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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필 Jul 12. 2018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과 미래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계약 플랫폼은 근본적 사회 변화를 가져올까?

올해 초 한 바탕 블록체인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가상화폐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다소 멀어졌습니다만 그 논쟁이 제기한 핵심 의문은 여전히 충분히 답변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즉, 블록체인/스마트 계약은 인터넷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놀라운 기술인가라는 점입니다. 저는 실무 법률가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까 합니다.


1. 스마트 계약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용어를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스마트 계약"이란 (1) 서면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계약이 체결되고, (2)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이행되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보면 스마트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자계약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우리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물건을 사는 것은 법적으로는 물품 매매계약인데, 계약의 체결과 이행이 모두 인터넷 상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것도 넓은 의미의 "스마트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는, 국토교통부에서 내어 놓은 부동산 거래 전자계약 시스템(irts.molit.go.kr)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확정일자 부여나 거래 신고가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체결되고 이행되는 계약은 모두 넓은 의미의 스마트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두고 보면, 이른바 "스마트 계약"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렇게 많이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블록체인 지지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카고 대학 로스쿨 도서관 풍경입니다.]


2. 그러면 왜 사람들은 스마트 계약이 왜 사회를 인터넷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나요?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앞으로 확장될 영역이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전자계약은 대부분 개인 소비자가 체결하는 계약의 경우에만 적용되어 왔고, 기업 간 계약에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회사가 원자재를 구매할 때나 제품을 판매할 때 서류로 견적서를 받고, 발주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금융 거래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돈을 저축하고 꺼내 쓰고 대출을 받는 것이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대규모 기업 금융에 있어서는 전자적으로 처리되지 않습니다. 이런 계약의 경우 짧게는 수페이지 길게는 수십 페이지로 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 체결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기술이 더 발전해서 기업 간의 계약이 모두 스마트 계약의 형태로 체결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미래에 "스마트 계약 플랫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모든 기업이 그 플랫폼에 아이디를 가지고 있고, 기업이나 개인들의 모든 계약이 그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 봅시다. 스타트업을 설립하면 아마도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그 플랫폼에 계약 법인을 등록하는 것일 것니다. 그다음부터 법인이 체결하는 모든 계약이 스마트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마켓에 제품을 등록한 판매자로부터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비슷하게, 다른 회사/개인들과 그 플랫폼을 통해서 계약이 체결된다고 상정해 봅시다.


제조업을 예로 든다면, 회사가 공장 건물을 임차하는 것도, 기계를 구입하고 설치하는 것도, 제품을 수주받고 수출하는 것도 모두 스마트 계약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가량 공장 건물 임대인은 임대차 계약을 플랫폼에 등록하고, 회사는 그 플랫폼에서 클릭을 하는 방식으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는 것입니다. 회사가 생산한 제품의 발주, 수주, 선적, 검수, 대금 지급의 모든 과정도 플랫폼 상에 미리 작성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클릭 몇 번을 하면 되고, 지금처럼 발주서, 견적서, 선적 서류, 검수 확인서, 영수증을 작성하고 주고받을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거래가 더 복잡해지면 그 계약 프로그램도 더 복잡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일단 개념상으로는 아무리 복잡한 거래라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을 짜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약서 작성은 변호사가 아니라 프로그래머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표준 스마트 계약들은 관련 법규들을 모두 준수하도록 잘 프로그래밍된 양식 미 미리 마련되어 있을 것이므로, 계약과 관련된 어려운 법적인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읽으신 분들도 여전히 스마트 계약 플랫폼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대기업들은 원자재를 구매하는데 전자구매 프로그램을 쓰고 있기도 하고, 뭐가 크게 달라진다는 거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약간 더 편리해지는 것이지, 그렇게 대단한 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회사가 체결하는 대부분의 계약이 스마트 계약으로 체결되게 되면, 이제까지 상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올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아래 3가지 효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1) 회계/세무 처리의 자동화 - 회사가 체결한 대부분의 계약이 스마트 계약의 형태로 되어 있게 되면, 자금의 집행과 회계 처리가 자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별도로 재무제표를 작성하거나 세금 신고도 자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회계 감사인의 역할도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기업회계기준은 문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패키지의 형태로 배포될 것이고,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사례에서 보는 것과 같이 회계 처리와 관련된 다툼의 소지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이는 기업의 설립, 운영 비용의 감소를 가져옵니다. 회사의 총무팀, 재무팀이 해 오던 상당 부분의 업무가 자동화될 수 있고, 아마도 크지 않은 기업의 경우에는 1~2명의 프로그래머가 이를 수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2) 거래 비용의 감소 - 거래를 위한 상대방의 탐색, 계약 내용의 협상과 체결 과정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거래 비용이 사실상 0에 수렴하게 됩니다. 계약은 미리 짜여 있는 알고리즘에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과정으로 대체될 것입니다(만약 개별 계약에 맞춰서 tailor-made 된 합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스마트 계약 프로그래머가 약간의 코드를 추가하면 될 것입니다).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낮은 거래비용은 사회적으로 자원 분배에 있어 효율화를 가져오게 되는데(이른바 '코스의 정리'), 그로 인한 생산성 증대 효과가 상당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계약서 문구 하나하나를 변호사/계약 전문가가 검토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법무팀/계약관리팀의 역할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3) 분쟁 해결의 간이화 -  계약이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면 분쟁 해결 절차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항상 일정한 모호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알고리즘 통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알고리즘이 법관의 판단을 대체하는 날이 언제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변호사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기업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통해서 거래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계약의 체결, 이행, 회계 처리 및 세무 신고, 분쟁 해결 등의 과정이 전반적으로 자동화/효율화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컨베이어 벨트와 로봇을 이용해서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업무를 자동화하였던 것과 같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은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이 가져올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3. 과연 스마트 계약 플랫폼이 실현 가능할까요?


여기까지 열심히 읽으신 분들도 여전히 내심으로는, 그러한 스마트 계약 플랫폼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무엇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현실화할 수 없게 막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회사 관리 업무의 자동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계약과 회계에 대한 사항은 중대한 비밀이기 때문에 회사가 그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통해서 처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에 하나 해킹이라도 당하게 되면 회사가 체결한 계약 내용이 다른 경쟁업체나 일반 공중에 누출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정부가 (특히 국세청이) 회사의 모든 계약 내용과 이행 현황을 손쉽게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즉, 스마트 계약 플랫폼에 존재하는 데이터의 기밀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과제가 됩니다.

 

"비트코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은, 비트코인의 경우 모든 참여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거래 정보까지 포함하여 전체 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모든 거래 참여자에게 모든 거래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상거래에 시범적으로 도입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정보 보유자가 자신의 정보를 누구에게 어느 범위에서 공개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수출입 거래를 예로 든다면, 계약 당사자인 매도인과 매수인은 계약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데 비해서, 나머지 거래 관여자들은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운송업자에게는 제품의 종류와 크기 정보만 제공하고, 보험업자에게는 제품의 가액 정보만 제공하는 식이지요.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면 종래에 수십 건의 서류를 준비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던 수출입 과정이 간명하고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 사가 IBM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국제 물류에 있어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앞장서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블록체인 기술의 중요한 장점으로 데이터의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기업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도입할 것인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그렇게 중요한 장점이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기업들은 계약이나 회계 정보를 자체 서버에 저장하고 있고, 위변조/삭제 위험은 여러 기존 보안 기술을 통해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기업이 데이터 보안상의 이점만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고, 머스크가 국제 물류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이유도 데이터 위변조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구현하는 데 있어 반드시 블록체인 기술을 써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지 않은 스마트 계약 플랫폼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분산형 데이터베이스의 일종인데, 계약 정보가 반드시 분산형 데이터베 에스에 저장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모든 거래 참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있다면, 그 제3자가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계약의 체결, 이행과 관련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컨대 아마존 같은 회사가 자신의 서버에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구현하여 전 세계를 상대로 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계약 당사자들이 그러한 제3자의 서비스 제공자를 충분히 신뢰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기능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단일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존 기술에 비해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없더라도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입니다.


4. 과연 스마트 계약 플랫폼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까요?


제 마지막 질문은, 과연 스마트 계약 플랫폼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구현될 경우 많은 기업들이 이를 사용하는 시점이 과연 도래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통해서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관리를 위한 오버헤드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되는 만큼, 새로운 설립되는 기업들, 특히 현실 세계의 실물 거래가 필요하지 않은 인터넷 기술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만약 아마존과 같은 회사가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구축하여 회사 설립, 투자유치 계약, 근로 계약, 기타 사업을 위해 필요한 각종 계약들을 스마트 계약의 형태로 손쉽게 체결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재무제표나 세금 신고서까지 자동적으로 작성해 주는 패키지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면 상당수의 스타트업이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적으로 일반 기업들에까지도 서비스가 확산되는 티핑 포인트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티핑 포인트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의 양자 도약(quantum leap)이 필요합니다.  기업들이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통해서 계약과 회계 처리가 알고리즘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되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것이 제 논의의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스마트 계약 플랫폼 도입을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 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후속 연구를 통해 계속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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