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분채권의 법적 성격 및 상속재산분할 고찰 (일본판례 비교검토)
상속의 본질과 그 법적 함의에 대해 고찰하면, 상속인은 상속개시 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대한 포괄적인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 민법 제1005조에 규정된 것으로, 상속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범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조항입니다.
피상속인 A는 상당한 금액의 예금채권과 부동산 등 적극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부채는 거의 없었습니다. A의 배우자는 이미 사망하였는데, 슬하에는 성년인 아들 ’B’와 딸 ‘C’가 있었습니다.
한편, 상속인 B는 피상속인에 대한 예금채권에 대하여 자신의 법정상속분을 지급해 달라며 해당 금융기관에 예금반환을 청구한 사안에서, 금융기관이 상속인 B의 청구를 받아들여하는지가 문제 됩니다.
우리 법원의 일관된 태도에 의하면, 금전채권과 같이 급부의 내용이 가분인 채권이 공동상속된 경우 상속개시와 동시에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에게 분할되어 귀속됩니다(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5도5338 판결, 대법원 2016. 5. 4.자 2014스122 결정 등)
예금채권도 금전채권으로서 이른바 ‘가분채권’에 해당되므로 가분채권인 예금채권은 특별한 경우가(기여분이나 특별수익등) 아니면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공동상속인 각 상속분에 따라 상속인에게 귀속됩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속인 B의 청구에 금융기관은 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법률상의 의문점이 존재합니다.
첫째, 민법 제1006조는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상속재산은 그 공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둘째, 민법 제547조 제1항은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수인인 경우에는 계약의 해지나 해제는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 대하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에 관한 주요 사항을 정리하자면 사람이 사망함에 따라 ⅰ) 상속은 즉시 개시되고(민법 제997조), ⅱ) 상속인은 제1000조에 따라 정해지며, ⅲ) 1005조 규정으로 ‘상속인은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 합니다 (일신전속한 것은 제외). 그리고 ⅳ)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상속재산은 그 공유로 합니다 (민법 제1006조).
위 사안에서 A가 사망함에 따라 ⅰ) 상속은 즉시개시되었고, 배우자가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ⅱ) 생존한 아들 B와 딸 C에게 상속되었으며, ⅲ) 상속인들인 B와 C는 피상속인 A의 재산에 관하여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하는데, 이때 ⅳ) 상속재산은 상속인들 B와 C의 공유가 됩니다.
한편, 예금채권은 예금가입자와 금융기관 사이의 예금(금융) 거래 계약에 따라 발생합니다. 그리고 예금잔액은 최초 예금계약 이후부터 계속하여 ‘증가’ 또는 ‘감소’하고, 제삼자에 대한 위임관계(공과금 및 카드대금, 기부금등 자동이체계약)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예금거래의 ‘계약’이라는 법률관계에서 볼 때, 그 거래에 기초한 모든 예금채권을 ‘가분채권’이라고 하여 즉시 상속인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금거래계약을 기초로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채권 (보통예금)과 예금채권의 분할지급이 불가능한 정기적금 또는 정기예금 등 특정 조건이 붙은 성질을 가진 수종의 다른 예금채권을 모두 가분채권이라고 볼 것인지? 이러한 경우 민법 제547조 1항에 규정에 따라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지가 문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기초로, 유사 사례를 찾던 중 의미 있는 판결하나를 찾았습니다.
대법원 2022. 7. 14. 자 선고 2021다 294674 판결입니다 (청약예금의 법적 성격).
대상 판례는 ‘청약예금’에 대하여 가분채권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금채권을 반환받기 위해서는 상속인들 전원이 해지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판결 이유는, 구 주택법 및 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청약저축의 경우 가입자는 주택공급을 신청할 권리를 가지게 되고, 가입자가 사망하여 공동상속인들이 그 권리를 공동으로 상속할 경우 공동상속인들은 상속지분비율에 따라 피상속인의 권리를 ‘준공유’(민법 제1006조) 하게 된다는 법리를 기초로, 청약예금을 반환받기 위해서는 결국 주택공급을 신청할 권리와 분리될 수 없는 청약저축 예금계약을 먼저 해지하여야 하고, 그 해지는 민법 제547조 제1항에 따라 당연히 공동상속인들이 공동으로 해지 의사표시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 판례 또한 예금채권 (입출금이 자유로운 보통예금을 포함)에 대하여 이를 모두 가분채권으로 인정하는 것인지, 청약예금과 같이 권리관계등과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진 예금채권은 그 계약의 해지가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예금채권을 반환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문헌을 검색해 보니, 2016년 일본 최고재판소 결정례를 찾게 되었는데, 그 결정에 관한 사례는 예금채권이 가분채권이라 하더라도 상속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最大決平成28年12月19日民集70卷8号2121面 (‘2016 최고재판소 결정’; Park, K.-W. (2020). Divisible Claims in the Procedure of Inherited Property Division. The Korean Society Of Family Law, 34(1), 1-30.)]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 최고재판소의 다수의견은 가분채권인 보통예금채권이나 정기예금채권의 성질에 기초하여 이 같은 채권들은 모두 상속재산분할 대상임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정이유를 아래와 같이 요약 소개합니다 (아래 요약내용은 박근웅, 2020, ’가분채권과 상속재산분할’ 연구논문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상속재산분할의 취지는,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 공평을 도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므로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가능한 폭넓은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예금은 안전하고 간편하게 환가 할 수 있는 점에서 현금과 유사하여 실무적으로 상속재산분할의 방법을 정함에 있어 조정에도 도움이 된다. 종전 실무적으로 상속재산분할 절차의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예금채권을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는 운용방법이 널리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점도 같은 사정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보통예금채권의 경우 소비임치의 성질을 중심으로 하지만 예금계좌를 중심으로 다양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공공요금이나 신용카드 등의 지불을 위한 계좌이체 등) 위임으로서의 성질도 가지고 있어서 일단 계약을 체결하여 계좌를 개설하면 1개의 채권으로 동일성이 유지되면서 그 잔액이 변동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치는 예금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즉, 예금계약상의 지위를 준공유하는 공동상속인 전원이 예금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한, 한 계좌에서 관리되면서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항상 그 잔액이 변동될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상속개시 시에 각 공동상속인의 법정상속분 상당액을 산정할 수는 있지만, 예금 계약이 종료하지 않는 이상, 그 금액은 관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예금채권이 상속개시 시의 잔액에 따라 당연히 상속분에 따라 분할된 후 계좌에 입금할 때마다 각 공동상속인에게 분할되어 귀속된 기존 잔액에 입금액을 상속분에 따라 분할한 금액을 합산한 예금채권이 성립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하여금 복잡한 계산을 강요하는 것이며, 합리적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기예금채권의 경우 계약상 분할환급이 제한되고 그러한 제한은 다수의 예금자를 대상으로 한 대량의 사무처리를 신속하고 획일적으로 처리할 필요에 저축의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정기적 우편 저금에 관한 사무의 정형화·단순화를 도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정기예금금리가 일반 예금보다 높은 것은 공지의 사실인데, 그 결과 이러한 제한은 입금기간에는 환불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함께 정기적 예금 금리가 높은 것을 전제하고 단순한 특약이 아닌 정기예금 계약의 요소가 된다.
그런데 정기예금채권이 상속에 의해 분할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른 이자를 포함한 채권 금액의 계산이 필요하게 되는 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정기예금에 관한 사무의 정형화·단순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에 어긋난다.
이러한 채권이 상속에 의해 분할되는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위 채권에는 위의 제한이 있는 이상, 공동 상속인은 공동으로 전액 환불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혼자 이를 행사할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의의는 부족하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위와 같은 판결은 유의미하고 흥미로운 판결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입출금이 자유로운 보통예금의 경우 가분채권을 그대로 인정하여 상속인 각 상속분에 대하여 이를 지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와 수긍이 되지만, 이 경우에도 예금거래 계약의 해지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보통예금뿐만 아니라 입출금이 자유롭지 못한 (계약상 분할환급이 제한되는) 정기예금 등 예금채권은 모두 재산분할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하였고, 예금계약의 해지 의사표시 없이는 예금반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해지의사표시는 상속인 전원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통예금의 경우 ‘입출금이 자유롭다는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가분채권으로써 그 권리나 의무를 모두 승계하는 상속인의 지위에서 역시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예금 계약상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제넘지만, 금융기관의 질문으로 공부하던 중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양한 예금거래는 모두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는 모든 예금채권에 대해, 이를 가분채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도 문제로 보였고, 그렇다 하더라도 해지요건없이 곧바로 예금채권의 일부를 상속지분에 따라 지급하는 것은 계약법상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고 거래의 안정성에도 저해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금융기관의 이중지급 문제는 판례에서도 책임이 없다는 태도이지만, 이행지체 책임을 부담하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특약사항에 마련되지 않은 (가입자의 사망과 함께 예금계약도 해지 된다는 등 특약 /임의규정) 해지, 해제권을 일방적으로 공동상속인 중 1인에게 (물론 이는 민법 547조 제2항 규정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행사 할 수 있는지도 문제로 남게 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상속의 방법이 법정상속, 상속재산의 협의분할, 유증, 포기, 한정승인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경우에도 상속재산의 분할청구가 가능하다는 점 역시 여전히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피상속인에 대한 채무를 부담하는 금융기관이 그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는 수인의 상속인중 어느 1인의 법정상속분 청구에 곧바로 응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이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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