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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Jan 04. 2023

스물다섯을 보내며

나만 스물다섯으로 살 기회가 한 번뿐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

스물다섯.


곧 만 나이로 센다고 하긴 하지만 6월 전까지는 익숙한 한국 나이를 따라본다면 2023년이 된 올해 나는 스물여섯이다. 스물여섯이 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시점에 스물다섯을 한 번 돌이켜 보려 한다.


생각해보면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건 참 이상하다. 새해가 되는 시점에 다들 주변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건네고, 연말에는 한 해를 떠나보내는 연말 모임, 송년회 등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부자연스럽다. 어제까지 스물다섯이었던 내가 오늘은 스물여섯이라니. 12월이 끝나고 1월이 되었다고 새로운 목표를 갖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에 시달리다니. 꽤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물론 그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한다. 한 호흡을 매듭짓고 다시금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점이며 특히나 사계절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연말’과 ‘새해’가 주는 그 느낌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꽤나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도 하다.


대학교 졸업

스물다섯, 나는 무엇을 했는가? 우선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드디어 ‘대졸’이라는 딱지를 달고 사회에 나아갔다. 스무 살부터 대학교를 다녔으니 5년 꼬박 다닌 것이다. 요즘은 더 짧게 다녀 3년 안에 조기 졸업하는 친구들도 있고 훨씬 길게 10년까지 다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5년이 길다 짧다 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양한 경험을 5년, 즉 10학기 동안 꽉꽉 채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하는 게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때 이런 공부를 더 해볼걸, 이런 경험을 더 해볼걸. 이런 도전 한 번 해볼걸 하는 등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하지만 뭘 하든 아쉬움은 남았을 거고 이제 주변 환경을 바꿔볼 좋은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에 굳은 의지로 졸업 사정을 받고 졸업생의 길을 택한 나였다.


졸업하며 졸업생 답사를 했다. 글로벌 지도자상 수상자여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긴 하지만, 한 번쯤 내가 꽤 애정했던 집단에서의 5년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생각보다 더 내 학교와 내 대학 생활을 좋아했더라.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훨씬 동질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교 때는 과가 같아도 어떤 동아리를 하는지, 아르바이트를 얼마나 하는지, 수업을 얼마나 듣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는지, 연애를 하는지, 여행을 하는지, 몇 년 다니는지 등 다양한 변수로 이질적인 대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다른 대학생활과 경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답사를 하기에는 내가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무 살 어리고 철없던 나이에 고등학교보다는 조금 더 거칠고 사회에 가까운 대학교에 던져지며 많은 친구, 선후배님들이 겪고 느낀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답사 원고를 써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훨씬 더 거칠고 무서운 사회에 나가기 전, 그래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채 단련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걸 스무 살 땐 몰랐지만 스물다섯 쯤엔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사회인으로 보낸 10개월

졸업을 한 스물 다섯 병아리 사회인에게는 무엇이 놓여있었나. 예상은 했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이라고 별로 봐주는 게 없는 사회생활을 곧바로 시작했다. 나는 경영 컨설턴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일하는 방법을 짧게 교육을 통해 알려주긴 했지만 하나하나 배우는 것보다는 맨땅에 헤딩하며 배우고 남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훨씬 더 많은 곳이 회사였다. 눈치껏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처음 해보는 것들은 할 때는 손이 덜덜 떨리고 내가 이런 결정을 해도 되는지 이런 메일을 보내도 되는지도 불안해했다. 사소한 것부터 처음에는 크게 느껴졌던 사항들까지 죄다 떨렸다. 그럼에도 한 번, 두 번 해보았다. 사실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내가 그 상황에서 그걸 해내길 기대하고 있으니까. 기대라기보다도 ’당연히 이런 것쯤은 하겠지 ‘ 하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다들 이 과정을 거쳤으면서 왜 더 친절히 나를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들도 비슷하게 내던져져 여기저기 치이며 배웠고 해 나갔던 것일 테니까. 어쩌다 운 좋게 본인 일도 완벽히 해내면서 주니어들을 친절히 가이드해줄 수 있는 상사나 멘토를 만났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정말 행운이지만, 사실 모두가 엄청난 일의 양에 치이는 회사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일하고 밤에 울고 다시 마음 다잡고 일하고 하다 보니 일 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연말이 되어갈 때쯤에는 작은 규모의 주간 발표 등의 경우 클라이언트 앞에서 원고 없이 할 수 있었고 웬만한 소규모 회의나 소통은 큰 부담 없이 이끌 수 있게 되었다. 전화 한 통 걸거나 메일 하나 보낼 때도 눈 질끈 감았던 때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이제 눈 감고도 메일 하나를 뚝딱 작성해서 보낸다. 어떤 전화를 언제 걸고 받을지 어느 정도 유동적으로 스케줄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하는 방법만 배웠냐 하면 ‘일하는 방법‘이라는 말에는 담기지 않는 다양한 생각하는 법, 문제를 분석하는 법, 산업을 이해하는 법, 인터뷰 대상으로부터 꼭 알아내고 싶은 내용을 효율적으로 받아내는 법 등도 배웠다. 아주 다양하지는 않아도 세네 개 이상의 산업들을 큰 틀에서 이해하고 세부적인 내용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인지하고 있지 않았던 사업 모델이나 회사 간 구도 등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를 활용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빠르게 보완해낼 수 있게 되었다. 갓 입사했을 때는 1인 몫을 해내지 못했다고 느꼈지만 한 해가 끝날 무렵 나는 1인 몫은 해내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일 년이 갔다. 다섯 개의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연말이었다. 입사한 지는 10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시간이 참 빠르더라. 동시에 컨설턴트들은 한 해를 기억하고 추억할 때 그 해에 무슨 프로젝트를 어디에서 했는지로 기억하려나, 싶었다. 나는 올해 서울에서, 판교에서, 독일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일했다. 각 지역에서 어떤 회사와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를 떠올리며 2022년을 추억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중에 시간이 많으면 걱정과 고민이 많아지고 이를 몸이 바쁜 것으로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 있다. 몸이 바쁘고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녹초가 되어버리면 걱정이 없어진 것만 같으니까. 마취제를 넣은 것처럼 말이다. 진짜 코어의 문제는 해결되는 게 한 개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올해는 일하면서 접해야 했던 각종 고민들 말고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일이 하나도 없다. 좋으면서 안 좋다. 직업은 물론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요인 중 하나지만 직업=나인 것은 절대 아닌데 말이다. 일이 많고 힘들어서, 아직 그런 생활에 몸이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따라가는 데만도 힘들었기 때문에 직업 이외의 것들에 대해 진득하게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든 한 해였다.


분명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한 해임에도 정신적으로 어떤 부분은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 채 스물넷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든 해.


그런 한 해도 있어야지, 매년 고민만 하다 보면 머리 아파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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