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이었다. 늘 붙들고 싶은 주말의 끝자락. 넷플릭스에서 음식 다큐를 찾아 남편을 불렀다. '어머! 삼겹살 다큐가 있네~ 볼래?' '삼겹살 다큐?' 삼겹살은 남편의 최애 음식 중 하나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떡국이지만. 안타깝게도 떡국은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술인 소주랑 궁합이 썩 맞지는 않다. 하지만 삼겹살은 다르다. 기름을 타다다닥 튀기며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는 언제나 환상 궁합이고. 남편은 감쪽같이 그 맛을 안다.
다큐가 시작하기 무섭게 입안에 군침이 쫙~ 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저 명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한 점만 주세요, 구걸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남편도 눈을 반짝거리며 감탄을 연발한다.
'저기 어디야? 한국 가면 꼭 가보자.’
남편이 신나 하는 걸 보자 덩달아 신이 난다. '그래. 꼭 가보자.'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신나게 계획을 세운다. 달성이 목적이 아닌 세우는 즐거움이 목적인 계획. 특별한 인생 계획이 없는 우리 부부는 이런 소소한 계획들로 즐거워하고. 또 감쪽같이 까먹는다.
사실 나는 음식 영상 보는 걸 기피한다. 그림의 떡을 보는 거 자체가 식탐이 강한 내게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기 때문이다. 언제 한국에 갈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상황에서 숯가마나 돌판 위에서 기름을 철철 흘리며 익어가는 삼겹살이라니. 삼겹살을 입에 한가득 넣고 세상을 다 가진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는 출연진들을 향해 괴성을 지른다.
그래도 침을 삼켜가며 남편의 감탄사에 장단을 맞춘다. 장단만 맞추는 게 아니다. 간간이 오버 리액션도 취한다. ‘다음에는 아예 삼겹살 투어를 해야겠네.' 그러면서 찬찬히 남편을 눈에 담는다. 여느 일요일 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들고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들키지 않게 몰래몰래 들여다본다.
오후 6시 통금이라 저녁에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주말 저녁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는 게 다라고 해도. 당장 갈 수 없는 한국을 침 흘리며 화면으로 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이 일상의 순간이 너무도 평안하고 행복해서. 마음 어딘가 기억의 창고가 있다면 저장해 놓고 싶다.
어느 일요일 겨울밤,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편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마음의 조리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이십 대 초반에 남편을 알아 삼십 대가 지나가고 있다. 소파에서 맥주를 들고 킥킥거리는. 여느 일요일의 ‘찰칵' '찰칵' 깊어가는 밤. 인생의 가장 푸릇푸릇하던 시절과도 어느덧 작별하고 있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한다. 아침에 '좋은 하루 보내고 사랑해’로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도 하루의 중간에 전화해서 ‘사랑해'로 통화를 마친다. 그런 남편의 사랑을 공기처럼 매 순간 들이마시며.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다가도. 이 행복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지금처럼 불현듯 들 때가 있는데.
일상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그보다 더 무심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곧 까먹는다. 사랑하는 매일매일이 사랑의 날이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사랑하는 날이며. 그 시간들은 금세 흘러가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잊기에 어쩌면 내일은 더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