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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28. 2018

관계의 해동 속도

모든 관계는 하나의 꽃이다

파리에 살며 한국에 몇 년에 한 번씩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지인들 역시 자연스레 많아야 이삼 년에 한 번씩 보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는 종종 하는 카톡 혹은 보이스 톡으로 큰 변화 없이 유지만 하는 정도이다.

그렇기에, 너무 가까운 거리의 우정에서 흔히 겪는 기복은 없지만, 그렇다고 우정이 그런 기복을 통과했을 때의 깊어짐도 없이 늘 일정한 상태로 머무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살다보면 한국에 있는 지인이 너무 보고 싶고, 직접 만나 얼굴 맞대고 함께 밥 먹으며 마음속 깊은 이야길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 때가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밥을 먹어야만 힘이 난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았다.


외국에서 살면서 맺어진 관계는 아무리 깊어도 뿌리가 늘 약해서 아주 조그마한 비바람에도 뿌리째 통째로 뽑혀 나가버리고는 했기에 더 그랬을지 모른다.


외국에 산다는 것이 허공에 산다는 것과 같다면, 관계 역시 이 허공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데는 번번이 실패하곤 말았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외국에서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기에 뿌리를 내리려는 모든 관계를 경계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처럼 전화 한 통으로 ‘보자’라고 할 수 없기에, 혼자 조용히 삭히는 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그걸 알아챘는지 더 이상 보채지도 않았다.

마치 지금 먹지 않을 맛있는 음식을 상하지 않도록 냉동실에 얼리는 것처럼,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 혹은 감정 역시
내 마음속 냉동실에 얼려 놓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오게 되면 ‘얼음’이라 외쳤던 마음에 ‘땡’이라고 외쳐보지만, 냉동된 음식을 자연해동할 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관계 또한 갑자기 얼굴을 마주 본다고 해서 바로 해동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기한 건 관계의 해동 속도이다.

어떤 관계는 해동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어떤 관계는 마치 어제 보고 오늘 또 본 듯 자연스러웠다. 이건 서로가 서로를 알아온 시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를 마지막으로 만난 시점에 비례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 아마 관계의 온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다시 만났을 때 이미 관계의 온도가 거리와 시간으로 식었다면 다시 덥혀지는 데 자연스레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반면에 시간과 거리라는 무시할 수 없는 물리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 대한 깊은 마음에 온도가 뜨거웠다면, 다시 만났을 때 해동 속도가 더 빠른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니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었는지에 대해 이 관계의 해동 속도만큼 여실히 보여주는 건 없다.

시간이 자연스레 관계의 찌꺼기들을 여과하며, 여과되지 못한 혹은 본질적인 기억들 만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동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그 관계가 뜨겁지 않았거나, 다시 뜨거워질 수 없는 건 아니다.


삶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진 마음들도 있지만, 어떤 마음은 내 일상의 경계를 넘을까 두려워 댐 안에 꽁꽁 막아두고 있기에 강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데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관계는, 이제까지 연락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한때 그토록 뜨거웠던 마음의 빠른 해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라는 물음에 차마 ‘생각은 늘 했지만, 사는 게 바빠서요’라는 너무도 뻔하고 궁색한 대답을 둘러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상대방은 질책을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 한편에 이미 자리 잡은 죄의식과 연락 없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에 내 마음이 녹기도 전에 다시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렇게 바쁘게 살지도 않았다. 또 마음보다는 내가 그 마음을 지니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걸 이제는 깨달아가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기에 한국에 와서 지인들을 만나면, 몇 번 만나지 않아도 찐하게(?) 만났다. 우리는 웃고 울었고, 함께 이야기하고 여행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지금 함께 한 추억들이 다음 만날 때 우리를 다시 덥혀주는 따뜻한 불씨가 되기에.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다음을 기약할 만남이 있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향기 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이 향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관계라는 꽃에 꾸준히 물을 준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결국, 모든 관계는 결코 냉동시킬 수 없는 하나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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