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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18. 2018

거꾸로 가는 길, 산티아고

마음으로 걸은 삼일 

추억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은 늘 설렘과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자칫 추억의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실망하지 않을까. 돌아갔다가 괜히 아름다운 추억이 퇴색하지는 않을까.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아 인생의 여러 결정을 앞둔 나는 다른 그 어느 곳보다 더 의미 있는 곳에서 생일을 보냈으면 했고, 고민 끝에 지난해 산티아고 포르투갈 까미노 길을 걸으며 들렸던 조그만 어촌 마을로 돌아갔다.  


갈리시아 지방에 위치한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 위의 조금만한 어촌 마을 ⓒ주형원  


생일은 마침 금요일이었고, 하루의 휴가만 내면 주말까지 삼 일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삼일 만에 다녀오기에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마을에서 생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설렘은 나로 하여금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내린 후 비행기를 한 번 경유한 후 결국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늘 걸어서 도착하는 목적지였던 곳이 여행의 출발지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세 번이나 걸어서 도착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지만,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서 온 적은 없는 산티아고 공항에 파리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우리는 친근함과 동시에 낮섦을 느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작은 어촌 마을은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에 있었다. 우리는 산티아고 버스 터미널에 가기 위해 공항 셔틀버스를 타로 갔다. 셔틀버스 앞에는 이제 막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도착한 이들이 보였고, 우리는 시작선에 선 그들을 보며 마치 우리의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흥분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산티아고로 버스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는 우리가 걸었던 지점들을 기억해냈다. 


“저기 기억나? 작년에 너무 더워서 중간에 저기서 콜라 사마신 거” 

 

“저기 기억나? 저기서 우리 사진 찍었잖아. 산티아고 도착 기념으로” 

 

잠깐 며칠 동안 산티아고에 돌아온 우리는 이전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추억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곳이 내 고향보다 더 고향 같았고, 기억하는 장소마다 그리움과 기억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지난여름에 오고 단지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내 삶은 벌써 훌쩍 흘러버린 것만 같았다. 장뤽이 말했다.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하는 게 신기해. 늘 이 길을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산티아고를 떠날 때였는데 말이야.” 

 

“평소에는 여행이 끝나는 산티아고로 여행을 시작하니 느낌이 이상해.” 


버스 밖으로는 각자의 여정을 끝내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자 처음 한 달 넘게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던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산티아고가 단지 이 길의 도착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도착하기 전에 간절히 울며 기도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제대로 살게 해주세요’ 

 

그 이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갑자기 다시 걷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들었다. 장뤽도 같은 생각인지 말했다. 


“걷는 게 그립네” 

“산티아고 또 걷고 싶어?” 

“아니 산티아고가 아니라도 길게 걷고 싶어” 


우리는 5년에 걸쳐 북쪽 길, 프랑스길, 원시길, 포르투갈 길 등의 다양한 산티아고 길을 걸었고, 나는 작년 포르투갈 길을 마치고 말했다. 


“산티아고 길을 이제 충분히 걸은 거 같아. 이제는 세상의 많은 다른 길들을 걸어보고 싶어. 산티아고 길은 마흔이 되면 그때 기념으로 걸을 거야.” 

 

장뤽도 그 말에 찬성했고, 우리는 올해 산티아고를 걷는 대신 내 생일 주말에 잠깐 오게 된 것이다. 순례자가 아닌 추억 여행자로. 하지만 이번에도 산티아고 길은 우리로 하여금 추억을 다시 상기하게만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가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고, 예상치 못한 만남들이 있었다. 겨우 삼일 동안 말이다. 


단 하루를 여행해도 일 년 동안 한 여행보다 강렬한 여행들이 있다. 


그게 이번 삼일의 여행이었다.  


단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 아닌, 내가 있는 세계에서 온전히 빠져나와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내 삶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최근 나의 삶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여행자라는 새로운 내가 되어 내 주변을 그리고 타인을 관찰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지 않고, 단지 며칠을 돌아온 건 처음이었지만, 마치 길을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발로 걷지는 않았어도 이 며칠 동안 내 마음의 길을 다시 걸은 건지 모르겠다. 모든 게 예상했던 것과 정 반대로 흘렀갔던 삼일이지만, 정말 웃긴 건 그래도 좋았고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행 내내 비가 오고 날씨는 파리보다 십 도나 더 추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의 길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비가 내리던 산티아고 오브라이도 광장 ⓒ주형원 


물론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산티아고에서 예상치 못하게 다시 해를 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나에게는 무척 특별한 장소인 산티아고의 한 카페 정원에 앉아서 말이다. 2013년, 한 달이 조금 넘게 걸린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혼자서 무사히 완주한 후 산티아고 성당의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가하기 전에 왔던 곳이다. 


북쪽 길을 걸은 스페인 순례자 친구와 함께 왔었는데, 스페인 순례자는 이 곳이 근처에 사는 친구가 말해주는 숨은 명소라며 성당 가기 전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카페를 몇 번이나 입구를 놓친 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숨겨진 보석처럼 너무도 아름다운 정원을 지니고 있는 이 곳에 돌아오고 싶어 그 후에도 산티아고에 와서 찾았지만 길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결국 포기해야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산티아고에 와서 우연히 마지막 저녁에 길을 걷다 찾을 수 있었고, 다시 돌아오면 꼭 이곳에 오자고 했었다. 


산티아고의 정원 까페 ⓒ 주형원 


언젠가 이 곳에 장뤽과 함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는데, 결국 함께 세 번이나 산티아고에 돌아와서야 갈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곳은 때가 되면 돌아오게 되어 있나 보다. 이번 삼일 동안의 짧은 산티아고 행도 여태껏 걸었던 모든 산티아고 길이 그랬듯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오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다시 돌아간 산티아고 길 위의 어촌 마을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듣고 겪으며, 길과 삶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발로 걷지 않은 산티아고행이었지만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었음을 느끼고 감사한다. 또한 산티아고의 상징이자 부활을 의미하는 조개를 배낭에 거는 대신 마음속에 품은 채, 삶이라는 고단한 길을 매일 매일 두 발로 뚜벅 뚜벅 걷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빌어주고 싶다. 



'부엔 까미노(좋은 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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