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짜장

by 김지현

쌍다리.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 입구의 정류장 이름이다. 지금은 복개돼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그 앞으로 성북동천이 흐르고 그 위에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언덕을 올라가면 ‘양씨 가게’라는 이름의 정류장이 나온다. 그런데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그 앞에는 가게가 없었다. 옆집 할머니에게 듣기로 양씨가 죽고 나서 가게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다음 정류장은 '김포상회'. 그 앞에는 간판 없는 가게가 있는데, 앞유리에 ‘쌀’이란 색 바랜 글자가 붙어 있었다. 이사하고 얼마 안 돼서 밥하다 쌀이 떨어져 ‘김포상회’에 간 적이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쌀은 없고 낡은 진열장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과자봉지만 몇 개 놓여 있었다. 그냥 나가려는데 내실과 연결된 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미 눈으로 파악한 걸 말로 다시 확인하고 나서 할머니와 몇 마디 말을 더 나눴다. 인사할 때 할머니의 얼굴에 번지던 고운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양씨 가게’ 쪽에서 7년을 살다가 ‘김포상회’ 쪽으로 이사한 뒤로 김포상회 할머니와 자주 마주쳤다. 할머니는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가게 앞의 쓰레기를 줍다가 내가 인사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할머니가 인사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려고 택시 운전하는 큰 아들네가 들어와 살면서 며느리가 가게를 맡았다. 며느리는 낡은 집기들을 내버리고 가게를 새 단장한 뒤 테이블을 놓고 술과 안주를 팔았다. 안주를 얻어먹으려고 그 앞으로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슈퍼 앞 의자에 누워 자는 망치

슈퍼 앞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건 망치였다. 꼬리 끝이 뭉툭해서 나는 망치라고 불렀는데, 슈퍼에서는 해피, 동네 여중생들은 시리얼이라고 불렀다. 망치는 그 앞을 오가는 모든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먼저 야옹하고 인사를 건넸고, 자기를 쓰다듬는 손길을 누구의 것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슈퍼를 지날 때마다 망치를 찾게 됐고, 망치가 안 보이면 서운했다. 듣기로는 언덕 아래에 있는 용강교회 쪽이 집이라는데, 주인이 찾아서 데려가도 다시 슈퍼로 돌아온다고 한다. 집에도 가끔은 들르는 것 같았다.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언덕을 올라오다 보면 용강교회 쪽에서 나오는 망치와 마주치곤 했다. 야옹. 망치는 언제나처럼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계단이 있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슈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할머니의 상태가 나빠져서 요양원에 모셨다고 들었는데, 지난 여름 불 꺼진 슈퍼 앞에 부고 소식이 적힌 메모가 붙어있었다. 가게 앞에서 죽치던 노랑이가 새끼를 낳은 게 그 즈음이었을 게다.

새끼들이 두 어 달쯤 됐을 때였다. 내가 공터에서 부스럭거리며 주머니를 뒤지니까 새끼 네 마리가 우루루 달려왔다. “먹을 거 아니야.” 나는 쭈그리고 앉아 빈 손을 내밀었다. 찰리를 닮은 까만 놈 하나가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다가와 내 손바닥에 머리를 부비며 골골댔다. 녀석을 쓰다듬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공터에 와서 섰다. 새끼들이 또 그리로 우루루 달려갔다. 새끼들이 또 헛물을 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토바이에서 내린 중년 남자의 가방에는 사료가 가득 들어있었다. 큰 고양이들까지 다 몰려와 여덟 마리가 같이 사료를 먹었다.

공터를 지나다 보면 고양이 밥 주러 오는 이들의 행렬이 릴레이 하듯 이어졌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여중생 셋이 자기들이 붙여준 이름을 불러가며(찰리를 닮은 까만 놈의 이름은 짜장이었다) 고양이들에게 추르를 먹이고 강아지풀을 흔들며 놀다가 사라지면, 젊은 남녀가 와서 여자는 쭈그려 앉아 사료를 먹이고 남자는 그 모습을 사진 찍다가 갔고, 또 조금 있으면 중년 부부와 십대의 아들 딸이 사료를 손에 들고 승용차에서 내렸다. 눈치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나는 그들을 안 보는 척 곁눈질로만 봤다. 그런데 아무도 내 눈치를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고양이를 돌보고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그 풍경이 내게는 먼 이국의 것처럼 낯설고 신기했다.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공터 한 가득한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걱정이 많았다. 머지않아 새끼들이 임신을 하게 될 테고 그들의 어미 역시 그러할 터였다. 그 많은 고양이들을 다 어찌한단 말인가. 그런데 슈퍼에 통장이 드나들고 TNR이라고 적힌 봉고차가 왔다 가더니, 고양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몇 주 뒤, 고양이들은 한 쪽 귀 끝이 잘린 채 돌아왔다. 모두가 무사히 돌아온 건 아닌 것 같았고, 돌아온 고양이들도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슈퍼 앞에는 망치와 짜장만 남았다.

슈퍼 앞 의자에 누워 자는 망치와 짜장

언제부터였을까. 정류장 이름이 ‘김포상회’에서 ‘슈퍼 앞’으로 바뀌었고, 나는 김포상회를 슈퍼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니 망치와 짜장이 슈퍼 앞 의자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비집고 앉아 양손으로 둘을 쓰다듬었다. 망치는 ‘야옹’하고 인사만 하고 다시 눈을 감았는데, 짜장은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아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보챘다. 짜장을 쓰다듬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와서 공터에 섰다. 짜장이 벌떡 일어나 그리로 달려갔다. 몇 차례 본 적 있는 중년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가방에서 사료를 꺼냈다. 망치는 배가 부른 지 안 먹고 짜장 혼자 사료를 먹었다.

이전 24화반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