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분가했다. 보증금 없이 한달에 30만원 하는 방을 빌렸는데, 몇 달 안 돼 매달 내야되는 월세가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에 길에서 아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 집에 빈 방 있으면 나 거기 들어가면 안 돼?”
나는 몇 년 만에 만난 영란 언니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그건 안 돼.”
영란 언니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근데 소개해줄 집이 있어. 후배가 살던 집인데 열 평짜리 단독주택이야.”
“단독주택이 열 평짜리가 있어?”
“있어. 그 집 괜찮아.”
“얼만데?”
“전세 천만원.”
“전세가 천만원짜리가 있어?”
“있어. 방이 두 개야.”
“마당도 있어?”
“천만원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니?”
“동네가 어딘데?”
성북동은 간송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몇 번 가본 적 있는 동네였다. 마을버스가 간송 미술관을 지나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가서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마을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눈앞에 서울 성곽이 우뚝 서 있었다. 성의 북쪽이라는 이름 그대로 성 바로 북쪽에 있는 마을이었다. 성곽을 뒤로 하고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복도처럼 좁은 골목이었다. 그리로 이삿짐이 드나들 수 있을까 걱정하며 걸음을 옮겼다. 커브를 돌자 골목 입구에서부터 따라오던 하수구 냄새가 퇴비 냄새로 바뀌더니 길 한쪽이 탁 트이면서 고구마 밭이 나왔다. 밭 가장자리에 내가 찾던 주소의 집이 있었다. 면적은 좁은데 축대 위에 세워져 키만 훌쩍 큰, 목이 긴 반찬통 같이 생긴 집이었다.
은색 새시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운데 부엌을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있는 열 평 크기의 공간이 나왔다. 제일 먼저 큰 방의 특이한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방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니라 부채꼴이었다. 방이 면하고 있는 길 모퉁이의 모양을 따라 사각형의 한쪽 꼭지점을 둥글린 결과였다. 둘러보니 작은 방은 L자형, 화장실은 Q자형, 부엌은 사다리꼴로, 집안에 사각형의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공간의 부정형한 형태는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집안에 똑바른 직선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과 천장과 벽이 모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데다 울퉁불퉁했고, 그것들이 만나는 모서리는 삐뚤빼뚤했다. 찰흙으로 장난삼아 만든 집 같았다. 하지만 영란언니 말마따나 천만원에 너무 많은 걸 바래선 안 됐다. 그 집으로 이사했다.
성곽 뷰는 그 집의 특장점이었다. 그런데 창이 화장실 창처럼 작아서 창에 바싹 붙어서야 밖이 보였다. 집을 겨울에 지으면 창이 작아진다는데 그래서였을까. 벽이 너무 얇아서 무너질까 봐 창을 크게 못 낸 것 같기도 했다. 외벽 두께가 내 손으로 반 뼘 밖에 안 됐다. 옆집 할머니에게 듣기로 나 전전전에 살던 남자가 그 집을 직접 지어 가족과 같이 살았다는데, 한번도 본 적 없는 그가 집을 지으며 했을 고민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공간의 부정형한 형태에서 좁은 공간을 최대로 살리고자 한 그의 고민을,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는 미장에서 변변한 기술 없이 혼자 집을 지었을 그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자려고 누워서 기울어진 천장을 보고 있으면 천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집에 없을 때 일어나길 기도하며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겉만 보고 평가하면 안 되는 게 사람만이 아니라는 걸 그 집에 살면서 알게 됐다. 제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충실히 해내는 집이었다. 벽이 얇은 데 비하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으며, 수돗물 콸콸 나오고, 전기와 보일러는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잘 돌아갔다.
나의 집이 좋았다. 전세가 싸고 월세를 안 내서 좋고, 집이 작아서 청소하기 쉽고 난방비가 적게 들어서 좋았다. 동네도 좋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좋고, 골목 어디서나 보이는 성곽이 좋고, 뒷마당이나 다름없는 산이 좋았다. 산을 넘어서 시내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폭설이 내리던 밤에는 산으로 진입하는 차량 통행을 막아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을 나 혼자 독차지하기도 했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집 자랑을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집에 초대했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냐며 놀라고, 싼 전셋값에 놀라고, 값에 비해 집이 너무 넓고 좋다고 놀랐고, 나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나의 행운을 재확인하며 흐뭇했다.
요다를 만난 건 그 집에 산 지 7년째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