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
십여 년 전부터 한국 공연계에서 '핫'한 화두는 성 정체성이였다. '헤드윅', '거미여인의 키스', '라카지', '프리실라', '쓰릴미', '프라이드', '킹키부츠' 등등, 남들과는 약간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연극, 뮤지컬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랑받는 소재는 '드랙퀸(Drag Queen)'이다. 자신의 성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아티스트. 드랙퀸만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성소수자로서 살면서 겪는 내적, 외적인 갈등이 주는 드라마까지 있으니 공연 소재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벌써 햇수로 10년이 넘게 공연된 '헤드윅'부터 작년 즈음 공연되었던 연극 '조지 맥브라이드의 전설'까지. '이젠 무슨 내용으로 드랙퀸 뮤지컬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이 많다. 완벽한 성전환에 실패한 괴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 '헤드윅', 공연을 위해 여행을 떠난 드랙퀸들의 로드무비 '프리실라', 드랙퀸들을 위한 신발을 만들어 망해가는 신발 공장을 살리는 이야기 '킹키부츠'.. 다양하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데도, 드랙퀸을 다루는 작품들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에브리바디스 토킹 어바웃 제이미(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이하 '제이미'). 드랙퀸을 소재로 만들어진 또다른 뮤지컬이다. 2014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된 작품. 비교적 최신작이다. <제이미>는 제이미 캠벨이라는 드랙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국 북부의 철강 도시 카운티 던햄에 사는, 드랙퀸이 되길 꿈꾸는 16세 소년, 제이미 캠벨의 이야기는 BBC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되었고, 그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화도 진행되고 있다. 제이미 캠벨의 이야기는 영국 셰필드에 사는 드랙퀸을 꿈꾸는 고등학생, '제이미 뉴'의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여기서부터 <제이미>는 기존의 많은 드랙퀸 뮤지컬들과 차별점이 생긴다. 이미 인생의 쓴 맛이란 쓴 맛은 모두 겪은 드랙퀸이 아니라 장래희망이 드랙퀸인 어린 학생이라는 것. 디너쇼같은 분위기였던 대부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모던하고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차있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의 화려한 무대, 깃털달린 울긋불긋한 의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오색찬란한 의상 대신 남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드랙퀸들은 오히려 곁다리다. 드랙퀸의 화려함, 그리고 복잡한 이면에 대한 이야기보다 드랙퀸이 되고자 하는 고등학생 제이미가 겪게되는 해프닝과 성장담을 담고 있다.
<제이미>는 성 소수자이며 크로스 드레서인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남들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겪는 갈등은 깊게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이 드랙퀸을 꿈꾸는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성장통, 고민에 더 중점을 두고 보여준다. 제이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남다름을 알아왔고, 이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준 엄마 마가렛 덕분에 이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당연하게 “난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냐. 그냥 여자 옷을 입는 게 좋은거야. 난 남자애인게 마음에 든다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몇 어른, 급우 한 두 명을 제외하면 그의 ‘남다름’때문에 고통을 주는 사람도 없다. 제이미가 겪는 고민은 “어렸을 때부터 드랙퀸만 꿈꿔왔는데, 정말 이걸 해도 되는걸까?” 이다.
Just one little thing / Didn't mean that much to him / But it keeps building and building and building / This wall in my head
(그에게 큰 의미가 되지도 않는 작은 하나가 내 머리 속에 벽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어요 - ‘Wall in my head’ 중에서)
이런 생각과 망설임, 그리고 주변의 말 한 마디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꿈과 목표 앞에서 겪는 한 인간의 성장통은 성 정체성을 떠나서 그냥 살다보면 겪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든, 쉽게 혹은 어렵게 넘어서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년의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 사랑은 덤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오더라도 아들, 제이미를 선택하겠다는, 누가 뭐래도 그는 내 아들이라는 어머니 마가렛의 절절한 노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로 가득찬 이야기에서 인상깊었던 인물은 제이미의 가장 친한 친구, ‘프리티(Priti)’다. 이 극에서 가장 성숙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부모님이 파키스탄에서 이민을 와, 영국에서 자란 무슬림 학생이다. 짓궂은, 덜 자란 남학생들에게 ‘파키(Paki)’라고 비웃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꿋꿋이, 조용하게 자신이 갈 길을 가는 인물. 이 극의 배경인 셰필드는 철강 도시인만큼 거친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들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이고, 그만큼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동네다.
이런 공간에서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의 딸은 소수자이며 약자일 수밖에 없지만 프리티는 ‘나는 무슬림 전통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히잡을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되지만 이 전통을 지키는 건 내 선택이고 난 당당하다.’라고 말한다. 프리티의 자신에 대한 확신과 당당함은 제이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제이미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공감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Don’t wait for tomorrow / Be happy today /
And all of those stupid people / Who cares what they say /
I know it’s not easy, but I know your strong /
And I know that somewhere they’re playing your song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행복해봐 / 저 멍청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신경쓰지 말고 / 쉽지 않은거 알아. 그래도 넌 강하잖아 / 그리고 어디선가 그들이 너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을거야 - ‘Spotlight’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