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마음을 치유받다

by 주형원

마음이 추락하고 추락해서 발끝까지 떨어지는 날들이 최근 지속되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마음은 땅으로 무섭게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고 매사 귀찮았다. 진공상태에 갇힌 날들이 지속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싫어졌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이 때다 싶었는지 집요하게 꽈리를 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다. 마음 병원을 찾아가야 마땅했지만. 그날 간 병원은 발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곳이었다. 이마저 당일 아침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던 진료 예약을 직전에 펑크 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소심한 양심에 귀찮음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몇 달 전부터 발가락이 휘기 시작하면서 그 주위로 상처가 나고 발톱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제발 병원 좀 가 봐. 아니면 나 쉬는 날 같이 가보자"


남편이 몇 달 전부터 수십 번, 수백 번 말했어도 '응, 그럴 거야'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귓전으로 흘렸다. 사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알아서 낫겠지,라고 생각했고 대부분은 알아서 낫었다. 그래서 발도 몇 달 가까이 무심하게 방치했다. 알아서 나을 기미는커녕 잘못하면 나중에 수술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얼마 전부터 들기 전까지는.


찾아보니 발을 전문으로 치료해 주는 곳이 있다고 했다. 워낙 의료에 무지하기도 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예약했다. 하지만 막상 가는 길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 발을, 그것도 상처 나고 부어오르고 휘기 시작한 이 흉측한 발을 모르는 이에게 꺼내 보여준다는 사실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어쩌면 이 부끄러움이 병원에 가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들어서자 선생님처럼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직접 맞아주었다. 잠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선생님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일인 병원인 거 같았다. 조금 있다가 선생님이 찾으러 왔고 나는 간단하게 이곳에 온 용건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옆에 있는 푹신한 진료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로 가서 앉으라고 했다. "자 양발을 벗고 여기에 발을 올리세요" 파란 장갑을 끼면서 그는 말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전혀 모르는 타인 앞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을 내민다는 게 이토록 민망한 일이라는 걸. 살면서 페디큐어도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처음 실감했다. 이건 치과에 가서 '아' 하고 입을 열어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최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고 양말을 벗어 가지런히 놓은 후 선생님이 깔아놓은 하얀 티슈 위에 쭈뼛쭈뼛 두 발을 올렸다. 그때 갑자기 드드득 소리가 들렸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의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새 내 두 발은 정면에 앉은 선생님의 코 앞에 와있었다. 그제야 의자는 멈추었다. 나는 내 발이 누군가의 눈높이에 올려져 있는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면서 팔을 어떻게 해야 하나. 손을 어디다 둬야 하나. 이 지극히 무례한 자세에서 조금이라도 덜 무례하게 보일 수 있도록. 진료와는 전혀 무관한 이런 고민들을 혼자 속으로 심각하게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두 발을 전체적으로 소독한 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검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일단 보기에는 발가락 외상 같아요"

"발가락 외상이요?"

"발가락이 웅크려지면서 지금처럼 서로 밀면서 휘기 시작하고 발톱에도 멍이 들죠"


아니 몇 달의 봉쇄와 통금 때문에 일상에서 걷을 일이 확연히 줄었는데 발가락이 웅크려지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의아하다며 묻자 선생님은 설명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발가락이 평평하게 펴져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발가락은 항상 웅크리고 펴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래도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요"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몸은 항상 변하고 있어요. 전에 없던 증상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증상이 없어지기도 하죠. 항상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거예요. 다행이죠. 만약 몸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어요."


이 부정적인 상황을 저렇게 긍정적인 결론으로 유추해 가는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양말 신으시라고. 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 보자고. 병원의 단골 멘트를 기다리며 한시라도 빨리 이 불편한 포지션에서 해방되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발톱깎이를 꺼내 들었다. 발톱은 얼마 전에 깎아서 깎고 말 것도 없는데, 는 나의 착각이었다. 선생님은 매의 눈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려는 발톱들을 찾아 가차 없이 뚝뚝 잘라냈다.


"발톱에 든 멍으로 균이 침투하는 걸 방지하는 거예요"


당장 끝나기는 틀렸구나 싶어 몸에 잔뜩 들어갔던 긴장을 사알짝 빼보았다. 너무 뺐는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있기에, 화들짝 놀라 팔짱을 뺐다. 깨끗이 발톱을 잘라낸 선생님은 이번에는 굳은살들을 쓱쓱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말로만 들어왔던 발 관리와 흡사해 '병원에서도 이런 걸 하는구나' 신기하면서도 슬슬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나조차도 관심을 잘 주지 않는. 심지어 종종 하찮게 여기는 내 발이. 누군가에게 저렇게 정성껏 다뤄지고 있는 것에 약간의 황홀감까지 느끼며. 초반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차츰 사라져 갔다. 선생님의 손에 수십 번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사이, 발은 뽀송뽀송한 아기 발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발에만 몰두하는 선생님을 보며, 매일 수많은 하지만 각기 다른 발들과 마주할 그의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진료실을 돌아보았다. 그의 삶에 대한 그 어떤 단서도 찾기 힘든 건조하고 좁은 공간이었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 Fly Emirates라고 써진 축구 선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티셔츠와 그 위에 갈겨진 싸인이었다. 축구에 무지한 나로서는 누구의 사인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파리에 경기 차 온 세계적인 축구 선수와 그의 발을 지금처럼 정성스레 대하고 있을 선생님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무심하게 몇 달 동안 방치한 발. 그 발은 축구 선수에게는 그의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발가락 옆에 깊게 파인 상처를 발견하고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내 발에서 눈으로 옮기며 말했다.


"아이구나 이런.. 정말 많이 아팠겠어요... 발가락이 휘면서 옆 발톱이 낸 상처 같은데"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마스크 위의 눈빛에서는 안쓰러움이 뚝뚝 떨어져 나오고 있어서, 순간 나도 모르게 깊숙이 감동하고 말았다. 이 상처 때문에 신발을 신을 때마다 너무 아프면서도, 그냥 놔두면 낫겠지 하며 정작 돌보지 않았는데. 전혀 모르는 타인이 저토록 안타까운 얼굴로 상처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에 살짝 울컥했다. 많이 아팠겠었어요, 는 발에 대해 한 말인데. 그 순간은 많이 아팠겠어요, 마음이, 로 들렸다.


그게 뭐라고. 잔뜩 웅켜져있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절로 쫙 펴지는 걸 느꼈다. 선생님은 깨끗해진 발에 수분 크림까지 여러 번 덧발라 주었다. 이제 정말 끝이겠지. '자 다 됐어요. 양말 신으세요'를 기다리는데. 아니 선생님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내 양말을 집어 드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얼른 양말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 선생님은 갓난아이에게 하듯 양말을 살짝 감아서 안으로 접어 내 발을 넣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쓱~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오른쪽 발에 양말을 신겼다. 당황할 새도 없었다. 누군가 양말을 신겨준 게 얼마 만의 일인가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선생님은 왼쪽 발에도 노련하게 양말을 신기고는 그제야 '다 됐어요'라고 했다. 드드득하며 의자가 원래의 자리로 내려갔다.


잠시 갓난아이로 돌아갔다가 다시 성인으로 복귀해야 하는 나는 순간 얼떨떨했다. 더 있고 싶다고. 아이처럼 떼를 부리고 싶었지만, 어른으로 돌아온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여태껏 몇 달 가까이 진료를 두려워하며 미루던 나 자신에 대해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 증상을 치료한 것도 아닌데, 발이 전처럼 무겁고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푹신푹신해진 마음 위로 가볍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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