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연애법

by 주형원

연애를 메인 키워드로 <여행은 연애>라는 제목의 책을 냈을 만큼. 한때는 자칭 연애 박사이자, 돌아보면 중증 연애 중독자였던 나에게도 '코로나'와 '연애'라는 두 단어는 성립 불가하다.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만나고 싶고, 만나야 할 주변인들도 못 만나고 사는 마당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연애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게다가 이곳은 식당과 바와 카페가 정부 방침에 따라 문을 닫은 지 벌써 일 년이고, 저녁 6시 통금이라는 연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제약이 있다.


모든 대면 만남에 도사리는 바이러스의 위험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이토록 많은데, 그깟 연애가 뭐라고 이걸 다 감수한다는 말인가. 기존의 사랑들도 휘청거리며 여기저기서 결별 소식이 들려오는 시국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는 건 거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급의 용기 혹은 무모함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솔로들은 독수공방을 하고 있겠구나, 는 기혼자인 나의 배부른 착각이었다.


꽤 오랫동안 밥 먹는 것만큼 아니 밥보다 더 중요했었던. 하지만 지금은 '그깟'이라고 치부하는 연애. 코로나가 일 년을 넘겨가고 있는 지금 한참 피 끊는 이십 대와 삼십 대 솔로들에게는, 그 연애가 목숨을 걸고도 덤벼들 만큼 절실하고 절박한 무엇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전쟁통에도 눈 맞아서 사랑을 했다고 했던가. 하지만 전쟁통에는 어딘가에서 스치기라도 했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만난다는 말인가.




현재 다니는 프랑스 회사에는 20대 동료들이 많다. 2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그게 아니면 아예 50대가 넘어가는 식이다. 30대 중반으로 나이도 지위도 이들 사이에 애매모호하게 걸쳐져 있는 나는 50대 상사와도 20대 동료와도 친구처럼 지낸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는 문화적 특성도 있지만 위계질서에 알레르기가 있는 업계의 특성상 자신의 나이나 지위를 앞세우는 걸 기피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20대 동료들과도 일 외에도 자주 어울리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거의 자택 근무를 하고 출근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하기에, 회사에서 어쩌다 서로 마주치는 날이면 이야깃거리가 끊기지 않는다. 이들과의 문화나 세대 차이를 평소에는 특별히 체감하지 못하다가도, 딱 한 주제에서만은 이들의 대화에 내가 종종 겉도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연애'이다. 한때 연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조금은 서러울 정도이다.


언택트 시대에 그들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앱으로 시작된다. 수많은 프로필 중에서 고르고 골라 대화로 먼저 상대를 탐색한다. 기존에 입력한 원하는 조건에 맞게 앱이 추천하는 상대들도 자동으로 뜨는데, 여기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종종 발생하고는 한다. '보니까 내 동생인 거야'는 진부한 이야기에 속한다. 프로필에 희망 관계를 표시할 수 있다고 한다. 가볍게 이야기 나누기, 원 나잇, 진지한 만남, 결혼까지 고려 등등이다.


상대의 깊이를 알아가기도 전에 관계의 깊이를 미리 결정할 수 있다니. 앱을 통한 만남이나 연애를 경험해보지 못한, 오프라인 연애 세대인 나에게는 생경했다. 이들은 관계의 바운더리를 처음부터 두르고 채팅 및 영상을 통해 상대를 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 해도 연애나 러브를 위해서는 현실 만남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연락을 하며 호감이 상승하면 할수록, 젊고 뜨거운 그들의 마음과 몸은 달아오르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딜레마가 시작된다.


어디서 만날 것인가


예전에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었다. 괜찮다 싶으면 카페나 바에서 만나 커피나 와인 한 잔을 두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만남 혹은 단계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식당과 바 그리고 카페 등의 중립적인 영토가 문을 닫고, 저녁 6시 이전에는 무조건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이 강제 집콕 시대에 과연 어디서 만난다는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서운 추위로 밖에 잠깐 서있는 것도 고욕이었다.




이들이 따뜻한 실내에서 통금에 구애받지 않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집에서 만남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락만 하다 실제로는 오늘 처음 만나는 그 혹은 그녀의 집에 가는 것도 위험할 수 있었고. 그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하는 것 역시 고민거리이다. 잘못해서 똘아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여기서 언택트 러브 그룹은 두 종류로 나뉜다. 신중파와 무모파. 신중파는 자신의 욕망의 깊이와 현재 외로움의 부피 그리고 집에서 만났을 때의 향후 리스크를 철저히 분석하여 따진다. 그리하여 현실 만남을 단념한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 신중파에 속한 동료 한 명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위험보다 추위를 택했건만. 덜덜덜 떨면서 이뤄진 이들의 만남은 추위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뱅쇼를 마신 이야기를 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뱅쇼를 마시려고 마스크를 잠시 벗는 순간이었어. 그때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했으니까. 계속 서로의 얼굴을 짐작만 하다가 벗으면 실망하면 어떡하지 등등 별별 생각이 들더라고. 마스크를 벗는데 왠지 발가벗는 거 같았어." 발가벗은 서로의 얼굴에 실망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뱅쇼. 데이트.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요소가 있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로맨틱은 쏙 빠지고 단지 코믹만 해서 우리 모두는 배꼽 잡고 웃었다. 웃으면서도 어딘가 짠했다. 그녀는 퀘벡 출신인데 원래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했다가 코로나로 전부 취소되는 바람에 혼자 쓸쓸히 타국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추운 마음을 데워보려다 동상에 걸릴뻔한 이야기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 같은 짠함이 있었다.


무모파는 처음 보는 그 아니면 그녀의 집에 가거나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누구의 집이 되었든 통금으로 다음 날 아침까지는 집 밖을 나오지 못하기에 하룻밤을 보낸다는 전제가 은연중 깔린 야릇한 만남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얘기에 혼자 속으로 깜짝깜짝 놀라는 나 자신을 보며. 이걸 문화 차이라고 해야 하나, 세대 차이라고 해야 하나. 혹여나 연애 꼰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복잡한 마음이 왔다 간다.


물론 이 모든 만남이 연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 동료는 '집에 가려니 가지 말라고 하는 거야. 혼자 있기 싫다고. 내일 또 보자는 거야' 라며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그만하려고 앱 다 지웠어. 근데 또 모르지. 너무 외로우면 다시 시작할지도” 라며 외로움에는 장사 없다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앱 다 지웠었는데. 며칠 못 버티고 다시 깔았어”. 이들보다 럭키한 한 동료는 지난해 1차 봉쇄 때 앱으로 만나 두 달 가까이 연락만 하다가, 봉쇄가 끝난 다음날 실제로 만나서 일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연애를 잘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사랑이 고픈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데이트 앱과 집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이 시대의 극단적인 연애법에 대해, 어느새 올드해진 나는 놀란다. 길이나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흠칫 놀라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저토록 필사적으로 앱에 매달리는. 눈물 나게 외로운 코로나 시대의 연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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