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주말 아침. 이제 막 내린 커피와 함께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게 일상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였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내내.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며 글을 쓰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쓰는 행위가 자가 치료의 일종이라지만 브런치에 공개하는 글을 이토록 마음이 낮은 곳에 있을 때 써도 괜찮나 싶었고. 그런 에너지로 쓰는 글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했을 테지만. 컴컴한 동굴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의 올봄은 유난히 오랫동안 어둡고 추웠습니다. 화사한 봄 원피스를 꺼내 입어야 하는 시기에 여전히 칙칙한 겨울 옷들을 입고 초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름 가까이 매일 같이 장맛비가 쏟아지더니, 어느 순간 눈앞에 와있었습니다. 기다리던 봄이요.
일 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봉쇄가 마침내 끝나고 공원과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봉쇄와 통금으로 저녁 일곱 시면 온 세상이 정적에 잠겼던 깜깜한 겨울이 무색할 만큼 여기저기서 새의 노랫소리와 함께 사람 소리, 삶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도 기다렸다는 듯 봄으로 옷을 갈아입었고요. 처음에는 그런 세상이 놀랍고 감개무량하게 느껴지다가 며칠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을 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고. 싹이 자라서 꽃이 피는 동안. 제 삶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변화들 가운데 어떤 변화는 예기치 못한 변화이고 또 어떤 변화는 의도한 변화일 것입니다. 이 변화들이 어디로 데려다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여태까지 살아온 것처럼 더 이상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었습니다. 흩날리는 씨앗처럼 바람에 여기저기 날려 다녔습니다. 한 곳에 뿌리내린다는 게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결코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게가 없다면 깊이도 없다는 것도요. 삼십 대 중반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겠지만요.
오랫동안 여행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볼 것도 갈 곳도 많으니까요. 늘 어딘가로 가는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제가 있는 곳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면 지구 어디가 되었건. 설령 그곳이 사막 한복판이라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는 남편과 함께 하는 그 행운 만으로도. 지금 있는 이곳이 천국일 테니까요.
다른 곳을 꿈꾸지 않게 되자 주변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이 이토록 선명한 세계가 일상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을 왜 이전에는 알지 못했을까요. 안갯속을 거닐다 빛으로 나온 것처럼. 지난 일 년의 시간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깜깜한 어둠을 통과한 후에만 보이는 빛처럼. 겨우내 웅크려있던 동굴에서 나와 화창한 오월의 파리의 봄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싱그러운 초여름이 되어서야 글을 올리려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네요. 한동안은 마음이 힘들어서 쓰지 못했고. 그 후에는 제가 쓰는 글이 쳇바퀴처럼 같은 자리에서 도는 것 같아서 쓰지 못했었습니다. 한참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볼 때라 '쓴다고 뭐가 달라져'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쓰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왜
쓰라고 등 떠민 사람도 없었는데. 혼자 우습지도 않은 그런 생각을 하며.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어,라고 되새김질해보기도 했습니다. 쓰지 않고도 잘만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넘치는데. 내가 뭐 특별한 게 있다고. 대단한 이야기가 있다고. 마치 이전에는 이유가 있어서 쓴 것 마냥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쓰지 않았습니다.
쓰지 않으니 생각도 자연히 멈췄습니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삶을 이끈다고 믿어왔는데. 정작 힘들 때 필요한 건 아무 생각도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새벽까지 드라마 정주행 하고. 숲에 가서 낮잠 한숨 푹 자고.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고. 한참을 그러고 나니 봄이 찾아왔고. 거짓말처럼 다시 쓰고 싶어 졌습니다. 제 글에도 봄이 다시 찾아왔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글로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