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말 그대론 아니고.
1월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2016년,병신년이 끝나고 2017년, 정유년이 한달이나 지나버렸다. 이래저래 시끄러웠던 2016년 하반기 덕분에 연초 분위기도 별로 나지 않는 한달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편히 쉬고 소소한 행복을 챙길 수 있던 한달이었다. 3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언니와 설 연휴에 시간을 보내고, 스키를 매우 오랜만에 탔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한 달이 지나갔다.
지금은 토플 라이팅과 스피킹 학원을 다니면서 2월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2월도 거의 다 갔다. 리딩과 리스닝은 자습으로 하고 있는데 영 힘들다. 종로캠퍼스가 아닌 강남 캠퍼스 매일반을 선택해서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버스 안에 있다 보니 숨이 텁텁하다. 1학년은 송도 기숙사에서 보내고 그 이후로도 광화문-신촌 통학을하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알겠다, 끙. 그래도 광화문-강남역을 왕복하면서 하는 포켓몬고가 요새 유일한 삶의 낙이다. 그래도 샤미드를 청계천에서 잡았지, 후후.
원래대로라면 하고싶었던 프로그램을 붙었거나, 아니면 지금쯤 열심히 다음 학기 시간표를 짜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스케줄은 그 중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학생의 특권이자 짐, 휴학을 하기로 맘 먹었기 때문이다.
다들 하는 휴학인데 왜 생색 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2월 1일에 부모님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휴학을 신청했다. 일차적인 이유라고 물어본다면 이번 학기에 과 수강 편람이 역대급으로 과목이 적다. 안 그래도 정교수가 적은 사학과에서 한 학기에 정교수 3분이 안식년이라면 말 다 했지. 딱 수강편람을 보자마자 학교 다닐 의지가 없어졌다. 아아, 난 왜 분명히 15학점 시간표를 짜고, 부전공인 사회학과 전공을 더 많이 넣어도 시간표가 안 나온단 말인가.
사실 굳이 인턴 등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냥 휴학은 한번쯤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휴학을하지 않고 고대로 다닌다면 벌써 4학년 1학기다. 교환도 다녀오고 부전공도 정하고 대학원 가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고등학교 때보다도 대학 시절이 훨씬 시간이 빨리 가버린 느낌. 분명히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학회도 하고 대외활동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졸업하면 뭘 할지 아직 분명한 계획이 없다.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분명히 사학과 대학원, 그 중에서도 한국고대사를 계속 공부하고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념 하나로 화랑세기에 대한 소논문도 써봤고,현역에 사학과까지 입학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길을 다시 잃어버렸다. 어릴 때부터 꿈이 확고하다고, 어른들에게는 기특하다는 소리를, 또래들에게는 부럽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한국사/서양사/사회학 중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감도 잘 안 온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
물론 짧게 줄이면 ‘진로 탐색’이라는 거창(?)하고 큰 목표 이외에도 소소한 이유들도 있다. 학교 다니고 교환 다녀오면서 이루지 못했던 사소한 버킷 리스트들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휴학이기도 하다.
휴학 한 학기를 계획하면서 항상 생각해봤던 것은 제2외국어 마스터하기. 아마 교환학생 때 그래도 조금 배웠던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하지 않을까 싶다. 단기 알바만 해봤지, 장기 알바는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내 근로장학생도 신청했다. 운이 좋다면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학기 중에는 읽을 수 없었던 온갖 책을 다 읽어보는 게 소원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영국과 아일랜드 프로젝트와 미국 교환으로 유럽, 북미권은 여행을 했지만 오히려 가까운 국내나 아시아권 여행은 많이 다니지 못했다. 국내여행 역시 1학년 때 친한 친구와 다녀왔던 경남 내일로 여행 외에는 생각나는게 없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가족과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 역시 버킷리스트다. 아마 사회학과 위주로 강의 1-2개 정도는 청강도 할 예정이다. 학교 헬스장과 기존에 하던 스터디들도 꾸준히 하기. 기회만 된다면 새로운 학회나 대외 활동에도 도전하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기.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인턴 지원 제대로 준비해서 꼭 붙기.
알고 있다. 많이 늘어놓긴 했지만 모든 목표들을 다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토플 공부 다시 하는 것도 플랜 다 못 지키고 있는 걸. 중학생 때부터 목표는 많이 잡고 그 중에 절반, 70%라도 지키는 게 원래 내 패턴이었으니까. 그래도 계획들을 세워둔 후에 조금이라도 이룬 것들이 있으면 뿌듯한 휴학일 듯 하다. 당장 다니고 있는 토플 스피킹, 라이팅 단과반 끝나고 시험까지 끝내면 하고 싶은 것들 맘대로 다 해야지.
그나마 다행은, 아빠가 휴학을 적극 지지하신다. 그래도 아버지가 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휴학할 때 부모님 몰래 하는데, 물론 나도 몰래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부모님(더 정확히는 아빠)가 적극 지지했기 때문에 그나마 설득이 쉬웠다. (물론 내가 휴학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워드로 3장을 빽빽히 휴학 이유와 계획을 써갔음은 비밀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 잘 보내야지. 단순히 쉼이 아닌, 다음 단계를 위한 과정이고 다음 배움을 위한 배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