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문앞에서 '멈칫' 나는 4살이 된다

-

by La Verna

아직 오진 않았지만 내겐 10월이 멀지 않았다.

병원.. 정기검진, 그리고 서울성모병원. 이 단어들이 떠오르면, 내 심장은 이유없이 박자를 올리기 시작한다. 나는 정기검진이라는 인간의 도리를 3년에 한 번씩, 스스로에게 선물처럼 하사하는,

나름 품격있는 피조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단, 병원만은 늘 예외였다.

이번 10월, 늘 다니던 성모병원에 가야한다.

서울에서 나는 여러 차례 병원을 옮겨 다녔다.
그러던 중, 서울성모병원은 지인의 추천으로 혼자 예약해 대뜸 가본 곳이었다. 국가 고위직 인사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고, 성공적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괜스레 신뢰감이 생겨 혼자 예약해 찾아갔었다.

'그 정도 인물이 믿고 수술을 받았다면, 무언가 다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심각한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몸이 조금 불편해진 김에 점검삼아 들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예상보다 훨씬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가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와 존중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엔 큰 병원 네 곳을 돌아 다녀봤다. 그중 가장 진심 어린 배려가 설명에 묻어 있었고, 그 진심은 전문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병원이 그나마 낯설지 않았다. 오랜 헤맨 끝에 드디어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수년간 병원을 바꾸지 않았다. 병원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이 병원만큼은 꾸준히 찾고 있다.

그런데도, 갈때마다 성모병원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은혜'가 무섭다.

나는 병원을 무서워한다. 공포라기보다는… 일종의 압도. 병원이라는 구조물은 그 자체로 나를 작게 만든다. 문 앞에 서면, 자동문이 '스윽' 열리는 순간이 제일 그렇다.

문은 말이 없지만, 묻는다.

"또 왔니? 이번엔 무슨 생각으로 왔니..?"

매번 병원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시작되는 정교한 몸의 반응이 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이 서늘해진다.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반복되는, 나만의 ‘병원 트라우마 퍼포먼스’다.


이것은 4살 때부터였다. 그때는 미국에 살고있었기에 그곳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병원만 가면 거기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병원은 그때부터인지 ‘사람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 곳’이 되었다.


어찌보면,

어릴적부터 우리 집 거실은 아버지의 진료실이기도 했다.

의사이자 약사이신 아버지는 미국에서 의대와 약대를 동시에 졸업하신 후, 두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지만 결코 당신의 학벌이나 그 이력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조용히 청진기를 들이대거나 약통의 약 성분을 관찰하시던 분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약국이자 병원이었고, 때때로 작은 응급실처럼 기능했다. 감기, 열, 피, 통증—모든 것들에서 아버지의 진단은 대체로 정확했고, 설명은 간결했다. 특별히 다정하진 않았지만, 늘 믿음이 갔다.

다만, 그 방식이 조금 강했다.

"그 증상은 심해지면 사망할 수도 있어."

이 한 문장.

집에서 내가 기침 한 번 하면 “그러다 폐에 물 차고, 그거 막히면 뇌로 가고, 그러면 사망할 수도 있어”와 같이 '기-승-전-사망'과 같은 공식이 날아왔다.

덕분에 가족들은 아빠의 긴급 브리핑을 듣고 ‘이러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아래, 죽음을 각오한 듯 휴식 후 3일 만에 부활했다.


그렇게 아빠가 의료인임에도, 나는 병원이 싫었다. 아직도 정말 그렇다.

단어만 들어도 입 안에서 ‘소독약맛’같은게 나고, 목 뒤가 서늘해진다. 이번 10월도 떠올리면 그렇다.

검진을 또 미룰까, 내년으로? 몇 번이고 병원 홈페이지 예약을 미루기위해 들락거렸지만,

손은 떨리고, 마우스 커서는 의미없는 클릭만 무한 반복한다.

나는 왜 이렇게 병원이 무서울까.


나는 혼자 가겠다고 했다. 늘 그래왔다.

아버지는 늘 같이 가주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늘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아빠가 따라가면, 나는 어느새 ‘소아 환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찍 어른이 되었다.

특히, 어릴때부터 어른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4살때의 소아환자 때처럼 바라보시고, 조금 과하게 걱정했다.

나는 이제 어엿한 성인인데 그게 좀 아니다싶었다.

아빠 눈에는 내가 늘 어렸고,

보호해야 할 아이였던걸 깨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왔다.

병원도, 그중 하나였다. 내 몸은 내 책임이고, 내가 혼자 진료실에 들어가는 그 모습이, 어쩌면 아버지에게 내가 다 자란 것을 보여주는 방법 같았다. 그래서다. 아빠가 같이 가주시겠다고 할 때, 나는 기필코 거절했다.

그래서 늘 몸의 어디가 안좋으면 몰래 예약을 잡고, 병원도 혼자 갔고, 혼자 서 있었고, 혼자 겁을 먹었다.

의사앞에서 말도 안 되는 어른 흉내를 내며

“음, 괜찮습니다, 단지 컨디션이 조금…” 하다가 괜히 울컥하기도 하지만. 괜찮았다.

난 혼자 모든걸 해내는 어른이니까.

아부지가 함께 가는 순간, 나는 다시 '4살'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기실에 나란히 앉아있는 그 구도 자체가... 어우. 싫다.

아빠의 눈빛이 나를 '소아환자'로 되돌려놓는 것 같다.

나는 다 큰 사람이다.

내 증상을 내가 말하고, 내가 걱정하고, 내가 내 결과를 듣는게 맞지. 무섭더라도, 떨리더라도, 나는 혼자 병원에 가고 내보호자는 나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어른인 나자신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

"거봐요. 내 알아서 잘해요!"를 고백하고 싶다.

그래서 늘 어디가 아파도 말하지 않았고, 몰래 조용히 다녀왔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보호를 거절하며 혼자 서 있는 연습을 했다.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정기검진때가 되면 병원홈페이지를 들락거린다. 예약창. 열었다 닫고, 날짜를 바라보며.

‘음, 다다음달로 미룰까? 아니 내년은 어떨까?’

창을 껐다 켠다.

“나 건강한데 뭐하러 가지?”

스스로를 설득하다가도, 문득 떠오른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이상이 생겼다면? 그때도 이렇게 무심히 넘길 수 있을까?'

그렇게 용기를 내 간 병원에서는 늘 똑같은 말을 듣는다.

“이상 없습니다. 건강하시네요.” 고맙고 다행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마음 한켠이 조금 울린다.

어쩌면 병원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앞에서 매번 마주하게 되는 무력한 내가 두려웠던 건지도.

어른처럼 살기 위해 오래 혼자였고, 혼자 모든 걸 스스로 증명해왔다.

사람의 고독은 결과적으로 누구도 채워줄 수 없기에,

스스로 서는 수밖에 없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의 무게를 아무렇지 않은 척 견뎌왔지만… 뭐, 그게 인생이잖아. 그렇지 않니?


그런데도 만약, 정말로 두려운 일이 닥친다면? 그때는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올 것이다.

아주 작게, 아무도 못 듣게 속삭이듯.

"아빠… 저 진짜 아픈가 봐요….."


그러면 그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이 한마디의 위로가 무너질 것 같던 나를 다시 온전하게 만든다.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병원 문앞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대신, 그 자리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나를 강하게 만든 건, 어쩌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

강해져야 한다는 자기 최면,

스스로 세운 독립의 갑옷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실제로 지탱해온 건—결국엔 그 조용한 한 문장이었다.

“괜찮아. 네 곁엔 누군가 있잖아. 넌 혼자가 아니야.”

그 말 한마디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혼자서도 스스로 모든걸 잘 해내는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 성숙이라고 여겼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이 강인함이라 믿었다.

그런데,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 아니었나 싶다.
"기대도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 말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나를 열어 보일 수 있는 것.
그건 삶에서 가장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독립성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다정한 존재는 그 단단함이 부서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


그치만... .. 자꾸 나를 4살로 리셋시키는 건, 좀 억울하다.
10월이 오기 전까지, 또 병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한참을 망설이겠지.
진심, 예약은 미루고 싶고 병원엔 너무...

정말 너무 가기 싫다.

병원 앞에만 서면 유아기로 퇴행하는 것 같다.

또 혼자서 잘 해냄을, 아주 우아하게 증명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속으로는 조용히, '아빠, 이번엔 같이 가주실래요?'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자존심 단단히 붙잡고 독립 선언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는 있다.

'강함'이 꼭 —외로움일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욕심을 내려놓았더니, 잔고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