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예능은 무엇일까?
※ 김구산 예능 CP와의 대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의 대세, 관찰 예능
관찰 예능이 대세다. 시작은 나영석 PD였다. 다양한 연령층의 여행담을 담은 <꽃보다> 시리즈부터 누군가를 관찰하는 예능의 트렌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스타들의 농어촌 체험기 <삼시세끼>로 이어지고, 곧이어 다른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이 빠른 속도로 편성되었다. MBC 역시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8-10% 시청률을 보이며 선방하고 있다. 최근에 종영한 <이불 밖은 위험해>도 강다니엘, 시우민, 로꼬 등 스타 집돌이들의 케미를 보여주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득 <삼시세끼>를 열심히 챙겨보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저게 뭐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왜 연예인들이 시골에 가서 낚시하고 농사짓고 밥 짓는 모습을 굳이 봐야 하는지 좀 의아했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방송을 챙겨보게 되었다고. 듣고 보니 그렇다. 무언가 대단한 모습보다는 평범하고 소박한 관찰 예능이 왜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관찰과 리얼 예능의 역사
관찰 예능의 전신이 되는 리얼 예능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관찰 예능과 리얼 예능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큰 틀만 정해놓고 출연진에게 많은 부분 의지하고 매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한국 예능 역사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를 가장 잘 보여준 프로그램이 MBC에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무한도전>이다. KBS의 <1박 2일>은 여행, SBS의 <런닝맨>은 달리기라는 큰 테마가 있다. <무한도전>은 그마저도 없는, 본질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무한도전>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는 데에 놀랐다. 박명수, 정준하 등의 출연진들 역시 <무한도전>을 통해 점차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사실도 낯설었다. 그중에서도 박명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김구산 예능 CP에 따르면, <무한도전> 이전에 MBC 관계자들이 가장 재미있다고 뽑은 개그맨이 박명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방송 출연자가 화내고 호통 치는 컨셉이 굉장히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방송 규제가 풀리고 더 다양한 컨셉이 포용되면서 박명수의 컨셉이 <무한도전>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PD의 존재가 방송에서 전면으로 드러난 최초의 방송이기도 했다. 김태호 PD가 유재석 등의 출연진과 함께 <무한도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너지가 생겼다. 김태호 PD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당시만 해도 신선했던 PD의 방송 등장은 이제 흔히 사용되는 포맷 중 하나다. 이는 나영석도 <삼시세끼>, <꽃보다> 시리즈에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모르모트 PD가 얼마나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는지 생각해보면, PD의 방송 등장은 이제 잘만 이용하면 시청자의 반응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방영되었던 <무한도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한국 예능에 자취가 남아 있다.
‘리얼’한 관찰 예능, 언제까지 갈까?
<무한도전> 등 리얼 예능의 확장판인 관찰 예능은 지금까지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트렌드가 지속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관찰 예능이 정말 리얼한 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관찰 예능이 아니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함을 쫓다가 오히려 위화감이 생기는 경우는 허다하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지나치게 고급 재료가 많은 연예인의 냉장고에 시청자들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 <진짜사나이>가 군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얻기도 했다. 관찰 예능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관찰 예능이 근본적으로 가지는 한계는 바로 그 ‘리얼함’에 있다. <아빠 어디가>와 같은 육아 예능에서 시청자들은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정작 연예인의 아이들은 자신이 TV에 출연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TV 출연을 알게 될 때 겪는 혼란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지 불분명하다. 관찰 예능은 사생활 침해의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고, 이를 관음증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나 혼자 산다>의 애청자인 친구는 어느 순간, 남의 사생활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에 소름 끼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트렌드가 익숙해지고 문제점이 드러나며, 관찰 예능의 유효 기간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방송국에서도 포스트(post) 관찰 예능을 찾는 시도는 계속 이루어졌다. 1인 방송의 체제를 도입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아예 게임 시스템을 차용한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가 MBC에서 방영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시도들이 지속적인 트렌드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어느 순간 또 트렌드를 구성하리라고 믿는다.
더 다양한 예능의 미래를 위해
예전부터 예능은 유독 변혁이 적은 방송 장르라 느꼈다. 서양과 동아시아의 예능 형식이 명확히 다르고, 그 차이가 오히려 점점 커진다고 느낀다. 한국 예능에서 토크쇼와 전통 개그 프로그램, 그리고 시트콤이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들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감도 없잖아 있다. 그래서 개인적이면서도 개인적이지 않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바라는 점들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선 MBC에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복면가왕>만큼 꾸준히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반하는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 <복면가왕>과 같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면서도 다른 음악 예능의 시도가 보이지 않은 점은 꽤나 의아하다. 관찰 예능의 다음 트렌드로 예상되는 un-real의 대안으로도 음악 예능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JTBC의 <슈가맨>, <히든싱어> 시리즈를 생각하면 무리는 아니다.
더 나아가 MBC뿐만 아니라 한국 예능 전반으로 코미디 프로, 토크쇼를 더 보고 싶다. 왜 한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쇼, 앨런 쇼와 같은 토크쇼를 보기 힘들까? 왜 스탠드업 코미디언하면 유병재만 생각날까? 왜 코미디 프로그램하면 SNL만 생각날까?
물론 트렌드는 중요하다. 그러나 방송사에서 포스트(post) 관찰 예능을 꿈꾼다면, 장기적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웃음에 대한 언어가 없는 한국에서 웃음을 만드는 예능인들, 조금만 더 수고해주시라. 그러면 느리게나마 웃음에 대한 선택권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