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이

by 김지현

밤에 스카이웨이를 걷는데 슈퍼 쪽에서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도로가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가느다란 네 다리를 허부적대면서 개헤엄 치듯 기어다니고 있었다. 방향 없이 헤매던 녀석이 발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기어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내 발 밑을 맴도는 녀석을 지켜보았다. 내가 반응을 안 하니까 녀석은 다시 방향 없이 헤매다 도로로 떨어졌다. 녀석을 들어서 도로 밖으로 옮겨 놨지만 녀석은 또 도로를 향해 기어갔다. 그러다 차에 치일 것 같아 상자를 주워 녀석을 그 안에 넣어 두었다. 도로를 걷다가 상자 안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녀석은 가만 있다가도 내 발소리가 들리면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녀석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어미가 데려갔을까?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나가지 말아야 했다. 만약 녀석이 혼자 있으면 모른 체하기 힘들고, 모른 체할 수 없어서 집에 들이면 다시 내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요다를 키우게 됐는데 그 일을 또 시작할 수는 없었다. 절대 나가보지 않겠다고 애써 다짐을 하는데, 진우가 출근길에 카톡을 보내왔다. ‘새끼가 아직 박스에 있음.’ 왜 묻지도 않는 걸 알려주는 것인지. 겨우 다잡았던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혹시 새끼가 상자 안에 있어서 어미가 못 찾는 걸까? 동네가 떠나가게 우는데 그럴 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만져서 안 데려가는 것 같았다. 괜한 짓을 한 것이다. 종일 녀석에 대한 생각을 떨치려 안간힘을 쓰면서 집안에만 있었다. 현관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한번 나가보면 좀 어떠냐는 식으로 마음이 돌변했다. 끊기로 결심했던 담배를 다시 필 때의 바로 그 마음이었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녀석은 상자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내 발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자를 툭툭 건드렸더니 그제야 일어나 기어다니며 울기 시작했는데 울음소리도 기는 동작도 힘이 하나도 없었다. “종일 울었어요.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안 와보는 거예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슈퍼 집 며느리가 다가와 말했다. “제가 고양이 분유 사러 가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막 출발하려는 마을버스를 향해 뛰었다.

분유를 사다가 소꿉장난 같은 젖병에 담아 입에 갖다 대니까 녀석이 앞발로 젖병을 꽉 쥐고 게걸스럽게 젖꼭지를 빨았다. 배가 빵빵할 때까지 분유를 먹이고 나서 어미가 핥듯이 아랫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줌이 줄줄 나왔다. 내친 김에 얼굴을 닦아주기로 했다. 슈퍼에서 빌린 수건을 적셔 두껍게 엉겨 붙은 눈곱을 떼어 내면서 나는 그 아래서 무서운 걸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풀 먹인 것처럼 딱딱해진 털이 한 쪽 눈에 딱 달라붙어 안구가 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눈곱을 떼어내자 말짱한 눈이 드러났다. “엄마, 눈이 있어!” 옆에서 지켜보던 슈퍼 집 손주가 외쳤다.

어미가 데리러 올 때까지 녀석을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그런데 어미가 데리러 올까? 고양이 카페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내가 하려던 질문이 이미 여럿 올라와 있었다. 사람 손을 타면 어미가 데려가지 않는다는 답변도 있고, 집에서 일주일을 데리고 있었는데 어미가 와서 데려갔다는 답변도 있었다. 녀석의 경우가 어느 쪽일지는 알 수 없었다. 분유를 주러 갈 때마다 어미가 와서 녀석을 데려갔기를 바랬다. 하지만 녀석은 매번 상자 안에서 자고 있었다. 이틀을 기다렸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녀석을 찾지 않았다.

녀석을 집에 데려왔다. 분유를 먹기 시작한 뒤로 녀석은 울음을 뚝 그치고 상자 안에서 잘 잤고, 낯선 집에 와서도 그랬다. 세 시간 마다 분유를 줬다. 젖병을 입에 갖다 대면 녀석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젖병에 달려들며 울부짖었다. 마음만 급해서 젖꼭지를 제대로 물지 못하고 사지를 버둥대다가 마침내 젖꼭지를 입에 무는 데 성공하면 언제 난리를 쳤냐는 듯 평화롭게 젖을 빨았다. 찹찹찹찹. 힘주어 젖꼭지를 빨 때마다 작고 납작한 두 귀가 뒤로 젖혀졌다. 박자를 맞추듯 귀를 까딱대며 젖을 빠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그래도 녀석을 키울 수는 없었다. 고양이 카페에 분양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카페에서 보고요, 고양이 분양하신다고.”

30대의 남자 목소리였다. 신청자가 없을까 봐 미리 글을 올린 거지 당장 분양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당황스러웠다.

“아, 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글을 올렸으니 내가 말문을 열어야 했다.

“혹시 가족관계를 물어봐도 될까요?”

“혼자 살아요. 고양이 한 마리랑. 고양이가 혼자 외로울 거 같아서요.”

“근데요, 고양이를 한 마리만 키우시는 분들이 고양이가 외로울까 봐 한 마리를 더 입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고양이는 자기 영역에 다른 고양이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거든요. 저도 키우는 고양이가 있는데, 걔가 싫어해서 새끼를 분양하려는 거거든요. 키우시는 고양이가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암컷이요.”

“얘도 암컷 같은데, 동성끼리는 사이가 더 안 좋아요.”

나는 그에게 고양이를 입양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

“직장 다니세요?”

“네.”

“근데 얘가 아직 수유기라 세 시간마다 우유를 줘야 하는데 직장 다니면서 그걸 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새끼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결정적 이유를 찾아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금방 혼자 먹게 되겠죠.”

“......그렇긴 하죠.”

“제가 일요일에 2~3시쯤 데리러 갈 수 있어요.”

“일요일이요? 근데 다른 분들한테도 좀더 연락을 받아보고 다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전화를 끊고 나서 녀석을 다른 데로 보내야 한다는 실감이 밀려와 엉엉 울었다. 녀석을 분양하겠다는 결심이 바뀐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직장 다니는 싱글과 사는 고양이의 생활이 어떨지 안 봐도 뻔했다. 녀석을 평생 좁고 적막한 집에서 잠만 자는 생활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다음 날 또 다른 남자가 연락을 해왔다. 남자는 친구와 둘이 산다고 했다. 목소리로 보아 20대 같았는데, 나이가 어린 게 마음에 걸렸다. 무책임하기 쉽고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식구도 서넛은 됐으면 싶었다. 하지만 내 맘에 딱 드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어디 쉽겠는가. 남자가 화요일에 차를 가져와서 녀석을 데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몇 분 안 돼서 문자가 왔다. 친구 차로 가야 하는데 친구가 코로나 백신을 맞아서 그 후유증으로 화요일까지 아플지 모르니 나더러 자기 집 근처인 광명까지 녀석을 데리고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본적인 약속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뒤집는 사람이 고양이를 책임감 있게 키울 것 같지 않아서 불안해졌다. 내가 광명에 못 간다고 했더니, 한 시간 후 또 문자가 왔다. ‘고양이 사진 여러 장 보내주세염’ 언제 봤다고 혀 짧은 소리란 말인가. 요구하는 대로 사진을 보냈더니 문자가 연달아 왔다. ‘한쪽 눈이 부었네요’, ‘호너 증후군처럼 보이는데’, ‘눈 사진 볼 수 있을까요’ 녀석의 눈에는 붓기라곤 없었다. 호너 증후군은 또 뭐란 말인가. 요구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아무 대답이 없다가 약속 전날 문자가 왔다. ‘추석 끝나고 친구랑 일하는 시간이 같아져서 분유를 못먹일꺼같아요ㅠㅠ 분양받고 싶은 아이였는데 무리일꺼같아요..’ 영 미덥지 않았는데 잘됐다 싶었다.

게시글을 다시 ‘예약’에서 ‘분양’으로 바꿨더니 바로 문자가 왔다. ‘분양문의드랴요’ 이전에도 한번 문자를 보냈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새벽 3시에 문자를 보냈길래 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고양이를 잘 키울 것 같지 않았다. 이번 문자도 맘에 들지 않았다. ‘드랴요’라니, 초면에 오타를 수정 않고 보내는 무성의한 태도가 거슬렸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나 보기로 했다.

“문자하셨길래 전화드려요.”

“고양이 아직 분양 안 됐나요?”

“네. 혹시 가족관계를 여쭤봐도 될까요?”

“와이프랑 아기랑 같이 살아요.”

“아기요? 근데 아기가 고양이를 못살게 굴까 봐서....”

아기 아빠한테 이 무슨 무례한 소리란 말인가.

“......지금 아기랑 뭐하는 중이라 다시 문자 드릴게요.”

남자는 전화를 끊었고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자식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오는 사람마다 못마땅해 죽는 드라마의 엄마들처럼 녀석을 입양하겠다는 이들의 태도며 조건 하나하나를 다 트집 잡고 있었다. 녀석을 아무 데나 보낼 수는 없었다. 아니 아까워서 아무 데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반달이와 나

녀석은 종일 나를 따라다녔고 잘 때는 꼭 내게 달라붙어서 잤다. 녀석은 제 몸과 내 몸의 굴곡이 암수요철처럼 딱 들어맞는 위치를 귀신같이 찾아내 편한 자세를 취할 줄 알았다. 내가 앉아 있으면 무릎에 올라와 양 허벅지 사이의 골을 따라 길게 누워 잤고, 내가 누워있으면 모로 누운 내 등에 제 등을 붙이고 잤다. 또 그 조그만 입에 내 입을 갖다 대면 혀를 날름거리며 딥 키스를 했는데 키스를 뺨이나 턱에는 안 하고 꼭 입술에만 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이상하리 만치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인들이 못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시 태어나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들처럼 우리도 전생에 연인이 아니었을까. 녀석이 경계심 없이 나를 따르고, 내가 필사적으로 저항했음에도 녀석에게 속절없이 끌린 건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전생을 믿지 않는 이들은 녀석과 내가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된 대로 행동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설명이 다른 것일까. 수만 년 전 한 아이가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 이래, 아이와 고양이는 수많은 생을 다시 태어나 다시 만났을 것이고, 그때마다 유전자에 새겨진 기억이 서로를 알아보게 했을 것이다. 수만 년 동안 그들이 함께하며 느꼈을 사랑의 기쁨이 새끼와 나 사이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녀석을 떠맡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마음이 조금씩 변하더니 나중에는 그런 걱정을 했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녀석과 같이 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요다가 녀석을 싫어했다. 진우가 그런 요다를 대변해 녀석을 빨리 입양 보내라고 성화했지만, 진우를 설득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진우의 부모님이 녀석을 데려가겠다고 나섰다. 부모님 댁은 집이 넓고, 형네가 같이 살아서 식구가 많으며, 조카들은 고양이를 괴롭히지 않을 나이였다. 바로 내가 찾던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입양처를 찾는 동안 녀석을 맡아달라고 그 집에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이 거절했었다. 그런데 내가 녀석을 키우기로 결심한 그때 부모님이 마음을 바꾼 것이다. 진우가 내게 결단을 요구했다. 이제 와서 못 보낸다고 할 수가 없어 엉겁결에 알았다고,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녀석과 그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말을 번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진우의 조카가 녀석을 위해 주문한 고양이용품 사진을 날마다 카톡으로 보내왔다. 결국 녀석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카가 새끼 이름을 ‘반달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반달이는 내가 녀석을 부르던 여러 이름들 중의 하나이다. 조카에게 그 이름을 얘기한 적 없는데 같은 이름을 지은 것이다. 크게 신기할 만한 일은 아니다. 녀석의 가슴에 있는 반달무늬를 보면 누구라도 반달곰을 떠올리게 될 테니 말이다.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예쁜 것을 뺏기다니, 이번 생에도 우리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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