도를 맞출 때가 가장 좋다. 치료 농도를 넘어서면 독성 농도나 치사 농도로 치솟고, 농도가 낮으면 치료 효과가 낮아진다. 그러나 <검법남녀>는 드라마의 '적정농도'를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검법남녀>가 조절해야할 적정농도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적정농도


손형석 CP에게 왜 <검법남녀>를 스릴러 드라마로 기획했는지 물어보았을 때,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서 특이하고 신선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실제로 <검법남녀>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에피소드들은 타 드라마에서는 보지 못한 사인이 많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무좀약과 혈액약의 부작용을 이용한 자살이 사인이었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인공정자를 이용해 죽은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다던 와이프가 등장했다. 스릴러 마니아가 아니라면 소재의 독특함이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느껴질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다. 그러나 스릴러 마니아로서는 분명히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검법남녀>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법의학자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과감한 부검 장면들이 등장하고, 이에 걸맞게 법의학 관련 전문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괴짜 백범 선생 말고도 다른 국과수 인물들도 극중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 박중호 원장은 백범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며, 백범의 파트너인 장석주 법의관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장수연 법의조사관은 싱글맘으로서의 고충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백범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마도남 과장은 가장 최근 에피소드에서 아들을 잃은 피해자로 등장했다. 독특한 사건들과 법의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검법남녀>의 좋은 토대다. 



그러나 <검법남녀>는 스토리에 비해 캐릭터의 적정농도는 맞추지 못하고 있다. 완벽한 부검을 위해 버럭하는 백범은 양반이다. 이에 반해 <검법남녀> 속 검사 캐릭터들은 당위성이 충분치 않다. 열혈 초임 검사 은솔(정유미 역)은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은솔이 성장형 캐릭터라고 해도 ‘포토메모리’를 빌미삼아 감으로만 판단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무리라고 느껴질 만하다. 은솔의 대학선배이자 동부지검 형사8부 수석검사인 강현(박은석 역)도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동부지검의 에이스라고 소개되는 그지만,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왜 이 캐릭터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좋은 스토리와 소재에 캐릭터의 적정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은솔의 적정농도 - 냉정과 열정 사이



스토리와 캐릭터의 적정농도에서 더 나아가면, 여주인공 은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은솔의 기본적인 설정은 나쁘지 않다. 열혈 초임 여검사라는 설정은 전형적이지만, 은솔이 ‘흙수저’가 아닌 재벌가의 딸이라는 점은 꽤나 신선하다. 부잣집에서 자라나 돈 문제에 크게 감이 없는 은솔은 어느 정도 현실적이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무자비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은솔은 재벌가의 ‘딸’로서 아버지에게는 “검사 적당히 하다가 법무팀 들어가서 오빠나 도와!”라 구박 당하고, 배우 출신 어머니에게는 시집이나 잘 가라면서 선을 강요당한다. 은솔은 ‘재벌가 딸’이라는 정체성을 극복하고 검사로서 성장하는 캐릭터다. 



그러나 여전히 은솔이 전형적인 민폐 여주인공 캐릭터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과정의 문제다. 은솔은 성장형 캐릭터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능하게 보일 필요는 없다. 은솔의 성장을 잘 보여주는 장면 하나를 뽑자면, 16회에서 은솔이 청탁 식사를 거절하고 일어나는 씬이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은솔의 성장은,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유능한 검사의 성장이다. 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려면, 검사다운 논리의 냉정과 공감의 열정 사이에서 은솔의 적정농도를 맞추어야 한다. 


진지와 코믹의 적정농도



마지막 적정농도는 다소 번외(?)스러운데, 바로 <검법남녀>의 진지와 코믹의 적정농도다. <검법남녀>는 진지한 씬이 많은 드라마지만, 스릴러물답지 않게 코믹 요소도 있다. 차수호 경위와 스텔라 황의 묘한 썸이나, 천미호(박희진 역) 실무관의 잠입수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스릴러물에 있어서 쉬어가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나, 지나치면 극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뭐든 지나치면 독인 법이다. 


적정농도의 스릴러를 기대해



이렇게 적정농도의 경계를 오가는 <검법남녀>가 정확하게 수치를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법남녀>는 현재 극의 중반부를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서 계장의 죽음에 백범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이에 강현 검사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의 서사가 확실하게 잡힐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주요 캐릭터인 백범과 은솔의 성장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백범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은솔은 자신의 성장배경에서 자유로워지면 비로소 ‘검법남녀’로 성장해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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