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그런 날이 있다. 맘에 감정이 쌓여서 응어리 진 날.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시험 공부하기 바빴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과 다시 맞닥뜨리고, 많은 인연과 스쳐가고 부딪히고 좌절하던 나날들. 오늘은 특히나 그랬다.
그나마 한국에, 학교에 돌아와서 좋았던 점이라고 말한다면 새로 생긴 금호아트홀 연세. 고딩 때부터 애용했던 금호아트홀이 학교에 생기고, 한달에 한번 공연을 한다니! 전석 4만원, 재학생은 5천원이다(이와중에 인터파크 수수료 천원^^ 나만 알고 싶지만 널리 알리리) 특히 이번 공연은 외국 트럼펫 연주자의 공연이었다.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든 무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상. 선곡도 다양했고 연주자와 반주자의 케미도 환상. 무엇보다도 연주자가 음악을 아끼고 즐기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트럼펫 연주자이지만 재즈보컬을 하고 난해해보이기 쉬운 현대 음악을 시도했다. 술취한 사람 연기, 관객의 반주 시도 등등 웃으면서 하는 그 다양한 시도들. 그러면서도 귀에 익숙한 곡들은 맘을 위로했다. 마음이 점차점차 가벼워졌다. 앵콜 공연 때는 응어리들이 트럼펫 소리와 함께 날아가버리는 기분이었다.
선공개 음반은 공연이 끝난 후 샀고 공연 직후 사인회에서는 "I had a very rainy day and you gave me laughter and hope. Thank you so much."라고 말하자, "That's so sweet. Thank you for saying that."라고 웃으면서 얘기하셨다. 맘에 온기가 가득찼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면 작가 지망생이 되었거나 인디 보컬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망상을 가끔 한다. 그러다가도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 그래도 사람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때 얼굴에서 나오는 그 빛이란. 아아, 정말 부럽다.
공연이 끝난 후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올 때, 모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후배를 보았다. 아마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겠지. 괜한 상상들을 해보았다. 저 아이는 장래 희망이 확실하게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어본 적이 있을까. 행복할까. 추억이 많을까. 괜한 생각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슬릭의 9174, 공연장 맨앞에, Stay with me를 들으며 왔다. 응어리가 다 풀린 건 아니지만, 응어리 진 내 자신을 받아들이기. 괜찮다고 다독이는 소리들을 듣기. 그래도 안 괜찮을 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조금 늦게 방황해도 괜찮아. 하루하루 견뎌내도 괜찮아.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