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김초엽
공상과학 소설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최근 천선란, 김초엽 등 뛰어난 작가들이 등장하며 SF 장리가 활기를 얻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초엽 작가는 과학적 상상력과 따뜻한 감성을 조화롭게 풀어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를 처음 만난 작품은 단편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었다. 이 때 읽은 김초엽 작가의 세계를 다시 보고 싶어, 이번에는 그녀의 장편소설 중 하나인 <지구 끝의 온실>을 펼쳤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는 인류에게 유해한 ‘더스트'로 멸망 직전까지 갔었다. 그리고 점차 회복되어 일상을 되찾았고, 더스트 시대는 과거로 남게 된다.
주인공은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식물생태학자인 아영. 식물들의 생명력과 그들이 갖고 있는 기묘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학자이지만 남몰래 괴담을 좋아하는 특이한 친구다. 어느 날 아영은 더스트로 폐허가 된 도시 해월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가 수상할정도로 빠르게 증식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듣는다. 알 수 없는 푸른 빛까지 목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노인의 정원에서 본 신기한 광경을 떠올린다. 잡초가 무성한 한밤의 정원 위에 푸른 빛이 떠있던 모습을.
이 모습을 떠올린 아영은 그녀가 괴담을 보는 사이트인 스트레인저 테일즈를 통해 모스바나를 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그러다 더스트 시대에 모스바나를 약초로 활용하면서 ‘랑가노의 마녀들'이라고 불려온 아마라, 나오미 자매에게 연결된다.
더스트 시대와 모스바나가 어떤 관계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마라, 나오미 자매의 증언과 아영의 추적으로 점점 풀려간다.
<지구 끝의 온실>은 지구 멸망의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이후의 세대를 연결하는 이야기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작품은 멸망 직전의 지구 ‘더스트 시대’를 겪은 나오미 자매와 다음 세대인 주인공 아영의 시선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된다. 특히 아영이 더스트 시대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고통을 겪은 더스트 시대의 생존자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인류가 다시 희망을 찾는다는 메시지였다. 나오미 자매는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과 상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다음 세대인 아영과 연결된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과거의 상처와 기억이 미래를 살아갈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말미에 “인간은 지구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일 뿐”이라는 문구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우리의 위치와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메세지다.
<지구 끝의 온실>은 인간의 삶과 기억, 그리고 인간 뿐만이 아니라 동식물까지 다른 종과의 공존이라는 과학적인 주제를 섬세하게 엮어,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였다.
사회의 집단 기억 속에서 더스트 시대의 고통이 흐릿해질수록, 현재부터 그 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학문 역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과학이란 더스트라는 재난 속에서 인류를 구한 위대한 기적이었고, 재건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도구였다. 그 외의 연구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 인문학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조금 슬픈 문구. 여전히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학문이 좋은 1인.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드리 망하는 꼴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중략)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살아가며 다른 좋은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 전부 망해버렸다면 아마도 못봤을 것들이지. (중략) 저도 그렇게 생각할래요. 다 끝나는 건 좋지 않다고요.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말도 안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다.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