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명상센터 첫날~넷째날

미얀마 태국 여행 2018-2019 1화 양곤

by 김지현

2017년 봄 다리를 삐었다. 대단하게 다친 것도 아닌데 낫질 않았다. 상태가 나쁠 땐 5분에서 10분, 상태가 좋아도 3-40분 이상은 걷기가 힘들었는데, 대체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딜 가든 앉아 있었고 주로는 집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2년을 집에 앉아 있다 보니, 장소라도 바꿔서 앉아 있고 싶었다.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을 가도 숙소에만 있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자기 집도 아닌 숙소에서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쉬운 노릇이 아닐 터였다. 앉아서도 할 수 있는 걸 궁리하다가 명상을 떠올렸다. 미얀마에 명상센터가 많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먹고 자는 것이 공짜라고 해서 한결 솔깃했다. 미얀마 가이드북과 관련 사이트를 뒤져 명상센터 몇 군데를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명상센터에서 좌선과 행선을 같이 했다. 좌선이 앉아서 하는 명상이라면, 행선은 걸으며 하는 명상이다. 내 다리론 행선을 할 형편이 못 됐는데, 다행히도 좌선만 하는 곳이 있었다. 양곤의 담마명상센터. 3일, 10일, 30일 명상코스가 있는데, 3일은 너무 짧은 것 같고 30일은 너무 긴 것 같아 10일 코스를 예약했다.

비행기 표를 끊었다. 두 달 일정으로 미얀마에 갔다가 태국에서 돌아오는 표였다. 명상센터에서 나온 후에 뭘 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입소하는 날

담마명상센터 입구에는 대형 초상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볼살이 두툼한 노인으로 그렇게 큰 사이즈로 보기엔 부담스런 얼굴이었다. 노인이 센터를 창시한 고엔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담마명상센터는 전 세계에 200여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 한국 담양에도 그 지부가 있다. 같은 한국인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된 제이는 담양 센터에 빈자리가 없어 미얀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수련생은 100명쯤 됐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고 외국인이 전체의 20프로쯤 됐다. 한국인은 제이와 나 단둘. 입소한 날은 간단히 오리엔테이션만 하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첫날

새벽 4시에 기상해 어둠 속을 걸어 담마홀로 갔다. 명상이 시작되는 4시 반이 되자 백여 명의 수련생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든 가르침은 녹음된 고엔카의 목소리로 전달됐다.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각 나라 언어로 법문이 저장된 플레이어가 따로 제공됐다. 스피커에서 고엔카의 육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매일의 명상과제도 그의 목소리로 전달됐다.

첫날 과제는 호흡 관찰하기.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호흡을 알아차린다.’ 얼핏 매우 쉬운 과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고 호흡을 알아차릴 수도 있는데, 두 개를 동시에 하는 건 안 됐다. 의식 안 할 때는 자연스럽게 잘 쉬던 숨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쉬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박자를 자꾸만 놓쳐서 숨이 찼다. 자연스럽게 숨 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자연스러운 호흡은 점점 불가능해졌다.

그나마도 호흡에 집중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바닥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온몸이 안 아픈 데 없이 다 아팠다. 의자에 앉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의자에 앉으면 등받이와 엉덩이 앉는 부분이 허리와 엉덩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알맞는 높이가 다리를 편하게 뻗게 해준다. 그러나 바닥에 앉으면 기댈 곳을 잃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제 무게를 못 이겨 바닥에 누우려고만 한다. 그러나 누울 수는 없고 억지로 몸을 세우느라 힘을 주다 보니 온몸이 아팠다. 특히 가랑이가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모든 신경이 호흡이 아니라 통증에 쏠렸고 통증을 없애느라 자세를 바꾸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둘러보니 다른 외국인들도 나와 같은 문제가 있는 듯 양 무릎 밑에 방석을 괴 고관절을 받치고 있었다. 방석 두 개를 가져다가 그들을 따라해 보았다. 처음엔 잠깐 편해진 듯 했지만 곧 통증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든 다리를 접은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다들 그러고 있으니 나도 그래야만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남자 외국인이 방석을 높이 쌓아 아예 의자를 만들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눈치를 보니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 시간에는 나도 그 남자처럼 방석 의자를 만들어 앉아 보기로 했다.

작정한 대로 방석 의자를 만들어 앉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방에서 쉬다가 제이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게 됐다. 센터에선 묵언 수행이 규칙이지만 제이는 방에 둘이 있을 땐 스스럼 없이 말을 걸어왔고, 나도 고관절 통증을 상의하고 싶은 마음에 입을 열게 됐다.

"자기는 고관절 안 아파?“

내가 제이에게 물었다.

“방석을 그렇게 많이 가져올 때 알아 봤어요.”

제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꼭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는 거야? 다리가 아프니까 온통 거기에 신경이 다 가 있어서 호흡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첫날이 제일 힘들다고 그래요. 사나흘 지나면 적응될 거예요.”

“나 그냥 다음 시간부터는 방석으로 의자를 만들어서 앉으려고.”

“의자를 신청하지 그랬어요?”

“의자를 신청할 수 있어?”

“지팡이 짚는 할머니들, 맨 뒤에 의자에 앉아 있잖아요. 못 봤어요?”

“의자를 어떻게 신청하는 건데?”

“신청 서식에 의자 사용을 원하는지 묻는 옵션이 있잖아요.”

“못 봤어. 신청할 걸. 지금이라도 신청하면 안 되나?”

“물어보세요. 근데 난 의자에 앉게 해주는 거 보고 놀랐어요. 우리 절에선 무조건 가부좌해야 돼. 우리 스님은 얄짤 없어요.”

“그건 왜 그래?”

“수행은 몸을 바꾸는 일이예요. 습이 쌓여서 지금의 몸이 된 거니까 몸을 바꾸는 게 곧 습을 바꾸는 거잖아요. 내 말이 너무 어려운가?”

“아니야. 말 해.”

“서양 애들이 가부좌가 안 되는 건 가부좌를 못하는 신체구조를 타고 나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어려서부터 의자생활을 해서 몸이 그렇게 굳어진 거지. 가부좌를 하는 것 자체가 습을 내려놓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저항이 거세죠. 그래서 아픈 거예요. 몸이, 습이 저항을 해서. 근데 자꾸 하면 돼요. 서양에서 온 스님들도 보면 결국은 다 가부좌 되잖아요.”

“그러네. 근데 내가 다리가 안 좋아. 다리를 접고 꺾는 자세가 다리에 제일 안 좋거든.”

“할머니들도 다 하는데.”

“그게 신기하데. 내 앞에 앉은 미얀마 할머니는 일어날 때 보니까 잘 걷지도 못하는데, 쭈그린 자세로 돌부처처럼 앉아 있잖아. 어떻게 그러지?”

“위파사나를 하면서 몸을 관찰하다 보면 오히려 다리에 좋을 거라고 봐요.”

“정말?”

“위파사나 하면서 병 고친 사람들 많아요.”

“정말?”

“내가 병 고쳤잖아.”

“정말? 내 다리도 고칠 수 있을까?”

“그럼요. 언니, 10일 코스 끝나고 나갈 땐 다리가 다 나아서 나가는 거 아니에요?”

“그래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사나흘이 고비라고들 해요. 그때까지만 잘 견뎌 봐요.”

“근데 고관절이 너무 아파. 자기는 안 그래?”

“잘 못 앉아서 그래요. 방석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실한 놈 하나만 남기고 도로 다 갖다 놔요.”

제이의 앉는 법 강의가 시작됐다.

“앉는 방법이 있어요. 엉덩이 뼈 두 개 꼬리뼈 하나 이렇게 세 개의 뼈를 바닥에 붙여 봐요. 엉덩이를 바닥에 딱 붙이고 엉덩이로 몸 전체를 지지해야 돼요."

제이를 따라해 보았다.

“꼬리뼈가 안 닿는데?”

“그쵸? 수행을 오래한 분들은 뼈 세 개가 바닥에 다 닿는데, 우리는 꼬리뼈가 들뜨기 때문에 그 밑에 작은 방석을 받쳐야 해요.”

제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색동 베개로 꼬리뼈 밑을 받쳤다.

다음 시간에 제이의 말대로 다른 방석은 다 제자리에 갖다 놓고 작은 방석 하나를 남겨 꼬리뼈 밑에 끼우고 앉았다. 나뿐 아니라 다들 매시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 남자 중에 키가 2미터가 넘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큰 데다 말라서 걸을 때면 상반신이 선전 풍선처럼 휘청거렸다. 당연히 다리도 길었다. 다리를 접고 앉아 있자면 나처럼 짧은 다리도 주체하기가 힘든데 그처럼 긴 다리는 오죽 처치 곤란이겠는가.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고 그는 방석이 아닌 제3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줄이었다. 그는 고무줄을 등과 무릎을 지나가게 몸통에 끼워 고무줄의 힘으로 등과 무릎을 받치고 있었다. 고무줄이 의자의 등받이 겸 다리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남는 고무줄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그 야단을 떨고 있는 동안 미얀마인들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뒤에서 보면 나란히 앉아 있는 수십 개의 불상처럼 보였다. 불상은 등이 수직으로 꼿꼿한 데 비해 그들의 등은 완만하게 굽어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굳이 척추를 곧게 펴려고도 하지 않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고수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히말라야를 쓰레빠 신고 오른다는 전설의 셀파들을 떠올렸다.

명상코스에 참여한 미얀마인들은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보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부처님 앞에서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비는 대신 부처님처럼 살겠다고 부처님이 했던 수행을 직접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한국종교의 특징이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그럼 기복신앙이 아닌 신앙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세상에는 기복신앙이 아닌 신앙이 있는 것이다.


둘째 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데 멀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수십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소리 같았다. 마을에서 축제가 있나? 그러나 이 시간에, 주택가에서? 그때 마당의 누렁이가 늑대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리서 개들이 누렁이 소리에 화답하며 소리는 불길이 일듯 커졌다. 잠결에 들은 건 개 짖는 소리였던 것이다.

매일 밤 개들이 합창을 했다. 인간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개들의 합창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합창은 한 마리의 선창으로 시작된다. 누군가 낮은 소리로 우우 노래를 시작하면, 거기에 여러 마리의 개가 목소리를 더하며 노랫소리가 커지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온 힘을 다해 울부짖고 더러는 감정이 고조돼 멍멍 짖기까지 한다. 인간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소리가 차차 잦아들고 나중에는 한두 마리만 남아 간헐적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그 소리마저 피아니시모로 잦아들면서 합창이 끝난다. 개들의 합창은 매일 밤 내가 잠들 무렵 시작되어 해뜨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새벽 4시. 기상 종소리에 일어나니 누렁이가 마당에서 담 너머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발코니에 서서 아침체조를 하며 누렁이의 솔로를 감상했다.

새벽 4시 25분. 수련생들이 어둠 속을 걸어 담마홀로 향하고 있었다. 일찍 들어가 봐야 앉아 있을 일밖에 없다는 걸 파악한 뒤로 나는 어떻게든 홀에 늦게 들어가려고 애썼다. 홀이 가까워지면 천천히 걸으면서 다른 수련생들이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렸고, 문 앞에 도착했는데 뒤따라오는 수련생들이 있으면 스트레칭을 하며 그들이 먼저 들어가길 기다렸다.

새벽 6시 반. 명상이 끝나고 불이 켜지자마자 벌떡 일어났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일어선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먼저 나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가고 창문으로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종이 울렸다. 그제야 다른 학생들이 일어났다.

느릿느릿 걸으며 길을 막고 있는 수련생들을 지그재그로 추월하며 식당으로 달려갔다. 내 자리가 출입구에서 제일 먼 탓에 그토록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에 일착으로 가는 데는 실패했다. 아침 메뉴는 콩밥, 튀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귤. 밥을 먹고 나서 귤 세 개를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일어섰다. 식당에 들어갈 때는 일등을 놓쳤지만 나올 땐 일등으로 나왔다. 숙소에 일 분이라도 더 머물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에 돌아오니 밤새 울부짖던 누렁이 두 마리가 발코니 겸 복도에 누워 자고 있었다. 거기가 녀석들 집이었다. 감시 초소처럼 주변이 잘 내려다보이고 바람이 잘 통하며 돌바닥이 시원한 곳. 누렁이 한 마리가 내 방문 앞에 엎드려 있었다. “좀 비켜줄래?” 친한 척 말을 걸었지만, 누렁이가 내게 곁을 주는 법이라곤 없었다. 누렁이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더니 방문에서 서너 걸음 비켜나 다시 엎드렸다.

오전 9시 40분. 명상을 할 만큼 한 것 같아서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쉬는 시간이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자세를 풀고 다리 마사지를 하고 있으려니 양옆에 앉은 제이와 스페인 여자가 차례로 눈을 뜨고 자세를 풀었다. 내가 다리를 살짝 뻗어 발가락을 까딱거리자 제이와 스페인 여자가 거의 동시에 발가락을 까딱까딱했다. 묵언수행이 원칙이었기에 수련생들은 서로 말을 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아주 자잘한 것 하나까지도 서로를 참고하고 따라하며 호응했다. 개들이 목소리를 높여 합창을 한다면 우리는 묵언의 합창을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20분.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마을로 통하는 막힌 대문에서 출발해 남자 숙소가 시작되는 출입금지 경계선까지 걸어서 2분 30초 남짓의 산책로를 교도소 마당을 돌 듯 돌았다.

오후 4시 반. 2시 반부터 5시까지 겨우 쉬는 시간 10분을 쉬고 계속 앉아 있으려니 화가 났다.

오후 5시. 티타임에 식당에 가보니 어제와 똑같은 간식이 놓여있었다. 설탕에 절인 밤. 그냥 나와서 숙소로 향하는데 누렁이 두 마리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낮에는 내내 자더니 해가 지며 선선해지자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저녁 6시, 명상을 하려고 앉았으나 몸이 데친 시금치처럼 쳐졌다. 종일 꼿꼿한 자세로 나를 감탄시키던 스페인 여자도 머리며 팔다리를 가누지를 못해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팔로 머리를 간신히 받친 채였다. 머리를 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리에 머리를 기댔다. 그 자세로 명상을 하려고 했는데, 그만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드니 조교였다. 이틀 동안 조교에게 안경 벗으라고 3번, 눕지 말라고 2번, 이어폰 꽂으라고 1번, 졸지 말라고 두 번 지적을 받았다.

밤 9시 반. 나는 5분 만에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제이는 씻고 책 읽고 할 일이 많다.

밤 10시. 불을 끄자 개들이 합창을 시작했다.

셋째 날

하루에 한 번 선생님과의 소그룹 면담이 있었다. 선생님은 고엔카가 제시한 과제를 간결하게 전달한 뒤 수련생들이 그 과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일일이 확인하셨다. “코밑 트라이앵글을 관찰하세요.” 첫날의 과제였다. 선생님은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삼각형을 만들어 코 밑 부분에 대고 말씀하셨다. “코밑 트라이앵글은 여기 삼각형 안, 코 밑부분과 인중을 말해요. 트라이앵글 밖에 다른 부분은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마세요.”

코 전체가 아니라 코끝부터 인중을 거쳐 윗입술에 이르는 삼각형에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감각을 느끼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면 숨을 내쉴 때 인중에 미세하게 간지러운 바람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어찌나 미미한지 뭐라도 느끼고자 하는 의지가 상상해낸 건지 진짜로 느끼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날에도 코밑 삼각형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호흡을 느껴보려고 일부러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나 차차 숨을 크게 쉴 필요가 없어졌다. 인중에 와 닿는 호흡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더니, 나중에는 호흡이 뿜어져 나오는 게 만화 속 공룡의 콧김처럼 뜨겁고 거세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그 뜨겁고 거센 콧김의 감각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껴안을 때 상대방이 내쉬는 콧김이 뺨에 닿던 감각이며 내 콧김이 팔에 닿던 감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팔뚝에 콧김을 뿜어 보았다. 뜨겁고 간지러웠다. 손으로 만지는 것만큼이나 선명한 감각. 왜 이토록 선명한 감각을 인중은 못 느끼는 것일까?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코가 무뎌지는 것처럼 콧김에 오래 노출돼 감각이 둔화된 까닭일 것이다. 24시간 콧김에 노출된 인중이 콧김을 느낀다면 얼마나 성가시고 피곤한 노릇이겠나. 그런데 퇴화된 감각이 되살아나는 데는 하루 반나절밖에 안 걸렸다. 퇴화하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 안에서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뭘까, 이 간질간질한 느낌은? 코털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털이 흔들리고 있었다. 코털은 처음엔 민들레 솜털처럼 가늘고 여린 느낌이다가 집중하면 할수록 크고 단단해지더니 나중에는 억새풀이 됐다.

호흡을 따라 의식이 카메라가 줌인하듯 줌인하며 코 삼각형은 거대한 세계로 변했다. 입술은 높은 산이 되었고, 인중과 입술의 경계는 깎아지른 봉우리가, 인중에서 팔자주름까지는 완만한 등성이가 되었다. 억새풀을 가르고 콧구멍 양쪽 가장자리로 빠져나간 바람은 완만한 팔자주름을 타고 넓게 퍼졌고, 콧구멍 아래쪽으로 빠져나와 인중을 따라 내려간 바람은 뾰족한 입술 봉우리에 가로막혔다. 반면에 콧구멍 상단에서 뿜어져 나온 바람은 빠른 속도로 인중 상공을 통과하여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스치며 하강했다. 그곳에서는 한반도 상공 못지않게 버라이어티한 공기의 활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세계에서 나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 숨을 들이쉬는데 갑자기 왼쪽 가슴 윗부분이 뻥 뚫리면서 가슴에서 목구멍을 지나 왼쪽 콧구멍을 거쳐 눈까지 숨이 뿜어져 올라갔다. 숨이 유전에서 기름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굉장한 기세로 뿜어져 올라가는 걸,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쳤다. 쉬는 시간 후에 다시 호흡을 해 보았다. 아까 뚫긴 길은 여전히 뚫려 있었지만 그 힘이 아까처럼 파워풀하지는 않았다.

제이 말로는 호흡이 뚫린 거라고 했다. 나는 호흡이 유난히 짧은 편이고 특히 들숨이 짧은데 과연 호흡이 길어진 것 같았다. 제이 말로는 내가 호흡이 뚫린 이후로 코를 골지 않는다고 했다. 제이도 그랬다. 제이도 처음엔 코를 골다가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코를 골지 않게 됐다.

넷째 날

센터 내에는 실로 많은 규율들이 있다. 센터 안으로 휴대폰이나 노트북, 책, 필기구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센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남녀가 한 자리에 섞이지 않는다, 여성의 어깨, 가슴, 무릎을 드러내지 않는다, 홀 앞쪽으로 다리를 뻗지 않는다, 명상할 때 안경을 끼지 않는다, 마당에서 조깅 등의 운동을 하지 않는다 등등. 나는 기회만 있으면 규율을 어기려 들었고, 그때마다 조교의 지적을 받았다.

명상 중에 안경을 벗으라는 것으로 가장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습관이 돼서 안경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일부러 안경을 끼고 두리번거리다가 지적을 받은 적이 더 많다. 나는 하라는 명상은 안 하고 다른 사람들 명상하는 걸 쳐다보길 좋아했는데 그러려면 몰래 안경을 껴야 했다. 조교는 신경 써서 나를 체크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조교가 내 쪽으로 고개만 돌려도 잽싸게 안경을 벗었다. 명상 중에 안경을 벗으라니 이상한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에 뵈는 게 없어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명상에 집중하게 됐다.

조교의 감시는 방까지 따라왔다. 개인 명상시간에는 방에서 혼자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방에 혼자 있으면 느슨해질 것 같아 홀에 남는 쪽을 택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개인 명상시간이면 발길이 방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자거나 딴짓을 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목, 어깨, 허리, 다리가 다 아프니까 자세를 바꾸려던 것뿐이었다. 와선을 하려고 누웠다. 김수영은 그의 마지막 에세이에서 선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와선이라고 하고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직접 해보니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몸이 편하니 잠이 왔다. “누워 있으면 안 돼요. 앉아서 명상하세요.” 막 잠이 들려는데 머리맡에서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나는 종종 명상이고 뭐고 잠이나 자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지만, 그 욕망은 매번 조교에게 발각돼 저지당했다. 정진의 고삐를 완전히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보다 더 나의 정진에 관심을 기울여준 조교 덕분이다.

그러나 조교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가 없을 수는 없다. 제이와 나는 한번 묵언을 깬 이후로 방에 단둘이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됐다. 고엔카가 묵언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이와 말을 하다 갈등이 빚어졌고 그로 인해 여러 날을 번민에 시달려야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괴로운 노릇이다. 머나먼 나라까지 와서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해야 할 명상에 집중을 못하는 건 더 괴로운 노릇이다. 괴로움이 커질수록 괴로움을 야기한 제이에 대한 미움이 같이 커졌고, 제이를 미워하느라 명상에 집중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묵언의 규율을 어긴 대가로 나는 하루 13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번뇌 지옥에 시달려야 했다.

무협만화에 보면 초능력자가 악귀에게 쫓기는 인물의 주위에 원을 그린다. 초능력자는 원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인물은 악귀의 꾐에 넘어가 스스로 원 밖으로 걸어 나간다. 인물은 악귀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잡히고 나서야 원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 역시 규율을 어긴 대가로 번뇌 지옥에 빠지고 나서야 규율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규율은 수련자를 마군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인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규율을 우습게 여겼고, 약간의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남녀를 구분하는 규율에 대해 그랬다. 센터에선 남녀가 섞이면 안 된다는 규율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남녀는 숙소는 물론이고 식당과 산책하는 마당까지도 따로 썼고 두 구역 사이엔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단체 명상만은 담마홀에서 같이 했지만 가운데 사이를 널찍하게 띄우고 남자는 홀의 왼편에 여자는 홀의 오른편에 앉았다. 학생들만 남녀를 구분하는 게 아니었다. 여자는 여자 선생님과 여자 조교가 지도했고, 남자는 남자 선생님과 남자 조교가 지도했다. 여중 여고 시절에도 남자 선생님은 있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 결벽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여중 여고 시절에 남자 선생님을 짝사랑하여 밤낮으로 그를 떠올리며 무수한 망상을 피우고,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며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았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단지 홀에서 남자수련생들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머릿속으로 망상을 피우고 있었다. 내 자리는 맨 가운데라 상대적으로 남자들과 가까웠는데,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남자 수련생들을 곁눈질하며 속으로 그들을 품평하는 것이 은밀한 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사람들을 주목해 보게 되었는데 남자 조교가 그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그가 항상 웃는 얼굴이라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명상센터는 웃을 만한 일이라곤 없는 곳인 것이다. 그런데 점점 그의 웃는 얼굴과 마른 체구에 가볍고 경쾌한 몸놀림이 보기 좋아지더니, 그가 어디 있는지 눈으로 찾게 됐고 나중에는 말을 걸고 싶어졌다. 아무 접촉이랄 것 없이 멀찌감치 쳐다보기만 하는 동안 마음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창 때에 비하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데도 이 지경이니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식이조절을 하면서 굳이 케이크를 눈앞에 놔두고 번민하는 건 바보짓이다. 남녀를 구분하는 규율은 식이조절을 위해 케이크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것과 같은 조치인 것이다. 조교의 감시를 피해 안경을 찾아 끼고 눈으로 남자 조교를 쫓으면서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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