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으로 기억되는 파리의 기억

작가 지망생들의 아지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by 트래블비버

20년 전 파리에 왔을 때는 이 서점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때는 파리의 수많은 풍경 중에서 서점 하나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달랐다.

노트르담 성당 앞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파리의 상징 같은 서점.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가능하면 서점을 찾는다. 현지인들의 책 취향을 엿보고 싶어서, 책을 사랑해서.. 이런 고리타분한 이유보다는, 서점 특유의 안전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점과 성전은 한 끗 차이..

그렇게 나의 단골 여행 코스가 되었는데, 이번엔 특히 마음이 끌렸다.


‘영국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내세운 서점이? 영국이라면 치를 떠는 프랑스 파리에? 그것도 금싸라기 땅 노트르담 앞에?’

파리에서 영어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며 파리지앵들의 싸늘한 눈빛에 괜히 주눅 들던 20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소심했던 20대의 나는 결국 길거리에서 불어신문을 주워서 책커버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호기심을 꺼내어 보며 서점으로 걸었다.


서점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침 10시 30분,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이 3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파리에 와서 서점 앞에서 줄을 서게 될 줄이야…’

기다리는 동안 서점의 역사를 검색해 보았다.

알고 보니 이곳은 1920년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같은 거장들이 드나들던 아지트였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글을 쓰고 책을 읽던, 문학의 성지 같은 공간.

특히 흥미로웠던 건, 이 서점의 특별한 전통이었다. 서점 위로 보이는 창문을 가진 작은 방을 젊은 작가들에게 내어주되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매일 글을 쓸 것, 그리고 아래층에서 책을 읽을 것.]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도 여전히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텀블위드(Tumbleweed)’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작가 지망생들이 서점 위 작은 방에서 머무르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이 서점의 창립자인 조지 위트먼은 평생을 스스로 ‘텀블위드’, 바람 따라 떠도는 잡초라 부르며 여행했던 사람이었기에, 머물 곳이 필요한 여행객들에게 작은 방을 내어주었다.

지금은 작가지망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여, 최소 1주~최대 1개월간 머물며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아침 모임에는 참석해야 하고, 떠날 때 자신의 사진, 직업 등 정보와 함께 자서전을 써서 내고 가야 한다.


호기심에 공식 홈페이지(https://www.shakespeareandcompany.com/tumbleweeding)를 들어가 보니, “현재 신청을 하여 선정된 사람은 12월 이후에 이용이 가능하다”는 안내문구가 있었다. 신청할 것도 아니면서, 잠시 상상해 본다. 한겨울 파리, 작은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줄은 조금씩 줄어들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출입문에 적힌 대로 서점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 눈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실내는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통로조차 비집고 걸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책과 책 사이를 걸으며 어떤 책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많은 여행자들이 서점 도장이 찍힌 책을 기념품으로 사 간다고 했지만, 나는 결국 책을 고르지 않았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탓도 있고, 사실 책은 어디서든 살 수 있으니까.

대신 나는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에코백을 골랐다.

가방 하나를 손에 쥔 순간, 오히려 책보다 큰 이야기를 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에코백에 그려진 장면 어딘가에 내가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20유로에 소중한 추억을 구매함


책이든 가방이든, 결국 여행에서 중요한 건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품고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20년 전엔 몰랐던 이곳, 이제야 발견한 나만의 파리의 상징. 그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다음에 파리에 다시 간다면, 긴 줄에 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책들도 꼼꼼히 살펴보고, 가방 속에 책 한 권쯤은 담아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여행자가 아닌 ‘텀블위드’로 이곳에서 살아보는 꿈을 꿔 본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 봄직한 모습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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