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늘의 뜻은 정해져 있나니

<명당>: 공식에 충실할 뿐

by 유녕
※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난 무난, 또 무난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온갖 영화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듯하다. 조인성, 남주혁, 설현 등을 앞세운 고구려 팩션 <안시성>은 청계천 광장에서 화려한 쇼케이스를 가졌고, 스릴러물 <협상>은 협상가 손예진과 악역 현빈을 신선하게 내세웠다. 한편 <명당> 역시 화려한 출연진을 내세운다. <내부자들> 이후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조승우와 지성, 백윤식, 문채원, 그리고 유재명까지 출연진은 호화롭다. <관상>, <사주>에 이은 3부작인 걸로 아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플롯 자체로만 놓고 보면 정말 무난-한 한국 상업영화다. 플롯이 엉성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애국심 기반의 한국 영화랄까. 추석에 가족끼리 보러 가기는 괜찮겠지만, 풍수지리와 명당과 흥선대원군을 딱 예상 가능한 범위로 풀어냈다는 게 많이 아쉽다.


풍수지리는 명분일 뿐


<명당>은 조승우와 지성이 오랜만에 선택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두 배우가 왜 하필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지성은 납득했다. 사실 조승우가 흥선대원군에, 지성이 박재상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성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지략가 흥선대원군을 잘 소화했다. 바른 이미지의 지성으로서는 흥선 역할이 꽤 끌렸을 거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별로 납득이 안 되는 건 조승우의 선택이다. 조승우와 같은 배우에게 박재상은 그렇게 매력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박재상은 충신이다. 까칠하고 강단 있지만, 고려 왕조로 따지면 정몽주 같은 인물이다. 기존 왕인 헌종이 유약하더라도 쿠데타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풍수지리에 뛰어난 자신의 재주도 왕조의 부흥을 위한 것이다. 물론 같은 왕족이더라도 흥선과 그 아들은 안 된다. 그들은 ‘적자’가 아니니까. 즉, 박재상의 충심은 철저하게 기존 체제 위주다. 왕조를 위해서는 아내가 불에 타서 죽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왕조의 부흥을 위해서 충심을 다하는 인물이 박재상이다.



<명당>은 박재상을 주인공으로 삼았고, 흥선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악역이다. 흥선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그는 풍수지리의 뜻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후손들이 그 대가를 따르게 된다. 반면 시대의 충신인 박재상은 지관으로서의 명성을 일제강점기까지 잇는다. 그러나 과연 관객들이 박재상에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는가? 차라리 “그 땅은 내가 가져야겠소”라 말하는 흥선이나, 이제 왕조 같은 것은 잊고 돈이나 많이 벌자는 구용식(유재명)한테 감정 이입하는 게 더 쉽지 않냐고. 하다못해 아버지와 가문의 원한을 갚고 싶어 하는 초선(문채원)이 더 나을지도.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지배층이 도망치기 바빴던 나라고, 21세기에도 여전하다. 그러나 박재상이 저렇게까지 왕조를 지키려는 이유는 명당이 말해준다. 풍수지리의 ‘순리’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 외의 명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명당> 속의 풍수지리는 수단에 그친다. 차라리 박재상이 지관 자리에서 쫓겨난 후 백성들을 풍수지리로 도와주는 시리즈물이었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풍수지리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이 정도로 밖에 못 써먹은 것은, 주제의식과 소재를 끼워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넘쳐나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한국 상업 영화답게 모든 게 넘쳐난다는 것이다. 왕의 무능도, 드라마도, 연기도 다 넘쳐난다. 지성의 흥선대원군 연기는 필요한 만큼 넘쳐나지만, 설정들이 너무나 넘쳐난다. 장동 김 씨 김좌근의 집안에 몰래 들어갔다가 안경을 떨어뜨려 고문을 당하는 장애인 귀족이나, 헌종과 초선의 설정도 너무 과하다. 특히 헌종이 김좌근의 집으로 쳐들어갔을 때 김좌근이 “그 병사들이 다 네 편 같으냐?”하는 장면과 헌종이 김좌근에게 “할아버지”하면서 꿇는 장면은… 진짜 너무 했다. 사학과로서 납득하지 못한다 아무리 극적인 장면이라도 그렇지, 관객에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면 그건 실패한 사건이고 연출이다. <명당>은 많은 한국 상업영화들이 하는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게 넘쳐나는 바람에 러닝타임도 넘쳐난다. 굳이 이 영화가 120분을 넘어야 하는 이유를 못 찾겠다.


결말은 정해져 있지


이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흥선은 결국 부원군의 자리에 오르고, 장동 김씨(aka 안동 김씨)는 기득권을 한동안은 유지하지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 정도 결말이야 사극으로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끝까지 너무나 ‘한국 상업영화’스럽다. 굳이 그 결말에 예쁘지도 않은 글씨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거나, 신흥 무관학교를 언급하는 마지막 장면조차 구차하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야. 철저히 한국 상업영화의 공식을 따르기에 무난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영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쉬운 플롯을 빛내는 건 배우들의 열연뿐이다.



Ps 1. 그래도 <비밀의 숲>, <라이프>를 모두 본 사람으로서 조승우-유재명 조합은 다시 봐서 좋았다.

Ps 2.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문채원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로의 질문과 대답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