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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24. 2022

꿈같은 여행이 끝나고

마음이 착잡했다. 떠날 때는 공항에 들어서기만 해도 설레었고 비행기에서도 그저 신났지만. 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돌덩이 같은 마음을 지고 걸어서인지 발걸음도 무거웠다. 보름이란 시간이 이처럼 쏜살같이 흘러갈 줄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일주일만 아니 단 며칠만 더 있다 갈 수 있다면. 휴가를 조금 더 낼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이 년 반 만에 돌아와 단 이주라니.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파리의 다른 교민들과 이야기해보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올 때 '아 이제 집에 간다'라는 마음이 든다고 하는데. 나는 도대체 얼마나 살아야 내가 사는 이곳이 집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몇 년만 더 지나면 한국에서 산 시간만큼의 기간을 파리에서 산 셈이 되건만. 여전히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라는 기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올 때, 집에 돌아왔다는 묘한 안도감에 평온해진다.


인천 공항에 내리면 마음이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워진다. 평소에는 특별히 긴장하고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도. 수축된 마음이 서서히 이완하는 걸 느끼며 그제야 자각한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긴장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법률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다.


‘원래 자기 뿌리를 가지고 있는 식물은 영하가 돼도 쉽게 죽지 않는데, 옮겨 심은 모종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옮겨 심은 모종이었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년 반 만에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빨랐고 여전히 바빴다. 모든 게 빨리빨리 처리되는 게 신기하면서도 금세 익숙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와도 매일 밤 긴 대화를 나눴고, 유채꽃 흐드러지는 제주로 함께 여행도 떠났다. 그리운 얼굴들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참 많이 웃고.


그보다 더 많이 행복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새 없던 마음에 숨구멍을 송송 뚫어 시원한 바람이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다시 서울로 떠난 후 제주에서 단 이틀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타지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마음껏 바다를 보고. 봄꽃의 향기와 맑은 바람 속에서, 수없이 다치고 웅크리고 있던 내면이 회복됨을 느꼈다.


"어제 보고 또 보는 것 같아". 이년 반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그렇게 말해 주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시간의 공백도 물리적 거리도 마음의 간격을 떨어트리지는 못했나 보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몇 안 되는 좋은 것 중 하나는 관계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서로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지만, 힘들었던 이야기보다는 즐거운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아니 사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이 시간이 너무도 꿈만 같았다. 첫 번째 봉쇄가 시작되고 집 밖을 나갈 수 없던 상황에서 그토록 꿈꿨던 모든 일들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언젠가 곧 만날 수 있겠죠'. 그 말을 되풀이하며 지난 몇 년을 보냈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고 감사했다. 다만 그때는 그토록 더디던 시간이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 공항에 도착해 아쉬운 걸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올 때는 날개를 단 것 같던 마음이 갈 때는 천근만근이었다. 누가 가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돌아가는 사람마냥 복잡한 심정으로 좌석에 착석했다. 바로 옆 자석에는 엄마와 아들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가이드북을 들쳐보고 있었다. 엄마가 아들에게 다짐처럼 하는 말이 들렸다. "여행이잖아.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다녀오자." 곧 엄마와 아들은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잠에 들었다.


단잠에 들었을 것이다. 내게는 꿈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여행을 떠나는 설렘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도 한국이 여행이라서 그토록 좋은 건 아닐까. 이들이 이토록 설레어하는 파리도 내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생계의 전장인 것처럼. 내게 한국은 지난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 떠나는 달콤한 휴가일지도 모른다. 물론 고국에 대한 진한 향수는 모든 이민자의 숙명이겠지만 말이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 보름 만에 돌아온 파리는 싱그러운 봄이었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슬픔의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모로코 출신의 유쾌한 기사 아저씨는 어디에 다녀오냐고 물었고, 코로나 이후에 처음 고국에 다녀왔다는 말에 '그럼 정말 좋았겠네요'라며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었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공통분모가 그와 나를 연결해 주어 집으로 오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집에 도착해서 한국에서 산 음식으로 가득 찬 큰 트렁크 두 개를 낑낑거리며 밀고 들어왔다. 남편이 일할 시간이어서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 테이블에 화사한 장미꽃 한 다발과 함께 남편이 남겨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 보고 싶었어. 사랑해'. 그걸 보자 침울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래 집에 돌아왔구나. 우리의 집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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