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나요 바람이 찬 도시가 슬프게 하나요. 슬프게 하나요.
‘이 주제로 글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결국 돌아온다. 20대 초중반 여성 대학생으로서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 그렇다. 오랜만에 뮤지컬 공연을 몇 달 만에 보는 친구와 보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쓰게 되었다.
휴학하고 어느 중소기업에서 인턴하는 친구는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의 범위도 점점 좁아지고 인턴을 하면서 주말에는 집에만 있게 된다는 친구가, 그나마 나를 만나 공연도 보고 새로운 장소도 와보게 되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공연 이후 이태원 주변에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몽블랑과 탄산수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날 같았으면 술이라도 한잔 걸쳤겠지만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를 보고 나서 그럴 기분은 아니었고.
작년 2학기 때 북유럽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는, 1년 전의 나와 비슷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누구 못지않게 야무진 친구고 꿈도 큰 친구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편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인간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친구가 대학원에 가겠다는 꿈을 드디어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런 말을 들은 게 꽤 여러 번이다. 학력 밝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필자는 소위 상위권 인 서울 대학에 재학 중이고 새내기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 가겠다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재학하는 과 특성상도 더 그랬고. 그러나 해가 갈수록 학문으로 먹고 살 자신이 없다는 사람과, 그 길을 가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깨닫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대학원은 나중에 필요하면 가겠다는 사람들도 늘었다.
필자 자신은 나름 고학년 휴학생이지만 새내기 때와 동일하게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딱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잘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더 잘 안다. 스스로 서울권 사립 대학을 돈 걱정 없이 다니고 알바를 굳이 하지 않아도 대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안다. 부모가 이공계나 상경계열이 아닌 다른 학문 대학원 진학을 말리지 않고 선택권을 주는 것도, 스스로 고른 분야가 젠더/문화 사회학이어도 인정하는 부모가 대한민국에 많지 않다는 것 정도까지도 잘 안다. ‘여자가 대학원 가면 결혼 잘 못 한다’는 미신 혹은 반쯤 진실이 통하는 나라에서 여성이라면 더.
그러나 웃을 수가 없다. 미국 교환 생활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한국의 3학년 대학생 생활에서 도망치고 나서 돌아왔을 때 꿈을 접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어릴 적부터 중동사와 유목사 주제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던 친구가 고시 준비를 시작했고, 인권 문제와 외교 분야에 관심이 많던 친구는 경영 컨설턴트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교환학생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고 있었다.
그 여름,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내가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어서 하루에 영화를 한두 편씩 꼭 보았다.
그 여름, 새내기 때도 피하던 술을 토할 때까지 마셨다.
그 여름,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거면 대학을 왜 가.”라 말하는 고등학생 동생에게 불 같이 화를 냈다. 말은 칼이라고. 칼은 서투르게 휘두르면 누군가가 다친다고.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고. 너에게 사소하게 여겨지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일 수도 있으며, 꿈을 꾼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겠다 혹은 소시민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을 비웃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송곳>의 구고신 소장이 말했듯이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라고.
너는 안 그럴 거라고 함부로 장담하지 말라고.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면, 친구는 자기 자신이 시시때때로 달라진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나마 학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꿈을 붙잡고 있는데, 학교 밖으로 나오면 자신을 포장하기 바빠진다 말하였다. ‘자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고작 인턴일 뿐인데 회사의 부속품으로 변해가는과정이 몸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마음 한 켠에는 계속 그 높은 꿈이 있는데 몸은 점점 멀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어쩌면 평범한 삶조차 제일 힘들다는 걸 깨달아 그쪽으로 마음이 점점 기우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고.
딱 1년 전 나의 모습과 일치했다. 경쟁 사회에 쉽게 적응이 안 되는 것조차 일치했다.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는 것보다 조국에서의 재적응이 더 힘들고 아프다는 아이러니. 사실 지금조차 그 감정에서 완벽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시 한국에서 머무르고 학교 생활을 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파묻은 것뿐.
여성으로서, 대학생으로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연애 비혼을 지향한다는 나 자신과,
비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는 결혼 3년 차 후에나 생각해보겠다는 친구.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만난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때는 이해되지 않던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이해가 된다 등등.
그 후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며 조심히 들어가라는 친구의 표정이 조금은 더 밝게 보였다면
내 착각이었을까.
쓰고 나니 왜 쓴 건지 모르겠다. 항상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듣는 곡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고 계속 듣던 노래,
디어클라우드 2집 Grey 中 ‘나를 안아(05 home recording)’.
울고 있나요 바람이 찬 도시가 슬프게 하나요 슬프게 하나요
입을 다물고 눈을 감은 그대 바람을 느끼고 이 향을 모두 가져요
알 수 없는 무엇들 버리고 버리고 싶던 기억들
또 감추어야 만 했던 비밀들 다 사라지길 원하네
끝이 없는 슬픔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추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 다 내가 안아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