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랑스 남부의 한 섬으로 떠난 출장 마지막 밤.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호텔 침대에 누워 늘 그렇듯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글을 더 이상 주기적으로 올리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내 글을 찾아 주는 사람이 없나 브런치 앱을 열어보니 알림에 하늘색 동그라미가 떠 있었다. 한때 보기만 해도 심장이 급격히 두근거리던 이 동그라미는 글을 쓰는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뜸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꾸준히 증가하던 구독자 숫자도 제자리걸음을 한지 오래였다. 반갑고 궁금한 마음에 알림을 클릭하니 알림이 수십 개가 떠있었다. 하나씩 흩어보다가 곧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의 모든 알림이 단 한 분의 구독자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마흔 편도 넘는 글에 '좋아요'를 일일이 달아주신 것이었다. 그건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좋아요'를 눌러주신 글들은 그분이 이미 오래전에 읽고 댓글까지 남겨주신 경우가 허다했다.
처음에는 실수하신 거 아닌가 싶다가, 그 '좋아요'가 삼 년도 지난 글까지 이어지자 그제야 알았다. 이건 일종의 모스 부호처럼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잘 지내요’, ‘글이 안 올라와서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있어요', ‘새로운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모든 마음들이 수십 편의 글에 하트로 꾹꾹 찍혀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브런치 초장기부터 따뜻하고 열렬하게 응원해 주신 구독자분이었다.
이분의 댓글을 읽고 뭉클한 마음에 매번 눈시울을 붉혔고, 힘들 때는 어디서도 받기 힘든 귀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쓸 그릇이 못 되지만, 이분의 댓글로 참 많은 위로와 힘을 받았다. 그때마다 브런치에 글 쓰기를 참 잘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사람의 마음은 글 몇 자로도 지구 끝에서 끝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내가 쓴 글보다 이분과의 글을 통한 교류를 통해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2018년부터 2020년 말까지. 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매주 글 한 편씩은 올릴 수 있었던 동력의 팔 할이 이분의 꾸준한 응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고아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글을 올리지 않고 있음에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이런저런 핑계로 글을 꾸준히 쓰지 않은 미안함이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올릴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글감이 넘쳐났다. 글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개처럼 떠올랐고. 그때마다 휴대폰 메모지에 기록한 후, 주말 아침이 오면 그중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해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곤 했었다. 어떨 땐 선택이 어려워서, 이건 다음 주에 써야지 소중히 보관하고 기다리다가 또다시 주말이 오면 신나게 써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글을 쓰는 주말을 기다리는 동안, 글감에는 저절로 살과 피가 붙곤 했다. '이런 경험을 덧붙이면 어떨까'. '그때 했던 대화를 쓰는 거야'.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주제가 명확해지면서, 글을 쓰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 삶은 가슴 뛰는 무언가가 된다. 오전에 글을 쓰고 잠들기 직전에야 발행을 한다.
발행 버턴을 누르는 순간은 여전히 두렵다. 내 글을 좋아할까. 이런 걸 왜 글로 썼냐고 비난하지 않을까. 누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그래서 잠들기 직전에 글을 올린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누른 후, 눈을 감는다. 프랑스에 사는 내가 잠드는 시각은, 한국에 사는 독자들이 잠에서 깰 시간이다. 그들의 주말 아침이 내 글로 조금이라도 더 여유롭고 평온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반응이 많을 때도, 별로 없을 때도 있지만. 글 한편을 여러 마음과 나누면, 주말 하루를 글을 쓰며 보낸 보상으로는 이미 차고 넘친다. 어쩌면 바라지 않은 보상이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얼마 전 어느 강연에서,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보상을 바라고 이곳에 글을 썼다면, 그토록 신이 나서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즉각적인 보상이 오는 것. 이런 것들을 우선순위로 매김 하고, 나머지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자연스레 그 나머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깊은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독자님으로부터 무수한 '좋아요' 알림을 받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주말까지 고민했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제목은 비워둔 채 일단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쓰다 보니 벌써 글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다. 누군가 마음으로 보낸 신호 덕분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다 보니 어느새 행복하고 충만해진다. 이래서 글을 썼구나. 그런데 어쩌다 멈추게 되었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우리는 왜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눈송이 같은 하트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자 시작한 글이 나에게 먼저 행복과 기쁨을 주고야 말았다. 그런데 제목을 뭐라고 하지. 보통은 제목을 먼저 정하고 글을 썼는데, 이번엔 글을 쓰고 제목을 정해야 한다. 일단 쓰고 보는 글이니, 제목을 그렇게 지을까. 그것도 좋은데. 글감 없이도 글도 나오고 제목도 나왔으니,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기뻐하며. 이 글을 쓰게 한 구독자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