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 B의 함정
2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대학 시절,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약 1년 정도 했던 나는 아주 저렴한 비행기와 기차로 유럽을 오갔다. 영국으로 올 때 우리 집 사정이 녹록치 않았기에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와 여행경비에 보태곤 했다. 나는 늘 가난했고, 여행은 최대한 소비 없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침은 한인민박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크루아상이나 바게트를 사서 길거리에서 뜯어먹었고, 저녁은 민박집 다른 배낭여행객들과 까르푸에서 장을 봐온 것으로 대충 때웠었다.(그 역시도 나는 거의 빌붙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했던 유럽생활은 앞으로도 자주 언급할 것 같다)
이번엔 달랐다. 항공사 직원 아내가 되어 파리를 다시 밟았다. 2박4일의 아주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게 플렉스라고 생각했다. 저렴한 티켓으로 또 언제든 올 수 있으니까. 20년의 직장생활로 남달리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흉내를 내며 살던 나는 20년 전과 달리 여유로운 카페 테라스에서 크루아상과 브리오슈를 즐겼고, 에펠탑이 보이는 식당에서 따뜻한 식사도 했다. 하지만 파리는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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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에서 공항으로
귀국길, 노틀담 근처에서 RER B를 타고 샤를 드 골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숙소가 캉브론이었는데 체크아웃을 12시에 하고 8시 비행기를 타자니 시간이 애매했다. 3~4시간 정도의 갭이 있었다. 저렴한 숙소라 짐을 맡아주는 것도 유료인 곳. 3시간 맡기려고 하루치 요금을 내는 건 너무 억울했다.(플렉스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역시 몸이 가난을 기억하는 듯) 2시간 정도 걸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공항에는 아주 일찍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럼 가서 좀 쉬어야지. 캉브론에서 노틀담까지 걸었다. 파리 거리는 캐리어를 끌기 적합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막상 다녀보면 또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여기저기 엘레베이터도 있고, 큰 건물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물론 한국만큼 잘 되어 있진 않지만(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시떼 섬을 종주한 뒤 노틀담 역에서 RER B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분명 열차 승강장으로 가는 길인데, 스피드게이트가 없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문 열린 열차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 ‘MANDATORY TAGGING’이라고 쓰인 작은 태깅 단말기가 눈에 들어왔다. “의무적이라는데… 이걸 안 찍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순간의 고민 끝에 나는 공항행 티켓을 휴대폰 NFC로 태그했다. 삑, 하고 소리가 났고, 나는 안심한 채 열차에 올랐다.
앞서가던 정신 없는 러시아 가족은 태깅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들, 공항에서 큰 곤욕 치르겠구만.‘
그러나 함정에 빠진 건 다름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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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골 공항에서의 당황
공항역에 도착해 출구로 향하자 이번에는 확실한 스피드게이트가 가로막고 있었다. “들어올 때 찍었으니, 나갈 때 또 찍으면 되지.”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태깅을 했다. 그런데,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에는 차갑게도 이렇게 떠 있었다.
Remaining ticket: 0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노틀담에서 괜히 한 번 더 태깅을 해버린 것이었다. 들어올 때 쓰지도 않아도 될 티켓을 이미 소진시킨 셈이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하필 인포 부스에 직원도 없고, 게이트는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게이트를 빠져 나갔다.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래, 돈 버린 셈 치고, 티켓 하나 더 사면 돼“ 아주 약간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RATP어플을 통해 티켓을 한 장 더 구매하기를 눌렀다.
그런데 결제비밀번호까지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통신 문제로 마지막으로 넘어가지가 않는 것이다. ‘나 이러다가 공항도 아니고 공항철도 플랫폼에 갇혀서 한국 못 가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도 했다.
’침착해.. 와이파이 켜서 하면 돼..‘ 하고 한 켠에 쪼그려 앉아서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드니 저 멀리에 안전조끼를 입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나는 무인도에 갇힌 톰행크스가 저 멀리 선박을 발견한 것처럼 크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좀 봐 주세요!! hey! excuse moi!”
당황하니 영어도 제대로 안 나왔다. 맞는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보고 있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노틀담에서 찍을 필요가 없는 줄 모르고, 나는 찍었다. 그랬더니 나의 티켓은 0이 되었다. 지금 티켓이 안 찍힌다.“
그랬더니 그녀는 “한 장 더 사라”고 하였고, 나는 “당연히 내가 다시 사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 봐라. 지금 핸드폰 먹통이다. 여기 인터넷 안 터진다. 나를 내보내 주면 저 쪽 티켓 카운터에 가서 사겠다“
라고 매우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더니, 잠깐 생각한 뒤 매우 엄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Ok, You can go, But next time? Be careful.”
그리고는 자기 카드로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내 생명의 은인, 진짜 Merci beaucou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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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남긴 교훈
20년 전, 정보도 없이 북역에서 우왕좌왕하던 그때처럼, 파리는 이번에도 나를 시험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다는 것.
그 순간 깨달았다.
파리는 불친절한 것으로 악명 높지만, 나는 엄격한 친절이라고 부르고 싶다.
“파리는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20년 만에 만난 파리는 나에게 아주 진한 작별의 추억을 선사하였다.
Adios Paris!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