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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10. 2023

온탕과 냉탕 사이

"때밀이 장갑 가져오라고!!!"


세신사 할머니의 호통에 목욕탕이 쩌렁쩌렁 울렸다. 덕분에 나는 내 순서를 기다리며 왜 세신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국적 불문하고 종종 까칠할까에 대한 고찰을 잠시 해야 했다. 세신사 팀은 총 세명으로, 할머니 한 명과 내 나이 또래의 여성 두 명으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원피스를 유니폼처럼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 목욕탕을 가면 그곳에서 유일하게 세신사 아주머니들만 몸에 무언가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권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다 벗고 있는 곳에서 그녀들의 속옷차림이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여긴 달랐다.


우리 모두 이곳 의무 규정에 따라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들에게 몸을 맡길 때도 비키니 상의만 잠시 벗었다. 그녀들은 때밀이를 시작하면 커튼을 치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다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아랍어라 우리 중에는 아무도 그녀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그녀들의 농담의 주제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순진한 손님들이라는 것쯤은 그녀들이 주고받는 눈길로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곧 내 차례가 왔다. 방금 전 때밀이 장갑을 가져오라고 내게 고함친 할머니의 때밀이 침대에 올랐다.


모로코 할머니는 들어올 때 목욕탕 입구에서 준 때장갑으로 살살 몸을 밀기 시작했다. 손길은 아까 고함과는 다르게 부드러웠다. 이렇게 엎드려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파리인지 헷갈리며 한국에 온 듯 푸근해졌다. “됐어. 이제 앞으로.” 몸을 돌리자 할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모로코 어디서 오셨어요?" 그녀가 말하는 도시는 나는 잘 모르는 곳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요.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어요." "아맘이 있다고?" "네, 사우나도 있고 이렇게 때도 밀어요." 그녀는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리의 목욕탕. 나 자신에게 쏜 연말 보너스이다. 한참 유행이었던 지독한 독감으로 보름 가까이 고생하며 딱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아 사우나 가서 몸을 지지고 싶다". 짧지만 매섭고 혹독한 겨울이었고. 감기는 떨어질 듯 말 듯 지독하게 집요했다.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거나, 머리가 쨍할 정도로 뜨거운 사우나에 가서 땀을 소낙비처럼 흘리고 나면, 깨끗이 나을 거 같았다. 그때 떠오른 곳이 파리의 모로코식 목욕탕이었다. 한국처럼 목욕탕이 흔하지 않다 보니, 가격이 있어 한 번도 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연말에도 열심히 일하고, 지난해를 무사히 잘 버틴 나에게 이 정도 선물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큰 마음먹고 예약을 했다. 가격은 한국 목욕탕의 몇 배면서도 한국 목욕탕 시설과는 감히 견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60-90도 사이의 사우나와 뜨거운 대리석 방, 냉탕과 샤워시설. 여기에 때밀이 서비스와 목욕이 끝나면 차와 과자를 주는 것까지. 나름 풀코스였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여성 전용이라는 점이었다. 유럽에서는 혼성 사우나가 대부분이라 미리 확인을 꼭 해야 한다.  


회사 끝나고 저녁에 가니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샤워를 한 후 사우나에 들어가니, 열기가 훅 온몸을 덮쳤다. 불판 위의 삼겹살처럼 바싹 구워지는 듯했는데, 그 기분이 좋았다. 감기가 나아가고 있는 단계였지만, 이곳에서 나갈 때쯤이면 저 멀리 달아났을 거라 확신했다. 남편처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찜질방, 목욕탕 광팬인 남편은 한국에 올 때마다 목욕탕에서 하루를 풀로 보낸다. 도대체 뭘 하느라 그 시간을 보내나 궁금해서 물어보니,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서 오간다고 했다. 그러면 몸이 완벽하게 이완되며 모든 피로가 풀린다나.




이곳에는 비록 온탕은 없지만 사우나와 냉탕이 있었다. 사우나에서 나와 샤워를 한 후 냉탕에 들어가기를 반복하자, 일 년 동안 싸였던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지는 듯했다. 온몸이 노근노근해지며, 나 자신에게 마음속으로 칭찬했다. "올해도 참 잘 버텼다." 한 해 동안 냉탕과 온탕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갔다. 코로나로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갈 수 있어 행복했으나. 여태껏 살던 중 가장 많은 부고를 접한 해이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눈앞에서 단 몇 분 만에 죽음 직전까지 갔다 돌아온 충격적인 경험을 한 해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무것도 일 년 전에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덕분에 죽음이 다른 세상 얘기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삶 안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고. 행복과 불행도, 온탕과 냉탕처럼 골고루 몸을 담그다 보면 조금 더 이완된 상태로 맞이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새해가 시작하면 늘 목욕탕에 갔다. 몸을 불리고, 세신을 한 후, 뽀얀 얼굴과 나른한 몸으로 새해를 맞았다. 시간이 빨리 안 가는 것에 불평하며, 모든 게 영원한 줄 알았던 때였다. 새해는 괜히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이제는 영원한 건 없으며, 한 해가 지났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올해는 새해가 넘어가는 밤, 작은 촛불을 켜고 기도를 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나의 행복은 이 모든 이들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불행 역시 이들의 불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가며. 나 자신 혹은 주변 소수에게만 한정되었던 기도를 마음을 담아 멀리멀리 보냈다. 올해는 조금 더 대범하게 온탕과 냉탕 사이를 오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긴장하지 않고, 삶이 주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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