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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희 Sep 23. 2022

"멋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외로웠던 적 있어?

응원도 위로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너에게

  마음이 한껏 쭈그러든 때는 말이야. 그 누가 칭찬을 해도 들리지가 않았어. 특히 '멋있다'는 말. 지금 생각해보니, 응원해주는 그 말에 담긴 마음들이 참 따뜻했는데, 그 온기들을 그때는 미처 느끼질 못했어.


  그 당시 내 마음이 만신창이였거든. 지상파 방송국을 상대로 한 퇴직금 소송이 2년째 이어지고 있었는데, 얻어터지는 건 늘 나였어. 한때는 공로패를 주면서 '회사의 얼굴'이라고 추켜세우던 사람들로부터 "불성실했다. 능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어. 6년을 일했고 그 회사 외에는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 없도록 '전속직 계약서'를 쓰게 한 방송국 놈들은 내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없는 말'까지 지어냈어. "로스쿨 학자금 명목의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어.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데...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이 몹시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싸움은 아니었어. 입사동기 A도 있었고, 나와 함께 소송을 시작한 B도 있었어. A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회사와 소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꽤 늦게 알게 되었거든. 재직 중인 아나운서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홀로 힘든 소송을 하고 있었더라고. A는 그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퇴직금을 요구한 아나운서였고, 그렇기에 회사의 공격이 더 거셌던 것 같아. 회사가 잘못하는 거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는 분도 있었지만 A를 대놓고 욕하는 부장 놈도 있었어. "착해 보이더니 이렇게 회사 뒤통수를 치네. 진짜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거야"하는데... 너무 참기 힘들어서 대들고 말았어. 나는 싸움닭이 되어갔어. 그건 뭐랄까... A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했고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 내뱉는 말들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아.


  회사는 A와 퇴직금 소송을 하면서 재직 중인 아나운서들에게 기존보다 더 불리한 계약서를 내놓으며 서명할 것을 요구했어. A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모조리 없애기 위해서였어. 그러면서도 역겹게 "이게 다 A 때문이다"라며 A탓을 했어. 나는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고,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어. 모욕적인 일들이 이어졌어. 외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허락을 구하고 경조사 휴가를 다녀왔는데, 회사에 출근하자 팀장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했어.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복받쳐 흐느끼고 말았어.


  2017년의 나는 참 많이도 울었어. 사실, 나는 회사 몰래 퇴사 준비를 하고 있었어. A와의 소송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을 때, 그건 곧 내게도 닥쳐올 암울한 미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야.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어. 그 이후에 퇴사한 B에게도 회사는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고 했고, 나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 "A와의 소송 문제도 있고 해서... 우리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이해해달라"


  회사 몰래 울면서 했던 공부 끝에 로스쿨 합격을 했고,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보자마자 팀장에게 퇴사하겠다고 했어. 그때는 좀 짜릿했는데... 법을 알게 되면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러나 법을 배워도 노동법 판례를 모르는 근로감독관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어. 나에게는 확인도 안 하고 회사에 유리한 진술만을 사실인 것처럼 그대로 받아 적어 제출한 보고서가 따로 있었어. 그 사실을 나중에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겨우 알게 되었어. 회사와 한통속인 줄도 모르고 결과가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근로감독관이라는 사람 앞에서 쩔쩔맸던 거야,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너무나도 싫었어. '한마디라도 따져 물어봤다면... 결과가 좀 달랐을까...' 어리석었던 나에게 미친 듯이 화가 나 뜬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어.


  6개월의 지지부진한 노동청 조사가 끝나고 믿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통지서가 날아왔어.  4년을 일했던 입사동기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는데, 6년을 일한 나는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는데, 이의절차를 찾아보다 깨달았어.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어. 그런데 이 억울한 상황을 알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 일단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어. 10곳이 넘는 곳에 메일을 보냈지만 단 한 곳도 답을 주지 않았어. 인권법학회 캠프에 찾아가기도 했어. 이은의 변호사님을 붙들고, 서지현 검사님께 울먹이며 말씀을 드렸어. 그러다 우연히 한빛센터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고, 미디어오늘에서 처음으로 기사가 나왔어. 국회의원실에서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달라는 요청도 왔어. 뭔가 좀 더 알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어. 하지만, 결국 그 어떤 방송국도 내 이야기를 실어주지 않았어. 국민청원을 해보고 정보공개 청구를 해봐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어. 무력한 내가 너무 싫었어. 그때였어. 희미하게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를 들은 건...


  그런데, 나는 "매일 지고 또 깨지는 착한 편"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내 사연을 알려야겠다고 글을 올렸던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어떤 사람은 나를 "관종"이라고 했어. "정치를 하고 싶어서 이러나?"라는 사람도 있었어. '관심받고 싶어서? 정치하려고? 그런 이유로 평생의 꿈을 버리고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사람도 있나? ' 오해하는 시선들과 싸우고 싶었어. 억울했어. 항변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들은 내 답변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어. 그저 평가하고 싶어 했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멋지다"는 말이 삐딱하게 들리기 시작했어.


  한없이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인 건, 어느 독립 PD분의 전화였어. 모르는 분이 우연히 내 사정을 듣고 전화를 주셨는데, 그분과 1시간 정도 통화를 했어. 그분이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했어. 아나운서가 누구 믿고 방송을 하냐며, PD인 자신이 미안하다고 했어. 우리는 직장인이 아니라 언론인인데, 방송을 함께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모르고 살아서... 미안하다고 했어. 나는 그분과 함께 방송을 만든 적이 없었고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처음 듣는 분인데, 그분이 그런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했어. 그런데,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쉼 없이 울기만 했어.


  그제야 알았어. '직장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나라고 달랐을까?' 싶어서 방송국에서 친했던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했고 납득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듣고 싶었나봐. 나와 함께 뉴스를 진행하고 만들고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서로 웃고 의지했던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은 줄도 몰랐던 그 말들을 모르는 분이 대신해주고 있었어.

"많이 외로웠죠? 힘들고 지쳤죠? 미안해요. 혼자 싸우게 해서"

결국 나는 꺼이꺼이 울고 말았어.


  원망하는 마음이 커서 온 세상이 미울 때가 있었어. 그래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을 생각조차 없었어. 그 사람들이 미웠던 건 아닌데...


  요즘 계속 뭔가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이야기가 올라왔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쓰는 이 편지는 그때의 '못난 내'가 쓰고 있어.

늦었지만 많이 고마웠고... 그때는 진심을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멋있다"는 말이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텐데"라는 말처럼 들려서... '내 선택'을, '내 힘듦'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공감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멋있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자꾸 변명하고 싶어지는 나는 내가 전혀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거든. 나는 나의 불행을 전시하고 싶지 않았지만 늘 지는 것 같았거든.

  

  어떤 짓을 해도 잘 풀리지 않던 시기, 한없이 마음이 못났던 나를 떠올리며, 응원도 위로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외로운 너에게 편지를 계속 써볼 생각이야. 언젠가는 얼어붙은 너의 마음도 녹길 바라며...


  멋지지 않은 나여도 괜찮다면, 용기를 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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