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않고 또 왔네
1. 12월 9일부터 21일까지 5개의 기말고사, 1개의 최종 발표, 1개의 개인 레폿과 2개의 조모임 레폿까지 친구들말로 ‘토할 거 같은(…)’ 기말 스케줄을 끝냈다. 23일 5시에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난 것도 모자라서 26일 오후 6시가 마감인 아산서원 서류를 쓰느라 크리스마스 시즌을 집에서 다크서클이 (과장 좀 보태서) 입가까지 내려온 채로 보냈다. 심지어 월요일 마감인 자소서 중에서 진로계획서를 금요일에 포맷을 엎어버렸으니 말 다 했지. 서류전형이 발표되는 9일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하고 놀 거야 흥.
2. 그래서 자소서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2016년을 보내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보니 진득하다. 어지간한 스토리, 글쓰기 중독자이긴 한가보다.
3. 이번 글은 ‘생존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 제목을 붙여야 할 것 같은 해였다. 내 인생은 언제나 업다운이 어지간하고 생각이 많다. 그런 것 치고도 2016년은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제일 많이 방황했던 시기였고 ‘사망년’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해였다. 어렵게 보낸 해인데도 쉽게 보내지지 않는 해다. 느낀 것도 얻은 것도 많지만 그만큼 후회되는 점도 많아서, 그리고 해가 가면 갈수록 ‘어른’이라는표딱지가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
+ 지난 연말 글들에서는 쓰지 않았던 방식이고 다소 뻔하기도 하지만, 2016년의 시간들을 조각 내서 회상하고자 한다. 그래야 더 2016년을 스스로도 짚을 수 있고, 읽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서.
4. 2016년 조각 내기
4-1. 1-6월 미국 교환학생: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2016년, 아니 대학생활을 통틀어서 제일 행복하게 보냈던 시기였다. 1학년 때는 내가 송도를 워낙 안 좋아하기도 했고, 신촌을 좋아하긴 했지만 통학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좋았으면 1년 다 채우지 그랬냐고 주변 사람들이 그랬지만, 현실적인 조건들도 있었으니. 운동하는 습관을 다시 들였고 공연들도 많이 즐기고 잊지 못할 수업도 하나 듣고 왔다. 주변 친구들이 사진을 보더니 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그랬고, 한국에갓 돌아왔을 때도 친구들이 얼굴 폈다고 했다. 내게 있어서 다시 균형을 잡고 오는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4-2. 여름방학: 미국 적응은 정말 빠른 나였는데, 오히려 한국에서의 재적응이 무진장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같이 교환을 다녀온 사람들에 비해서도 훨씬 재적응 기간이 길고 힘든 편이었다.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가족들과 적응하는 것도, 3학년이 되자 예전의 꿈과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 인연을 놓는 것도, 변한 내 자신을 한국에서 다시 자각하는 것도. 그 모든 것들이 꿈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괴로운 성장통이었다. 분명히 몸은 편한데 마음이 편하지 않은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그토록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글씨가 눈에 안 들어와서 개강 전에 하루에 영화 한 편을 꼭 챙겨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잠시라도 아픈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에 즐겨보는 문학잡지 악스트(Axt: 여러분 매월에 3천원 밖에 안해요 꼭 정기구독 하세요) 12월호에서 작가 윤대녕 씨가 캐나다에서 2015년을 보낼 때는 하루 5-7개비를 피우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10개비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나는 이번 방학 때 생전 처음으로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셔봤다. 참고로 난 새내기 때도 그 정도로 마셔본 적이 없는사람이고 술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러고 싶었다. 유교에서는 술을 마실 때 세 단계로 구분을 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으로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사실 마지막 단계를 원해서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이 술을 마셨음 마셨지, 끝까지 술이 나를 마시진 않더라고.
그 정도로 뜨겁고 괴로운 슬럼프, 여름을 보냈다.
4-3. 2학기: 아무래도 타고난 워커홀릭이긴 한가보다. 개강하고 나서 몸이 바빠지니 나아졌다. 사회학 부전을 하다 보니 이번에 18학점 5전공이라는미친 시간표가 생겼지만 차라리 나았다. 학기 초까지만 해도 여름의 고통이 사라지질 않아서 친구들에게도 토로 많이 하고, 술도 참 많이 찾았다. 의미를 잃어버린 캠퍼스에서, 신촌에서, 서울에서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으니까.
다행인 점은, 2학기를 보내면서 다시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 새로운 영역과 스승을 찾고, 새로운 인연들을 거미줄처럼 이어가는게 인생의 묘미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사실 조모임을 하면서 힘든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참고로 사람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조모임 자체가 너무 빡쎘…) 그만큼 배워간 게 있으니 다행이었다. 선택지가 다소 늘어나서 헷갈리기도, 아직 시간…은 있으리라고 믿는다.아직 난 젊어.
그리고 이번 학기에 찾아온,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진짜 어떻게 굴러들어온 인연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기지만, 결과적으로는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를 구해줬다. 나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실제에 부딪히고 다쳐보니 깨지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런데그 이상의 사람들과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왜곡된 거울을 깰 수 있다는희망이 생겨서. 내 곁에 있어줘서 참 고마웠어요 행복했어요. 옆에 있어주지는 못해도 항상 응원할게. 아 지금 쓰는데 눈물 난다.
5. 인연: 작년에도 인연에 대해서 썼던 것 같은데, 올해도 써보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땅 혹은 섬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땅 혹은 섬을 스쳐가는 무수한 바람들이 있지. 그래서 ‘바람과 같은 인연’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고. 디즈니 ‘Sleeping Beauty’에서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꼭 연인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바람과 같은 인연이 대지에 스며들면 싹이 튼다. 인연의 크기에 따라서 그 싹이 나무가 되기도 하고 숲이 되기도 하지. 그 땅의 크기는 어떤 인간이든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바람이 스며들 수는 없다. 거기서 다양한 싹과 나무와 숲들이 가끔 서로 밀쳐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이루게 된다. 중요한 인연일수록 가면 갈수록 더 성장해가고 땅을 넓혀간다.
가끔 싹이, 나무가, 그리고 아주 가끔 숲이 없어질 때가 있다. 폭풍우가 몰아쳤건 불이 났던 말라죽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남은 땅은 황폐할 수 밖에 없다. 그 땅을 지탱하던 힘이 없어졌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특히 숲이 사라졌을 때의 황량함은 슬픔과 공허로 가득 차서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땅이 죽지 않는 이상 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싹이 트고 나무와 숲이 자란다. 인간이 죽는 그날까지.
6. 그러나 스쳐가지도, 남지도않는 인연은 어찌 해야 하나. 반복적으로 오는 인연은 머물 듯 머물지 않는데, 바람인가 싹인가.
나비효과라고 하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바람이 되어 다른 바람을 모으고 결국은 폭풍이 된다는.
바람인지 싹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 봤자 바람인데 헛된 꿈일지도모르지. 그러나 바람이 몰아 닥친다면, 바람이 바람을 모은다면. 그 바람은 폭풍이 되어 비를 뿌리고 스며들어 싹을 틔울 거야. 그리고 그 바람은 나무로, 숲으로 피어날 거야. 그렇게 인연은 스며들거야.
7. 작년 연말 글에서는 ‘배가 흔들리더라도 꺾어지는 않을 거에요’라 말했다. 거의 그대로 이루어졌다. 배가 좀 심하게 흔들린 거 빼고는. 참고로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해주세요. 당신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든 건 아닙니다. 제발 소위 ‘객관적’인 불행 배틀 그만해요 우리.
8. 뒤숭숭했던 2016년, 다들 연말만큼은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당신이 나의 바람, 싹, 나무, 그리고 숲이 되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