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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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하다 노원 GV 후기

영화의 감동으로 글을 써본 적은 있지만, GV를 보고 글을 쓰기는 처음이다. 나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다. 어쩌다 감동으로 울컥하는 그런 마음이 들면 오래된 기억처럼 잔상이 되어 남는다.


그런데 “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하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뿌듯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재미가 있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아니면 지루하기라도 해야 했지만 뿌듯했다. 어떤 마음이었기에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뿌듯했을까.



AI가 찾아 준 수빈과 지영의 연대기 ^^!!


우선, 위의 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1세대와 2세대는 약 10년을 주기로 이어져 왔지만, 3세대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40년 이상의 간격이 존재한다. 이는 사실상 그 맥이 끊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 이전에 방영된 '정년이'는 아마도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정년이’ 이후에 맥이 끊긴 것이다.


그로부터 근 40년의 세월을 넘어 수빈과 지영이 남았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하게 남았다. 수빈과 지영은 영화 속에서 내내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떠돈다.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이어간다는 것은 없는 것을 만드는 것과 같이 황당했다.


‘3년만 더 해보자’ 지영은 수빈에게 그리 말했지만, 3년이 지나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지영은 더 잘 알고 있었다. 수빈은 ‘3년만 더 해보자’ 지영의 맥없는 말이 흥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겠다는 약속이라도 남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길 없는 길을 걷는다. 수빈은 뛰어다녔다. 그리고 지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빈은 뛰어다니면서 지영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있지도 않은 그곳을 지켜내고 있었다. 수빈은 숨이 차서 헐떡였고, 지영은 숨을 참아 허덕였다. 분명히 소리로 가는 길이었는데 왜 두 사람만이 남아 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히 남았을까.


하지만 그런 소리는 숨넘어가는 이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의미였다. 살아 있으려면 움직여야 했고, 뛰어야 했다. 지영의 스승이자 어머니이고 할머니였던 영숙은 ‘너의 소리가 참 청량허다’라고 했다. 지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아직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숙은 90이 넘어서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왜 나만 살아남아 여기에 있느냐고 흐느꼈지만, 그래도 지영의 손을 놓지는 못했다. 지영은 영숙의 실낱같은 숨결이었다. 그리고 수빈은 영숙과 지영의 그 청량함의 절벽에서 끝 모를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수빈은 무모함만으로 영숙과 지영을 지켜내야 했다.

숨이 차고 숨을 참고 그렇게 무대의 막이 올랐다. 얼마가 준비되었냐는 감독의 물음에 0원이라고 말하는 수빈과 지영의 얼굴빛은 서로 달랐지만, 뻔뻔한 자신감만이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이었다. 무대는 화려했고, 번쩍이고 반짝이는 조명과 수많은 박수 소리에 영숙도 미자도 옥천도 성애도 웃었다. 40년 만의 쫓기듯 사라졌던 무대였다.


또다시 수빈과 지영만 남았다. 이제 지영의 소리는 어느새 더 이상 청량하지 않았다. 한 소리 한소리마다 굵고 짧은 장단의 길이에 끝없이 이어지는 굴곡이 있게 되었다. 그것이 영숙이 그토록 바랬던 지영의 소리였을까.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수빈과 지영이 무대로 왔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영화 속 수빈과 지영의 모습이 너무나 같았다. 다시 영화가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아 ~ 이 사람들 진짜였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빈의 억척스러움과 지영의 곧음이 짧은소리가 되어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뿌듯했다. 나는 아무런 한 일 없이 스스로 뿌듯했다.


아마도 내게 아니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고요한 물결의 파동처럼 잔잔하게 내 마음속에 퍼져 나갔다. 모르겠다. 이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조영숙 선생은 한 번이라도 더 이들을 위해 마지막 소리의 혼을 뱉어낼 수 있을지. 100년이 다 되어 가도록 놓지 못하는 지영의 손을 영숙은 웃으며 놓을 수 있을까.


수빈, 지영 이들이 가는 길에 있고 싶어졌다. 그 짧은 영화 속의 순간에도 이리 많은 소리를 담고 있는데, 이들이 끊어질듯 이어지고 살아질듯 영원한 그 100년의 세월을 어찌 끌어내 갈까. 난 이제껏 한 번도 누구의 팬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아마 성질이 못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내가 이들의 길에 같이 있고 싶다는 것은 매우, 매우 놀라운 일이다.


벌써 7월에 있다는 공연을 기대하고 있다. 이놈 저놈 꼬셔서 표를 많이 팔아야지 하는 생각에 즐겁다. 수빈과 지영의 소리를 카네기 홀에서 듣고 싶다. 확실히 나는 좀 허무한 사람 같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에겐 수빈과 지영의 소리가 있다. 내게 그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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